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소리’ 없는 전쟁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07.07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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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당위원장 연임 도전 ‘친박’ 서상기에, ‘친이’ 이명규 “이번에는 내 순서” 발끈

▲ 대구·경북 신년교례회에 참석한 이상득 의원, 서상기 시당위원장, 박근혜 전 대표, 정희수 도당위원장(왼쪽부터)이 건배 제의에 잔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소리 없는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한나라당 내부에 서서히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계파 간 경쟁이 여기저기서 돌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7월에 이루어질 시도당위원장 선출이 이런 신경전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전쟁터로 대구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구는 한나라당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대구 지역에서 경북고 동문이 갖는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현재 이 지역 국회의원 12명 가운데 여성 의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제외한 11명의 출신 고교를 보면, 무려 6명이 경북고 동문이다. 여기에 경북중을 졸업, 경북중·고 총동문회에 참가하는 서상기 의원까지 포함하면 7명이 된다.

경북고를 졸업한 한나라당 소속 한 보좌관은 “최근 들어서는 그나마 출신고교가 다양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대구 지역 의원 중 경북고 출신만 9명이었던 적이 있었다. 대구시당위원회가 완전히 경북고 동문 잔치여서 타교 출신들은 슬그머니 모임에 빠지기도 했다”라고 전했다.

경북고 동문이 갖는 ‘성골’ 의식은 대구시장 쪽으로 가면 더 강렬해진다. 1995년 민선 지방선거가 실시된 이후 역대 대구시장을 거쳐간 문희갑(민선 1, 2기), 조해녕(민선 3기) 전 시장 모두 경북고 출신이다. 현 민선 4기 대구시장인 한나라당 소속 김범일 시장 역시 경북고 출신이다.

2005년 당 경선에서 김시장과 격돌한 서상기 의원은 경북중을 졸업했지만, 비(非)경북고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당시 한나라당 대구시당위원장이었던 안택수 전 의원이 “경북고 출신이 아니고서는 곤란하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서의원은 여전히 대구시장에 대한 야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6월 1년 임기의 대구시당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이를 발판삼아 대구시장 경선에 재도전하겠다는 뜻을 품고 있다. 서의원측은 “지역구국회의원만으로는 활동 폭에 분명한 한계가 있다. 현역 시장에 대항할 수가 없다”라는 속내를 드러냈다. 대구지역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시당 위원장 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이다. 통상 각 지역구 의원들이 1년씩 돌아가며 맡는 방식이었던 시당위원장 직을 서의원이 굳이 다시 연임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자 이명규 의원이 발끈하고 나서고 있다. “관례상 내가 하는 순서가 맞다”라는 것이 이의원측의 주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관례란, 대구·경북 지역의 역대 시도당위원장 선출 방식을 말한다. ‘재선급 이상 의원 가운데, 나이순으로 돌아가며 맡는다.

단, 당직을 맡고 있는 의원은 제외한다’는 것이 일종의 내부 불문율이었다. 서의원이 지난해 시당위원장에 합의 선출된 것도 이런 관례에 따른 것이었다. 다음 순번이 이명규 의원인 셈이다. 그는 현재 당에서 전략기획본부장을 맡고 있지만, 본인은 시당위원장이 되면 당직을 사퇴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속사정은 더 복잡하다. 계파 간 싸움 양상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의원은 ‘친박(친박근혜)계’의 핵심이다. 이의원은 ‘친이(친이명박)계’로 꼽힌다. 타협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자 여기에 3선의 관록을 자랑하는 이한구 의원이 뛰어들었다. 당 정책위의장과 국회 예결특위위원장을 지낸 중진급이다. 그는 스스로를 가리켜 ‘중립’으로 표명하고 있다. 현재 국회 윤리특위 위원장에 내정되어 있는데다가 당초 “시당위원장에 관심이 없다”라는 입장을 견지했던 이한구 의원이 경쟁에 뛰어든 명분은 “친이계와 친박계의 계파 싸움으로 비화되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었다. 대구 지역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이한구 의원의 가세로 대구시당위원장 경쟁은 새로운 판도를 맞고 있다.

급기야 대구지역 의원들이 지난 6월 말전격 회동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합의 도출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한구 의원측은 “시당위원장이 직접 시장 경선에 참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서의원이 대구시장 경선 출마를 포기한다면 시당위원장을 서의원에게 양보할 용의가 있다”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서의원측은 “당규에도 그런 규제는 없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한구 의원이 나서는 것을 결국, 경북고 동문의 힘이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한나라당의 한 보좌관은 “얼마 전 경북고 동문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서는 현 김시장의 연임을 밀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서의원측은 “경북고 동문회에서 비경북고 출신인 서의원은 안 된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그 총대를 결국 이의원이 멘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이의원측은 “본질과 다른 얘기이다”라고 반박했다.

아무튼 친이계 성향으로 분류되는 김범일 시장은 당 주류와 경북고 동문이라는 막강한 배경을 등에 업고 있는 셈이다. 반면, 재도전장을 던진 서의원은 TK지역에 폭넓게 퍼져 있는 ‘친박’ 정서를 기대하고 있다.

실제 경북 지역은 이미 친박계가 어느 정도 장악하는 모습이다. 현재경북도당위원장 다툼을 벌이고 있는 김태환 의원과 이인기 의원 모두 친박계로 분류된다. 지금의 정희수 도당위원장 역시 친박계이다. 같은 친박계여서 그런지 김의원과 이의원 간의 대결은 경선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본다.

김관용 경북도지사 역시 친박계 성향으로 분류된다. 역시 연임 의지를 갖고 있다. 여기에 도전할 만한 인사로 친이계의 정장식 중앙공무원 교육원장이 꼽힌다. 정원장은 2005년 당 경선에서 김도지사에게 석패한 바 있다. 대구시장과는 정반대 양상인 셈이다.

영남은 친박계, 수도권은 친이계 강세 뚜렷

PK지역 역시 친박계의 강세가 예사롭지 않다. 부산시당위원장에는 유기준 의원이, 경남도당위원장은 이주영 의원이 유력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모두 친박계로 분류되고 있다. 울산은 친이계의 김기현 의원과 중립 성향의 강길부 의원이 거론되고 있다. 강원 지역도 현재 도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친박계의 이계진 의원이 연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친이계의 허천 의원이 이어받으려 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반면, 수도권 지역은 친이계가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가장 첨예한 관심 지역인 서울시당위원장에는 홍준표 전 원내대표가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홍 전 대표는 중립을 표방하고 있지만, 친박계 쪽에서는 홍 전대표를 상당히 경계하는 눈치이다. 이밖에도 인천과 경기에서 각각 유력한 당위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조진형 정병국 심재철 의원 역시 친이계로 분류된다. 친박계 쪽에서도 대항마가 거론되고 있다. 서울은 진영의원, 경기는 유정복 의원 이름이 나온다. 인천에서는 4선인 이경재 의원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처럼 명예직으로 치부되던 시도당위원장 경쟁이 올해 들어 유독 치열해지는 것은 내년 지방선거 때문이다. 1년의 임기 이내에 지방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에 여느 때의 위원장과는 비교할 수 없는 권한을 갖는 까닭이다. 지역 내의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공천권이 그것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대선을 치러보면, 광역단체장보다 오히려 기초단체장과 기초 의원들의 힘이 훨씬 더 중요함을 느끼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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