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盧 연대’움직임 있었다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07.0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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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훈수 정치’ 수준을 넘어야권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민주대연합론’으로, ‘반(反)MB(이명박 대통령)’연합전선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DJ는 우선적 과제로 민주당과 ‘?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고 시의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한편, 지난 연말·연초 무렵부터 DJ는 ‘10년 정권’의 동질감 회복이라는 차원에서 노 전 대통령과의 연대를 구상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 구상이 노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경험한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진짜 ‘정치 9단’이다. 수를 읽고 내다보는 감각이 탁월하다. 거기에 비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은 그 단수가 한참 밑이다. 그런 YS와 DJ도 임기 말 레임덕에 시달리지 않았나. 계속 불행한 역사가 반복될 수도 있다.”

지난달 말 국가 최고위직급에 있는 한 인사가 사석에서 한 발언이다.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취지였지만, 아직도 대한민국 정치판에 ‘양김(兩金) 시대’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게 드리워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지금도 한 번씩 예민하고 강도 높은 정치성 발언을 내놓아 정국을 요동치게 만든다. 한 정치평론가는 “양김씨는 노련하다.

자신이 한 말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뻔히 내다보면서 의도된 발언을 한다. 한편으로는 지금의 ‘후배’들이 미덥지 못한 것이다. 정치 9단의 눈에는 지금 정치 수준이 유치해 보이고 답답해 보이는 것이다. 노욕(老慾)이라는 측면도 있지만, 우리 정치의 한계일 수도 있다”라고 분석했다.

‘DJ의 부활’을 주목하는 시각이 많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훈수 정치’ 수준에서 벗어나 아예 야권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이다. 논란이 뒤따르자 최측근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김 전 대통령께서 85세이다. 1주일에 세 번 투석을 하신다. 그 연세와 건강을 가지고 민주당 총재를 하시겠나. 국회의원 출마를 하시겠나.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 지적을 하셔야 된다. 그것이전직 대통령으로서 국민에 대한 의무이다”라고 변호했다.(24면 기사 참조) 다른 시각도 있다. 정치 컨설팅 회사 ‘포스커뮤니케이션’의 이경헌 대표는 “DJ로서는 무엇보다 남북 관계등 자신의 업적이 훼손되는 것이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아니, 업적을 더욱더 확고하게 구축하고 싶은 것이다”라고 분석했다.김 전 대통령은 ‘민주대연합론’을 들고 나왔다. 쉽게 말해서 ‘반(反)MB(이명박 대통령)’ 연합전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우선적 과제로 민주당과 ‘친노(親盧)’ 세력의 단합을 주문했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이 끝나고 난 뒤인 지난 6월16일 김 전 대통령은 한명숙·이해찬 전 총리,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등 주요 친노 인사들을 불렀다. 여기에는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박지원 의원도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야권이 민주당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DJ, 친노 세력에 손 내민 까닭

▲ 지난 6월11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6·15 남북선언 9주년 기념식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김 전 대통령이 친노 그룹을 끌어들이기 위해 각별히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은 지금의 민주당만으로는 20%에 머문 지지율을 더 이상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한계를 읽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번 조문 정국에서 드러난 친노 세력의 잠재력을 읽었다는 것이다. 구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인사는 “천하의 DJ라도 태생적 한계가 있다. 즉, 영남에서는 전혀 그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미 경험으로 알다시피 호남만으로는 집권이 어렵다. 자연히 영남에 일정한 지분을 갖고 있는 친노 세력과의 연대가 필요한 셈이다”라고 분석했다.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김 전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더욱 확연해진다. 그는 “내 몸의 절반이 무너져 내린 느낌이다”라고 했고,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라며 노 전 대통령과의 동질감을 나타냈다. 5월28일 분향한 뒤에는 “노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반드시 이 나라 민주주의를 확실히 회복할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결정판은 지난 6월11일 있은 6·15 선언 9주년 기념 강연에서였다. 김 전 대통령은 “노대통령은 나와 이상하게 닮은 점이 많다. 둘 다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둘 다 상고를 다녔고 돈이 없어 대학을 못 갔다. (중략) 당도 같이했고, 국회의원도 같이했고, 북한도 같이 교대로 갔다 왔고. 이런 것을 보니 전생에 노대통령과 나는 형제간이 아닌가 생각된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동교동과 봉하마을이 그동안 보여온 일정한 거리를 감안할 때 너무 갑작스런 변신이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이 있다. 조문 정국 이후 급격히 상승된 노 전 대통령의 인기를 이용하려 한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실제 친노그룹 일각에서는 그동안 ‘반DJ’ 정서가 존재해 왔다. 물론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심지어는“DJP 연합으로 탄생한 국민의 정부를 인정할 수 없다. 진정한 민주정부는 참여정부부터이다”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실제 김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충격으로 갑자기 초강수를 두고 나선 것일까. 동교동측의 분위기를 살펴보면 사뭇 다른 기운이 감지된다. 지난 연말·연초 무렵부터 ‘10년 정권’의 동질감 회복 노력이 꾸준히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즉, ‘DJ-노(盧)연대’ 구상이 그것이다. 특히 동교동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가 전하는 말은 상당히 주목된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 관계 경색, 공안정국, 국민과의 소통 부재 등 여러 비민주화 과정을 지켜보면서 DJ가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반MB 연대’의 ‘민주대연합’ 필요성을 생각했고, 민주세력 양대 축의 하나인 노 전 대통령과 공동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얼어붙은 남북 관계의 해빙과 동서화합을 위해 공동 선언이라는 형식까지 구상한 것으로 안다”라고 전했다.(18쪽 기사 참조) 좀더 구체적인 얘기도 들려왔다. 동교동측에서 이런 제안을 봉하마을측에 전달했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간 역할을 한 사람으로 이해찬 전 총리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봉하마을이 ‘박연차 게이트’에 급격히 휩쓸리면서 이런 논의가 수면 아래로 잠겼고, 뒤이어 바로 자살 사건이 터졌다는 것이다.

동교동과 봉하마을 양측의 주장은 엇갈려

하지만 봉하마을측의 반응은 ‘사실이 아닐것’이라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친노 그룹의 한핵심 관계자는 “내가 모르는 범위에서 진행되 었을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봉하마을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그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DJ가 주변 인사들에게 ‘나와 노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다 하늘 같이 모셔야 한다’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서거 정국 이전에 구체적인 제안은 없었다”라고 단언했다.

동교동과 봉하마을 양측의 주장이 일부 엇갈리는 상황은 현 정국을 바라보는 양측 간의 여전한 간격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지금 당장 친노 세력이 DJ의 품 안으로 들어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지난 2003년 열린우리당 분당을 주도했던 친노 세력이 내세운 가장 큰 구호는 ‘지역 정당극복’이었다. DJ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간다는 것은 다시 호남 정당으로 귀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인사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이다. 그는 지난 6월16일 김 전 대통령이 부른 친노 인사의 오찬 자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또한, 이날 자리에서 박의원은 문재인 전 비서실장에게 “내년 지방선거에 부산시장으로 출마해야 한다”라고 강하게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DJ가 직접 한 발언으로 잘못 전달되기도 했다. 하지만 DJ의 뜻이 강하게 작용된 것은 맞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서 문 전 실장은 그냥 웃어 넘겼다는 전언이지만, 나중에 이 사실을 전해들은 친노측 일부 인사들은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한 친노 인사는 “설사 문 전 실장이 부산시장에 출마한다 하더라도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서 나가는 것이어야지, DJ의 권유로 나가는 형태가 되면 되겠느냐. 오히려 부산에서 표를 깎아먹는 결과가 된다”라고 힐난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속사정도 그렇게 녹록지 않아 보인다. 우선 당내 계파가 복잡하다. 한나라당은 단순히 ‘친이계’와 ‘친박계’로 뚜렷이 양분되는 양상이지만, 민주당은 확연한 선도 없고 리더도 없이 여기저기 걸쳐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넓은 프리즘을 갖고 있는 ‘열린우리당계’와 ‘구민주당계’의 갈등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경헌 대표는 “지금도 구 민주당의 분당, 노무현 탄핵, 대북송금 특검, 그리고 노대통령의 한나라당 대연정 제안 등 크게 네 가지 관점에서 열린 우리당계와 구 민주당계의 불신과 갈등이 남아 있다. 이를 어떤 식으로 사과하던지 풀고 가야 했다. 구 민주당계는 탄핵 주도에 대해서 명확히 사과해야 했고, 열린우리당계는 분당과 대북송금 특검, 대연정 제안에 대해서 해명 내지는 사과를 해야 했다. 현재 상태는 이런 것을 그냥 적당히 덮어둔 채 어정쩡하게 공존하는 방식이다”라고 분석했다.

지금 민주당의 복잡성은 정당 탄생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민주당은 지난해 2월 대통합 민주신당과 구 민주당이 합당해 탄생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은 2007년 8월 열린우리당과 구민주당의 일부 이탈 세력, 그리고 한나라당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 세력 등이 연합해서 만들었다. 열린우리당은 구 민주당에서 분당해 나왔다. 열린우리당계는 정세균 대표를 중심으로 하는 신주류와 친노계, 정동영계로 분화된다. 다른 축에 구 민주계가 있고, 양측에 걸쳐 관료 출신이 중심이 된 중도파도 존재한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와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도 일정한 지분을 갖고 있다. 동교동 입장 에서는 구 민주계를 제외하고는 확실한 친위 세력으로 볼 계파가 사실상 없다. 신주류나 정동영계, 김근태계, 중도파 등과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고, 친노계, 손학규계와는 그 거리가 상당히 더 벌어져 있다.

통합 어려워도 상징적 의미의 연대 가능해

 이런 사정으로 인해 현재 민주당 지도부의 고민도 많다. 조문 정국을 통해서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힘이 되살아났고, 이에 편승해 ‘10년 정권’의 계승을 표방하고 나섰지만 당내 이견도 만만치 않다. 무슨 사안이 있을 때마다 동교동을 방문해서 마치 ‘훈수’를 듣고 오는 듯한 모양새가 자칫 국민들에게는 무능력함으로 보일 수도 있는 까닭이다. 김 전대통령의 다소 의도된 듯한 발언이 민주당에게는 결코 유리할 것이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최근 국회 등원 거부 등 강경 일변도의 노선이 동교동의 영향 때문이라는 인식도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 6월30일 이강래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김 전 대통령을 예방하려던 계획이 전격 취소된 것도 이런 고민과 무관하지 않다는 전언이다. 민주당 관계자인 ㅇ 전 의원은 “동교동을 방문한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에게 ‘국회에 들어가라’는 말을 들어도 부담이고,‘강경 대처하라’는 말을 들어도 부담이다. 그 어떤 말을 듣더라도 민주당 입장에서는 향후 행보에 족쇄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내부 고민을 전했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민주당 주변의 역학 구도 탓에 향후 김 전 대통령이 계속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고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는 “지금 민주당 지도부가 상당히 불안정한 체제이고, 정세균 대표가 호남 전체를 아우를 만한 강력한 지역 기반을 갖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인 민주당 강세 지역인 광주·전남에서는 특히 취약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DJ에게 기대는 측면도 있다. 소위 호남의 주인이 현재 진공 상태에 있기 때문에 원로인 DJ가 이런 공백의 허전함을 메우는 역할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DJ-노’ 연대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사실 양자 간의 완전한 통합은 어려울지 몰라도 상징적인 의미에서의 연대는 얼마든지가능하다고 본다. 양측 모두 필요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다만, 지금껏 조용한 행보만 거듭하던 이해찬 전 총리측에서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움직임을 시작할 수도 있다”라고 하는 얘기는 주목된다. 뭔가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에 정동영 의원, 손학규 전 대표, 김근태 전 의장, 유시민 전 장관 등 잠재적 대권주자들이 행보를 시작하면 DJ가 주창한 민주대연합론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반드시 민주당 울타리로 모이지 않아도 민주당과 친노 세력, 그리고 기타 세력의 소위 ‘반MB 연대’가 결성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치 9단으로 불리는 김 전 대통령이 이런 수를 미리 읽고 있는 것일까. 야권의 긴박한 움직임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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