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구역 개편에 여야는 없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7.0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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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태열안 제출되면서 본격적인 논의 시작돼…시민 단체들은 “대책 마련에 어려움”

▲ ‘청원사랑포럼’ 창립 총회 참석자들. 이 포럼은 청주시와 청원군의 행정구역 통합에 반대하는 민간단체이다. ⓒ연합뉴스

행정구역 개편이 현실화하고 있다. 키는 한나라당이 쥐고 있다. 그리고 현재 키를 잡고 있는 사람은 한나라당 허태열 의원(국회 지방행정체제개편 특별위원회 위원장)이다. 지난 6월25일 허의원은 ‘지방행정체제 개편 특별법’을 제출했다. 그러자 이전에 제출된 4건의 같은 이름을 가진 법안(권경석·우윤근·이명수·박기춘의원 안)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특위위원장 자격으로 낸 법안이니 주목도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의 원래 계획은 ‘4월 공청회, 10월 국회 입법’이었다. 지난 3월3일 지방행정체제개편 특위 결의안이 통과되자마자 한나라당은 특위 위원들을 선임했다. 그리고 1주일여 뒤인 3월11일 허의원을 중심으로 첫회의를 가지면서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한나라당의 일정표는 일단 틀어졌다. 야당과의 입법 전쟁이 길어졌기 때문이다. 미디어법 등 ‘MB악법’을 둘러싸고 국회가 공전되자 특위 활동도 중단되었다. 그 와중에도 자체적으로는 행정구역 개편을 위한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 등 야당은 입법을 둘러싼 싸움 때문에 당내 위원조차 선임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그 사이에 일곱 차례의 간담회를 열었다. 기본적으로는 지난 17대 국회에서 합의되었던 행정구역 개편의 내용을 바탕으로 해 논의했다”라고 말했다.

지난 6월15일에 와서야 여야 간사단 회의가 처음 열렸다. 이 자리에서 여야는 현재 다층적인 구조(정부/시도/시·군·구/읍·면·동)로 이루어진 행정구역을 단층적으로 개편하자는 큰 틀에 별다른 이견 없이 합의했다.

문제는 역시 각론이다. 당내 의원들의 입장도 다르고 중앙과 지방도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 기본적으로 행정구역 개편은 시·군·구를 통합해 광역자치단체로 만들고 읍·면·동을 자치기구로 전환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허의원의 안을 포함해 4개의 개편안이 시·군·구를 통합해 60~70개 정도의 통합지자체로 개편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지난 17대 국회에서 합의된 내용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광역지방자치단체인 ‘도(道)’의 폐지 여부이다.

우선 광역지방자치단체장들의 반대가 거세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이는 지방 분권에 역행하는 일이며 반역사적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광역지자체의 폐지 여부에 대해서는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10명의 한나라당 특위 위원들 중 대부분은 광역지자체의 폐지를 찬성한다. 하지만 김문수 도지사와 가까운 차명진 의원 등이도 폐지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도 폐지를 찬성하는 한나라당의한 특위 위원은 “17대 때의 국회본회의 보고서를 보면 여야가 모두 도를 폐지하는 데 합의했다고 나와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반대 의견을 내면 너무 정략적이지 않나”라고 말했다. 도 폐지가 부각되자 허태열 의원은 “시·군·구가 2/3 이상 통합된 시기에도 폐지를 논의하는 것이 옳다”라며 논의 순서를 뒤로 미뤘다.

5개의 개편안 단일화하면 12월 안에 입법할 수도

지방의 학계나 시민단체에서도 행정구역 개편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광역지자체가 존재하는 지금도 중앙정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인구가 100만도 채 되지 않는 통합 지자체로 행정구역이 개편될 경우 중앙정부에 대한 종속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제주를 시작으로 전북, 강원, 경기 등을 거쳐 지난 6월30일 여의도의 국회 의원회관에 상륙한 ‘행정체제 개편 연속토론회’에서는 행정구역 개편이 지방자치를 말살하고 중앙정부의 영향력을 강화할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한나라당의 권경석 의원 역시 “규모가 작은 통합시가 (광역지자체 없이) 국가와 바로 상대하게 되면서 종속되는 것에 대한 우려가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반면, 허의원측은 “통합지자체는 그동안 중앙이 가지고 있던 권한을 양도받는다. 조세권과 조례제정권, 자치경찰권, 자치교육권 등을 가지는데 종속된다고만 말하는 것은 억지이다”라고 주장한다.

허태열 의원실의 이태호 보좌관은 “통합지자체의 재정권을 확보하는 방안을 만들었기 때문에 종속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존의 조세 체계에서는 시도 세의 70%를 광역지자체가 가져가고 기초지자체는 30%만을 받는다. 하지만 허의원은 통합지자체가 시도 세의 70%를 가져가고 도가 30%만 가져가는 내용을 포함했다. 게다가 통합지자체에는 중앙 정부의 교부금이 대폭 내려가기 때문에 재정은 더욱 풍족해진다는 주장이다.

반면, 통합지자체에 시도 세의 70%를 주는 것은 말이 좋아 재정권 확립이지 시도를 잘게 분할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이 맞선다. 경실련은 “현재 16개의 시도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재정적·행정적 역량을 60~70개의 통합시로 분산하면 지방의 자치 역량은 축소되고 중앙정부의 통합시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이 증대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는 법안을 반대하는 지역 학계와 시민단체에 볼멘소리를 하는 중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행정구역 개편이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이미 17대 국회에서 계속 논의를 하고 합의를 본 사안이다. 지방에 어울리는 권한을 주면서 시행하겠다고 해도 시민 단체나 학계에서는 귀를 막고 아예 듣지를 않는다”라고 말했다.

반면, 모든 사안에서 대치 중인 여야가 행정구역 개편에 대해서만은 유독 합의를 보고 있다는 점은 지방의 학계와 시민 단체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정치권에서 행정구역 개편안을 일방적으로 추진할 개연성도 덩달아 커졌다. 경남 지역의 한 시민 단체 간부는 “행정구역 개편은 20년 동안 논의만 왕성했지 추진은 제대로 된 적이 없어서 이번에도 반신반의하며 제대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때문에 지역 사회에서도 제대로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라며 현재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한나라당은 비정규직법 등이 국회에서 합의되는 대로 각계 전문가를 초청해 개편안을 가지고 다섯 번의 공청회를 열 계획이다. 공청회가 끝나면 여야 특위 위원들끼리 조를 이루어 지역 통합이 논의되는 곳을 직접 방문해 현장의 여론을 듣게 된다. 행정안전부는 ‘마산·창원·진해’,‘여수·순천·광양’, ‘목포·무안·신안’ 등 아홉 곳을 자율 통합 지역으로 지정했는데 이곳들이 대상이다. 이후 9~10월 중에 국회에 제출된 다섯개의 개편안을 특위안으로 단일화하는 작업을 마무리한다. 이래야만 12월 안에 지방 행정체제 개편안을 입법할 수 있다.

중앙과 지방의 갈등만큼 현재 통합 논의가 나오고 있는 지역 간의 갈등도 풀기 어려운 난제이다. 각 지자체는 통합이 자기 고장에 어떤 이익을 줄지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찬성 혹은 반대를 외치고 있다. 통합 지역끼리의 경제적 불균형 문제, 캠퍼스나 공공 기관의 배치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한 곳이 적지 않다.

 



▲ 지난 4월8일 전남 여수MBC 공개홀에서 ‘다시 뛰는 광양만권, 함께 여는 지역 통합’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행정구역 개편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지방에서는 이미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지자체장들이 상대에게 “통합하자”라고 제안하는가 하면 시민 단체들 간에도 찬반 논란이 한창이다. 지역 사정에 따라, 이해관계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이 천차만별이어서 향후 통합 논의가 간단치 않을 것임을 예상케 한다. 행정구역 개편과 관련해주목되는 전남 여수·순천·광양과 경남 마산·창원·진해·함안의 분위기를 짚어 보았다.

광양만권 통합 논의가 다시 활기를 띠고 있다. 여수·순천·광양시를 중심으로 한 행정구역 통합 논의는 이미 2000년부터 펼쳐졌다. 지역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촉발된 것은 여수세계박람회의 유치 과정에서였다. 여수시는 2010 세계박람회 유치를 추진하다 중국 상해와의 막판 경합에서 고배를 마신 바 있다. 당시 상해와의 경쟁에서 실패한 원인이 도시 규모의 한계 및 도시 경쟁력이 약했기 때문이라는 반성이 제기되면서 3개시의 통합 논의가 급격히 확산되었다.

통합도시의 이름·청사 위치도 숙제

지역 여론은 통합에 무게가 실렸다. 지난 2005년 1월 여수·순천·광양시 시민 1천4백96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적극적으로 찬성 의견을 제시한 시민이 54.4%에 달한 반면,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한 시민은 7.6%에 불과했다. 그 결과 2007년 9월5일 여수·순천·광양 상공회의소에서 주최한 ‘도시 통합을 위한 토론회’에서 3개시의 시장이 참여해 ‘2010년 3개시 통합을 목표로 10월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자’라는 합의까지 도달했다.

그러나 광양시의회와 광양시민단체에서 3개시가 통합될 경우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광양시가 소외될 것을 우려해 양해각서 체결 합의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결국, 광양시장이 통합 논의를 중단하겠다는 선언을 하게 되었다. 광양시장의 통합 논의 중단 선언으로 3개시의 시장이 2012년 세계박람회 개최지 결정일 이전에 통합 양해각서를 세계박람회기구(BIE)에 제출하기로 한 계획도 실패로 돌아갔다.

최근의 광양만권 통합 논의의 핵심 쟁점은 통합 지역의 범주에 관한 문제이다. 이는 각 도시를 통합 권역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지역의 이해관계가 표출된 것이다. 여수시는 고흥을 포함시켜 여수를 중심권역으로 삼고자 하고, 광양시는 하동과 남해를 포함시켜 광양시를 중심권역으로 삼고자 한다. 반면, 순천시는 3개시가 통합될 경우 자연스럽게 순천시가 중심도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주변 지역까지의 통합에 대해서 적극적인 의사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통합 권역 이외에 쟁점이 되는 사안들로는 통합도시의 이름과 청사의 위치 문제 등이 잠재해 있다.

광양만권 통합 논의가 지역 발전의 비전에 대한 주민들 간 소통 및 성찰 행위가 된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논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충분한 토론과 창조적 대안 창출, 민주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만 통합의 시너지가 발현될 수 있다. 지역 주민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대표성 있는 주체를 선발하고 지역 간 이해관계의 면밀한 절충이나 교환 행위 및 주민합의 과정을 통해 가능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황철곤 마산시장(왼쪽)과 박완수 창원시장. ⓒ연합뉴스
마산·창원·진해·함안(마창진함) 통합 논의가 지방자치단체장을 중심으로 본격화하고 있다. 물론 마산과 창원의 통합 논의는 그동안 간헐적으로 있어 왔다. 중앙처럼 지역의 행정 통합 논의 또한 주민은 배제된 채 일부 단체장들의 정략적 접근으로 치닫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작 통합의 결정권자라 할 수 있는 지역 주민은 대체로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정치권에서 진행되는 개편 논의는 여러 부작용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장점만 부각시킬 뿐만 아니라 사실을 왜곡시키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거대 맹신 증상을 악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치권의 지방행정체제 개편 논의가 민주성은 무시한 채 효율성 중심으로 가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이유이다.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마창진함 통합 논의도 큰 흐름에서는 정치권의 통합 논의와별 차이가 없다. 이미 통합 논의의 중심에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나서면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행정통합 논의가 왜곡되거나 갈등과 감정싸움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더군다나 마창진함 통합에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가장 먼저 나선 마산시장이, 현재 놓인 정치적인 처지로 인해 통합 논의의 순수성이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마산시장은 3선 제한에 묶여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그러나 행정 통합이 되면 출마가 가능하고, 마산시장 또한 통합시장 출마에 대해 ‘주민의 평가에 맡기겠다’라는 우회적인 표현으로 사실상 출마 의지를 밝혔다. 최근 마산과 창원보다는 마산과 함안과의 통합 노력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마산시장의 행보로 인해 이러한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장점만 부각시키는 정치권은 문제

마창진함 통합, 특히 마산과 창원의 통합 문제는 역사성이나 지리적 특성 등으로 인해 오랜 기간 동안 제기되어 온 문제이지만, 기본적으로 지역 간의 주민 정서와 경제·사회·문화적 특성 등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이런 환경 등을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무리하게 통합을 추진할 경우 지역 간에 엄청난 갈등과 마찰이 불거질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앞으로 마창진함 통합 논의에 있어 지방자치단체와 정치인은 각자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행정 통합의 득실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공개하는 등 시민들의 자율적 선택을 돕는 정보 제공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이런 전제 위에서 주민들의 자기결정권이 가장 중요한 자치단체의 통합 기준이라는 원칙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또한, 행정 통합은 한 번 결정되고 나면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철저한 검증과 여론 수렴을 거쳐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내년 지방선거 전 통합을 서두르는 것은 옳지 못하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지역 주민들이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활성화되고 언로를 활짝 열어야 한다. 벌써부터 일부 지역에서 아래로부터의 충분한 의견 수렴 절차 없이 통합 찬성만이 공공의 선이라는 식의 분위기를 조장하는 하향식 행정 통합 논의는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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