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나무’ 축구가 기가 막혀!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07.21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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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4 대표팀, 아시안유스게임 우승하며 발군의 기량 과시…‘골든 제너레이션’ 출현인가

▲ 지난 7월6일 싱가포르 질란 베사르 경기장에서 전승 우승을 거둔 14세 이하 대표팀이 트로피와 금메달을 들어 올리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한국 축구에도 ‘골든 제너레이션’이 출현한 것인가? 제1회 아시안유스게임에서 U-14 대표팀(14세 이하 대표팀)이 우승을 거두면서 축구팬들이 황금 세대의 출현 가능성에 흥분하고 있다. 한국 꿈나무들이 주목되는 것은 단순히 아시아 대회에서 우승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회 중 이들이 보여준 경기력이 놀라웠다. 기존 한국 축구와는 다른 차원의 공간 창출력과 축구 감각을 보여줬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들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 축구팬들만은 아니다. 일선 지도자나 축구 관계자들도 U-14 대표팀의 경기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U-14 대표팀이 우승을 거둔 아시안 유스게임은 지상파나 케이블TV에서 중계하지 않았다. 그만큼 관심의 변방에 있었다는 말이다. 축구팬들이 이들에게 흥분하기 시작한 것은 경기 하이라이트 장면을 묶어 놓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아무도 없는 빈 공간에 찔러 넣었다 싶은 패스를 TV 화면 바깥에서 벼락같이 등장해서 받아 넣는 공간 활용 능력, 문전에서 보여주는 침착성, 세트 피스에서의 집중력이 기존 한국 축구와 달랐다. 특히 축구팬들을 놀라게 한 것은 북한과의 본선 2차전에서 나온 이희찬 선수의 대포알 같은 중거리 슛이다. 30m가 넘는 거리에서 오른쪽 구석으로 총알같이 날아 들어가는 골에 대다수의 축구팬들은 ‘중학생 선수가 맞나’라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골든 제너레이션’의 출현이라고 흥분하는 것도 지나치지 않는 듯하다.

하이라이트 동영상에 축구팬들 흥분

‘골든 제너레이션’이란 한 국가의 축구계를 뒤바꾸어 놓을 정도로 뛰어난 어린 선수들을 일컫는 말이다. 주로 세계청소년대회에서 뚜렷한 성과를 보여준 선수단에게 붙여진다.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예가 포르투갈 ‘골든 제너레이션’이다. 루이스 피구, 마누엘 후이 코스타, 주앙 핀투가 주축이 된 포르투갈 청소년 대표팀은 1989년과 1991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연거푸 정상에 올랐다. 포르투갈은 ‘골든 제너레이션’을 앞세워 유로 2000에서 준우승을 거두었고, 에우제비오가 이끌던 황금기 이후 오랫동안 변방에 머물러 있던 포르투갈 축구의 자존심을 세웠다.

독립 후 처음으로 월드컵에 출전한 크로아티아가 1998년 프랑스 대회에서 예상을 뒤엎고 3위에 오르게 한 주역들도 ‘골든 제너레이션’이었다. 득점왕에 오른 다보르 수케르를 비롯, 즈보니미르 보반, 로베르트 야르니 등은 1987년 세계청소년대회에서 유고슬라비아의 우승을 이끈바 있다. 세계청소년대회를 수시로 가져가는 아르헨티나는 ‘골든 제너레이션’이라는 표현이 어색할 정도로 유망주들이 출몰한다. 세계 축구를 호령하고 있는 리오넬 메시, 카를로스 테베즈,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는 성인 축구에서 기량을 만개하며 축구 강국 아르헨티나를 이끌고 있다.

아직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한국의 ‘골든 제너레이션’에 기대를 하게 되는 것은 이들이 무언가 다른 축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선 창의적인 플레이를 펼치고 공간을 활용할 줄 안다. 볼을 잡은 선수는 어김없이 공간으로 찔러주고 다른 선수는 공간을 향해 뛴다.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은 “어릴 적부터 유럽의 선진 축구를 보아 온 세대이다. 공간을 창출하는 능력과 시야가 깨어 있다. 마음껏 개인기를 부리고, 이것저것 스스로 실험을 하면서 가장 창의적인 축구를 하는 중등 리그의 특징도 한 몫한다. 실제로 경기를 중계하다 보면 가장 재미있는 것이 중등축구이다”라고 말했다. 포항제철중에 재학 중인 이희찬 선수도 “어릴 적부터 해외 축구를 많이 봤다. 해외 축구는 플레이 전개 속도가 빠르고 볼 컨트롤이 좋다. 공의 전개도 경기장 밖에서 보고 조정하는 것처럼 이루어진다. 좋은 플레이는 보고 배우며 모방을 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창의적인 플레이 펼칠 줄 알아

▲ 정정용 감독(맨 왼쪽)이 선수들에게 지시 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문전에서의 침착성과 멀티플레이 능력도 돋보인다. 하이라이트 영상에서 보여준 U-14 선수들은 문전에서 여유가 있고, 슈팅도 구석으로 가볍게 차 넣었다. 자신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감은 개인 기량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대표팀을 이끌었던 정정용 감독은 “선수들의 기본적인 공 소유 능력과 퍼스트 터치(패스를 받았을 때 공을 잡아놓는) 능력이 향상되었다. 퍼스트 터치 능력은 패스를 받고 골을 넣는 데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훈련할 때 강조하는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대회에 참여한 선수들은 모두 두 가지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창의적인 사고와 축구를 이해하는 능력이 있어야 멀티플레이가 가능하다”라고 덧붙였다. 어린 선수들이지만 축구에 대한 목표 의식도 뚜렷하다. 축구선수로서 무엇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레알 마드리드를 가장 좋아하는 팀으로 꼽은 이희찬 선수의 목표는 우선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고 다음은 레알 마드리드가 있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진출하는 것이다. 소속 팀에서 중앙수비수를 보는 이희찬 선수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첼시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중앙수비수 존 테리이다.

자신의 롤 모델과 진출하고 싶은 리그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다. 비단 이희찬 선수만 그러는 것은 아니다. 해외 진출을 목표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선수도 있다. 대표팀 서명원 선수는 프리미어리그 포츠머스 유스팀에서 활약하고 있고,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한 김우홍 선수도 있다. 이희찬 선수는 “적응하는 것이 조금 어렵지만 생활도 편하고 운동하는 것도 다르다며 만족하더라. 그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가능성 있는 신세대 축구스타들이 등장했지만 이들이 한국 축구를 바꿀 것이라고 자신하기는 어렵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골든 제너레이션’이 성인 축구로 이어지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한위원이 기대하는 것은 주말 리그이다.

주말 리그란 2009년부터 축구협회에서 권역별로 운영하고 있는 전국 초중고 축구 리그를 말한다. 동일 지역 또는 인접 지역에 위치한 팀들끼리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운영된다. 초등 리그는 29개 권역 2백66팀, 중등리그는 17개 권역 1백75팀, 고등 리그는 13개 권역 1백35팀이 참가한다. 초·중·고 리그별로 권역 리그 상위 64개팀이 왕중왕전에 참가해 최종 우승팀을 가리게 된다. 전국대회 기간 장기 합숙을 하기 때문에 수업을 듣지 못하는 것과 일부 팀을 제외하고는 경기 경험이 적은 토너먼트 방식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대한축구협회 홍보국 김용수 대리는 “주말 리그 도입은 과도기적인 상태이다. 주말 리그와 방학 중에 펼쳐지는 전국대회가 공존하고 있다. 주말 리그를 정착시키고 전국 대회를 차츰 없애가자는 것이 축구협회의 의도이다”라고 말했다. 축구계의 한 관계자는 “전국 대회가 없어지고 주말 리그로 대체되는 작업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학원 스포츠의 목표는 여전히 우승컵이다. 재단 이사장과 동문회도 성과를 원한다. 연말에 왕중왕 한 팀 뽑는 주말 리그 체제가 달가울 리 없다. 진학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대학 진학을 앞둔 고3 선수들에게 주말 리그의 실행은 갑작스러울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주말 리그와 더불어 권역별로 전임지도자를 두고 우수 선수들을 발굴하는 축구협회의 유소년 정책과 연고 지역의 특정 학교를 지정해서 코칭 스태프를 파견하고 축구단 운영을 지원하는 프로구단의 유스팀 정책도 ‘골든 제너레이션’이 성인 축구에서 만개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U-14 대표팀 구성만 보더라도 프로구단이 지원하는 중학교 출신이 18명 중 9명이나 된다. 우수 자원을 스카우트해서 집중 육성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축구협회 김용수 대리는 “장기적인 축구 발전을 위해서 클럽 단위로 운영되는 것이 맞지만 당장 그렇게 하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른다. 점차 학원 중심의 축구에서 클럽 중심의 축구로 중심축이 움직일 것이다”라고 기대했다.

한국 축구의 가능성은 확인했다. 한국이 유치 신청을 하기도 한 2018년, 2022년 월드컵에서는 U-14 대표팀 어린 선수들이 주역이 된다. 이 선수들이 한국 축구의 진정한 ‘골든 제너레이션’이 되기 위해서는 축구팬과 관계자들의 노력이 함께해야 한다. 정정용 감독은 “이번 18명의 선수들을 지켜봐 달라. 한국 축구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릴 훌륭한 선수로 성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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