‘힘의 정치’가 아닌 ‘정치의 힘’을 발휘하라
  • 고원 (상지대 학술연구 교수) ()
  • 승인 2009.07.0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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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위기는 연대·협력할 줄 모르는 정치 역량 부재에서 기인 …창조의 시대 헤쳐갈 새 동력 만들 제2의 정치 개혁 운동 기대

▲ 고원 (상지대 학술연구 교수)

6월임시국회에 입법 전쟁을 둘러싼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한나라당은 일방적으로 국회를 개원시켰고, 민주당은 이에 반발해 본회의장 중앙 홀에서 무기한 농성을 벌이면서 회의를 저지하고 있다. 아직 육탄돌격전은 발생하지 않고 있지만 한나라당이 비정규직법과 미디어법의 직권상정과 회기 내 표결처리를 다짐하고 있는 터여서 언제 불상사가 일어날지 알수 없는 안개정국이다.

얼마 전 비정규직법의 시행 유예기간을 놓고 벌인 여야 정치권의 협상이 결렬되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지만, 날 선 쟁점을 놓고 한국의 정치권이 합리적 토론을 통해 합의에 도달해본 경험은 우리들 기억 속에 들어 있지 않다. 정치권이‘정치 개혁’이니, ‘정치 선진화’니, ‘국정 쇄신’이니 하면서 만날 퍼포먼스를 벌여도 악순환의 뿌리는 근절될 기미가 없다.

정치란 본래 다양한 개인과 집단들이 갖고 있는 이해와 선호를 집약하여 공적인 합의와 결정을 이끌어 내는 행위 양식이다. 그런데 그합의와 결정이 원시적 ‘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토론과 논쟁 그리고 투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정치라는 것은 인간이 이룩한 가장 위대한 문명이다. 그래서 ‘정치의 힘’과 ‘힘의 정치’는 엄밀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공론의 정치, 소통의 정치로 ‘정치의 부활’ 꾀해야

그런데 한국에는 ‘정치의 힘’이 실종되고 없다. 올해 들어 지난 반년 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엄청난 일들이 많이도 벌어졌다. 세계 금융위기의 폭풍이 우리 경제의 골간을 무너뜨리느냐 마느냐 하는 초긴장의 상황이 펼쳐졌고, 북한 핵 위기가 다시 첨예하게 고조되고 남북 관계가 거의 파탄으로 치닫는 일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이런 절박한 문제들에 대해 제대로 토의나 심의를 해본 적이 없다.

지금 우리 사회를 흔들어대고 있는 정치 쟁점 법안들에는 미디어 관련법, 마스크 착용 금지법, 휴대전화 감청법등이 있다. 과연 이런 법안들이 사회를 안정시키고, 국민들의 삶을 물질적·정신적으로 개선하는 데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준다는 말인가? 사실 따지고 보면 당파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정쟁 법안에 불과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미디어 관련 법안들의 경우 한쪽에서는 미디어 산업의 발전을 위해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사안이라고 주장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언론 장악을 위한 음모라고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디어 산업 발전 방안에 대해서는 촌각을 다투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좀더 확실한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다.

사실 따지고 보면 평범한 일반인의 눈으로 보아도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정치권으로만 들어가면 전혀 문제 해결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정치의 힘’이 ‘힘의 정치’로 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정치가 해결해야 할 가장 절박한 문제의 핵심은 ‘힘의 정치’를 타파하여 사회적 공동선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가능하도록 정치를 바꾸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처한 위기의 본질은 ‘정치의 위기’이다. 사회양극화에 의한 시민적 삶의 피폐화나 북핵 문제를 둘러싼 국제 사회의 흐름에 대한 대응을 어렵게 만들어 온 것은 공동 가치와 목표를 창조해낼 정치 역량의 부재에서 기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보유하고 있는 정치 역량은 정치의 존재 이유를 의 문시할 정도로 소진되어 가고 있다.

지금 세계사의 흐름은 ‘정치의 부활’로 가고 있다. 지난 몇십 년간 세계사의 흐름은 ‘시장’이고 ‘경제’였다. 그와 함께 탈정치화가 세계적 대세였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1968년 이후의 각종 선거에서 투표율이 60%를 넘은 적이 없으며, 심지어 1996년 대선에서는 50% 미만의 투표율을 기록했고, 역사상 드물게 치열한 선거였던 2000년 대선에서도 51.3%에 불과했다. 이런 현상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2007년 대선의 투표율은 역대 최저인 62.9%를 기록했고, 2008년 총선의 투표율은 역시 역대 최저인 46.1%에 머물렀다.

그러나 바야흐로 그런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국가와 시민 사회가 협치를 통해 시장을 조율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미국의 44대 대선에서 투표율은 일약 65%를 기록했다. 미국은 대중의 높은 정치 참여가 회복되는 것을 통해 전례 없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창조적 리더십을 만들어 내고 있다.

비단 미국뿐만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정치 과정으로서 연대와 협력이 잘 이루어지는 나라들이 세계화의 물결에 잘 대처하고 성장과 분배에서도 높은 실적을 창출했음이 객관적 지표를 통해 명확하게 입증되었다.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독일 같은 나라들이 그런 사례이다. 그에 반해 대결적 정치가 만연하고 타협과 연대의 수준이 낮은 이탈리아나 중남미·아시아의 개도국들은 반대의 사례이다.

한국의 정치를 살리기 위한 제언

▲ 지난 6월9일 관훈토론회에서 만난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왼쪽)와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 ⓒ연합뉴스

앞으로는 정치가 국가의 흥망에 관건이 되는 시대가 열린다. 그렇다면 한국은 정치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 무엇보다도 권력 추구를 위해서 힘을 동원하고 그에 따라 극한적 대립이 반복적으로 재생될 수 있는 유인 구조를 바꿔야 한다.

또한, 갈등 유발의 중심에 서 있는 대통령제를 쇄신해야 한다. 한국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그 내면적 구조와 운영은 아주 비정상적이다.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한이 의회를 압도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등 권력 기관의 힘이 비대하고, 또 그것을 대통령이 권력 정치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가 하루 빨리 척결되어야 한다.

국회는 철저히 자율적이어야 한다. 국회가 외부의 권력 개입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국회 본연의 임무는 국민의 대표 기능이며, 토론과 협상을 통해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좋은 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국회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여당이 한배를 타고 가는 식의 정국 운영이 개선되어야 하며, 패권적 정당 문화가 지양되어야 한다. 토론과 합의의 정치 문화가 강화되어야 한다.

2000년대 초반 우리 사회에 정치 개혁의 거센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음성적 정치 자금을 제한하는 것이 주였다. 그 과정에서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깊어진 면도 없지 않았다. 이제는 정치에 날개를 달아 창조의 시대를 헤쳐갈 새로운 동력을 만드는 제2의 정치 개혁 운동이 사회 저변으로부터 시작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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