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의 화두는 스토리텔링이다”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07.2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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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한 <해피 선데이> PD 인터뷰

ⓒ시사저널 임준선

이명한 KBS PD라는 이름을 듣고 그가 누구인지 바로 떠올릴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서 카메라 안으로 종종 들어오는 PD, 한국 국가대표 야구팀 모자를 눌러 쓴 덩치 좋은 PD라는 설명이 붙는다면 많은 사람이 ‘아! 그 사람’ 하고 무릎을 칠 것이다. 이명한 PD는 <1박2일>이 국민 예능프로그램으로 불릴 정도로 성공을 거두면서 KBS의 대표 예능 PD로 자리 잡았다.

<1박2일>은 예능 프로그램 최대의 격전지인 일요일 저녁 시간대 KBS 2TV <해피 선데이>를 굳건히 지켜주는 히트상품이다. 지난해 12월 <1박2일>의 제작 현장에서 잠시 물러나 <해피 선데이> 총괄 PD로 자리를 옮긴 그는 신무기 <남자의 자격 - 죽기 전에 해야 할 101가지>를 성공적으로 런칭하면서 자신의 진가를 다시 발휘했다. 이경규, 김국진, 김태원 등 40대를 넘어선 중년의 남성 MC들을 기용해 동시대 남성들의 로망을 풀어내는 <남자의 자격>은 첫 방송부터 좋은 평가를 이루어내며 시청률에서도 호조를 보이고 있다. <해피 선데이>가 쌍두마차 체제를 갖추면서 <패밀리가 떴다>와 <골드 미스가 간다>로 짜여진 SBS
<일요일이 좋다>와의 시청률 경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유했다. 새 코너들이 계속 엎어지면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와 대조된다. 예능 대세, 리얼 버라이어티 대세라는 현재 방송 환경의 중심부에서 거듭 성공적인 결과물을 내놓고 있는 이명한 PD를 만났다. 

<남자의 자격>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기획 동기는 무엇인가?

첫 방송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시청률도 꾸준히 좋아져 지난주에는 평균 11%를 기록했다. <패밀리가 떴다>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굉장한 수치이다. 이전 코너들은 4~5%를 넘기기 어려웠다. MC인 이경규와 김국진의 역할 바꾸기도 주효했다. 시청자들이 기존과 다른 캐릭터에 대해 호감을 보이고 있다. 프로그램을 위해서 캐릭터를 뒤집어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았는데 본인들 스스로 동물적 감각으로 그래야겠다고 느낀 것 같다. <남자의 자격> 기획에 참여하면서 코너 제작 PD와 작가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며 큰 방향을 잡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코너 하나가 런칭하는 과정은 PD 집단과 작가 집단의 공동 창작 과정이다.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거치며 작가가 화두와 모티브를 던지면 PD들이 현실적으로 정리해 나가는 식이다.

한 코너에 스태프들은 몇 명이나 참여하나?

출연자를 제외한 스태프만 연출, 작가, 카메라, 오디오, 조명, 효과 등 50명 정도이다. 연기자 집단을 합치면 70~80명 된다. 숙소는 보통 마을 회관에서 해결한다. 필수 스태프가 아니면 근처 민박집을 활용하기도 한다. 열악한 상황에서는 텐트나 큰 천막을 치고 자기도 한다. 때로는 연기자들보다 더 열악한 경우도 있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편집의 중요성은 어느 정도인가?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가 되면서 후반 작업이 중요해졌다. 예전에는 제작 방식이 객관적이었다. 객관적인 장치를 활용해 사전에 세팅을 하고 그 안에 연예인을 투입해 반응을 보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예가 <출발 드림팀>이다. 후반 작업은 드라마 편집처럼 오케이 컷을 가져다 붙이면 되었다. 지금의 트렌드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것이다. 사전 작업은 복잡하지 않다. ‘1박2일 여행기’라는 장치 외에는 주관적인 틀만 가져간다. 출연자들이 쏟아내는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주관적으로 짜 맞추어 나가는 것이 제작 과정의 중심이 되었다. 1주일을 주기로 하면 회의에 하루, 3일 정도 편집, 나머지가 촬영이다. 편집 과정이 가장 길다. 자막을 넣는 데도 PD의 주관적 역할이 중요하다. 객관화된 장면과 설명은 효과가 없고, PD의 주관적이고 파격적인 것이 먹힌다. 보편적인 것보다 독특한 집단의 이야기가 호소력이 있다. 

<1박2일>에서 강호동의 비중은 얼만큼인가?

사실 강호동을 먼저 캐스팅하고 <1박2일> 포맷을 생각했다. 당시 트렌드가 A급 연예인을 먼저 확보하는 것이었다. 강호동의 최대 장점은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개인기와 입담은 기본이다. 다른 연예인이건 시골의 촌부이건 어떻게 대해야 프로그램에 맞는 색을 묻어나오게 하는지 정확히 안다. 현지인들과 접촉할 수밖에 없는 <1박2일>에서 강호동의 이런 능력이 빛을 발휘한다.

이승기와 김C의 캐스팅은 의외의 선택이다.

이승기는 노홍철이 나가며 들어왔다. 결원이 생기면 보통 가장 유사한 캐릭터를 찾는다. 노홍철은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인지라 발상을 전환해 모험수를 둔 것이 이승기이다.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로 어른들에게 인지도도 높았고, 착한 옆집 동생 같은 이승기가 망가지고 무너지면 의외의 효과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생각보다 훨씬 파괴력 있게 터져줘서 다행이다. 김C는 지상렬의  대체자였다. 김C에 대해서는 확신이 있었다. <윤도현의 러브레터>를 담당했을 때 봤던 김C의 논리적인 면과, 기존의 연예인들과는 다른 화법이 <1박2일>에서 발현할 화학 반응이 궁금했다. 

PD 자신이 카메라 앞에 등장한 것은 의도된 것인가?

처음 노출된 것은 해프닝 때문이다. 김종민과 기차역에서 낙오된 상황에서 방송 분량을 확보하기 위해 조력자로 나섰는데 그게 재미가 있었다. 콘텐츠 경쟁력을 위해 굳이 뒤로 숨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속성상 연기자와 제작진 간에 선을 긋기 어렵다. 제작진이 나오는 것은 <1박2일>의 색깔이 되었다. 이제는 출연자들이 스태프들을 걸고넘어진다. 스태프들이 망가지며 주는 재미를 그들도 아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원치 않는 상황도 있겠지만 프로그램을 위해 받아들여야 할 숙명 같은 것이다.

어디까지가 리얼인가?

<트루먼쇼>처럼 자기가 찍히고 있다는 것을 몰라야 100% 리얼이다. 우리는 연예인이 출연하고 카메라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완벽한 리얼이라고 할 수 없다. 어디를 가고, 복불복 장치는 무엇이고, 다음 날 미션은 무엇이라는 상황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대본은 있다. 하지만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캐릭터의 관계를 설정하는 등의 개입은 절대 하지 않는다. 허당, 초딩, 일꾼 등의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도 프로그램 안에서 툭 튀어나온 일면이 자연스럽게 부각된 것이다.

녹화 시간이 늘어나면서 비방송용 언어 때문에 논란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전적으로 제작진 잘못이다. 제작진이 걸러냈어야 할 일들이다. 연예인에게 문제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잘못이다. 출연자와 제작진 사이에는 암묵적 동의가 있다. 출연자는 무슨 얘기든 다 하면 제작진이 알아서 걸러준다는 것이다. 이전처럼 출연자가 방송 용어를 염두에 두고 경직되면 현재 트렌드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육사시미’나 백두산 편에서의 ‘흡연’ 사건은 정제해내지 못한 연출자의 책임이다.

앞으로 예능의 대세는 어떻게 움직일 것이라고 예상하나?

화두는 스토리텔링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성공도 스토리텔링의 도입에서 찾을 수 있다. 예전에도 힌트는 있었다.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와 <GOD의 육아일기> 등이 그것이다. 스토리텔링이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껍데기에 효과적으로 결합되면서 시너지 효과를 거둔 것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힘이 사라지더라도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앞으로도 인기가 많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스토리텔링을 어디에 접목을 시켜나갈지를 생각해내는 것이 예능 PD의 숙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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