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10대 ‘큰손’들이 9조원대 무기를 주물렀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07.2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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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년 동안 우리 군이 사들인 무기는 약 11조2천억원어치에 달한다. 그 가운데 10대 무기중개업체들이 약 9조3천억원 상당의 무기를 중개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방위사업청의 비공개 문건에서

 

▲ 지난 2008년 국군의 날 행사 때 시가 행진을 하는 국군. ⓒ시사저널 임영무

 

‘로비스트’들이 펼치는 무기 중개 사업은 흥미진진하다. 그 규모가 엄청난 데다 국가와 국가 간의 거래 사업이기 때문에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온갖 지략과 음모, 권모술수가 난무한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무기중개상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매년 엄청난 국방예산을 쏟아 붓는 우리나라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그동안 무기 도입 과정에서 무수한 의혹들이 불거졌다. 각 정권마다 무기 거래 사업은 권력 실세들이 개입되면서 대형 게이트로 번지곤 했다. ‘어떤 무기는 어느 무기거래상(혹은 로비스트)이 로비를 해서 계약을 성사시켰고, 거기서 나온 리베이트 일부를 정치인 누구에게 건넸다’라는 식의 루머는 식상할 정도이다. 소문은 무성했지만, 리베이트 액수나 로비의 실체가 드러난 적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국내에서 활동하는 무기중개상의 현황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최근 <시사저널>은 국내 무기중개상 현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문건 하나를 입수했다. 지난해 방위사업청(방사청)이 작성한 ‘최근 10년간 완제품 무기 도입 현황’이라는 제목의 비공개 문건이 그것이다. A4 용지 16장에 빽빽이 기록되어 있는 이 문건에는 지난 1999년부터 2008년까지 최근 10년 동안 우리 군에서 수입한 무기 현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기에는 ‘무기명’과 ‘국가명’ ‘계약 업체명’ 등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무역 대리점명’과 ‘대표자명’ ‘계약 방법’ ‘계약 금액’ 등도 적시되어 있는데, 이는 국내 ‘무기중개상’들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데이터인 셈이다.

지난 1999년부터 2008년까지 무기 중개를 통해 매출을 올린 국내 무기중개상은 모두 1백59개 업체였다. 이 가운데 10년 동안 일부 회사는 문을 닫거나, 회사명을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업체는 현재도 그대로 활동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기자가 입수한 또 하나의 문건인 ‘무기 중개 회사 등록현황’을 보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현재 방사청에 등록된 무기 중개 회사는 모두 9백48개 업체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10년 동안 실제 실적을 올린 1백59개 업체는 전체 무기상 가운데 17% 정도에 불과한 셈이다. 나머지 83%는 ‘개점휴업’ 상태이거나, 무기가 아닌 다른 종류의 무역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튼 지난 10년 동안 무기 중개 사업을 성사시켰던 1백59개 업체들은 모두 6백83건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금액으로는 11조2천4백25억9천3백여 만원에 이른다.

그 가운데 10대 무기 중개 ‘큰손’들이 9조3천4백2억8천5백여 만원 상당의 무기를 중개했다. 전체의 83.08%를 차지하는 규모이다. (위 표 참조) 특히 무기 중개 실적 1, 2위를 차지한 ‘원일 인터내쇼날’과 ‘훠스트 스탠다드 코리아’는 모두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1·2차 사업(F-X 사업)과 관련된 업체들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원일’·‘훠스트’ 양대 산맥, 공군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서 큰 실적

‘원일’의 경우, 무려 6조4천3백62억1천8백여 만원어치의 실적을 올려, 전체의 57.25%를 차지했다. 무기 수입액의 절반 이상을 이 회사가 ‘독식’한 셈이다. 이 회사가 이처럼 타의 추종을 불허하면서 거래 실적을 쌓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원일이 성사시킨 연도별 성적표를 들여다보자. 1990년 2월에 설립된 이 회사는 지난 2000년 미국 ‘MX 엔터프라이즈 시스템즈’의 용접기 레지스트(WELDING MACHINE RESIST)를 3천7백여 만원에 들여왔다. 2002년에는 미국의 레이더온(RAYTHEON) 사와 두 종류의 무기(SAMM FOR KDX과 LPX)를 각각 2백90여 억원, 96억여 원에 들여와 군에 납품했다. 무엇보다 이 회사가 독보적인 실적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1차 사업(F-X사업) 기종으로 미국 보잉 사의 F-15K(40대)가 선정되면서부터였다. 이 사업을 통해 2002년에 무려 4조8천1백55억4천2백여 만원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당시 F-X 사업과 관련해서 갖가지 의혹이 불거졌다. 공군 장교 상당수가 차세대 전투기종으로 프랑스 다소 사의 라팔 전투기를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 이전 조건이나 가격·성능 등 여러 부문에서 F-15를 능가한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특히 공군 차세대 전투기 시험평가단 부단장을 맡았던 조주형 예비역 대령이 “차세대 전투기를 선정하는 과정에 군 안팎에서 외압이 있었다”라고 폭로해 큰 파문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의혹들은 묻히고 말았다. 그러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김효재 의원이 “F-X 사업과 관련해 재미사업가 조풍언씨의 로비가 있었다”라는 의혹을 다시 제기했다. 차세대 전투기로 F-15가 선정되는 과정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절친한 조씨가 개입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처럼 의혹은 여전하지만, 원일은 F-X 사업권을 따낸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 2004년에는 미국 레이더온의 제품(SAMM FOR KDX-3)을 들여왔고, 2006년에는 보잉의 ‘공중 조기 경보·통제 시스템’을 1조5천5백22억여 원에 수입해 군납했다.

 

▲ 방위사업청이 작성한 대외비 문건과 우리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F-15K. ⓒ시사저널 이종현

 

이에 대해 원일의 서정순 사장은 지난 7월16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아마도 방사청 전산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라고 문건의 내용을 부정했다. 그는 “우리 회사가 현재 보잉 사의 에이전트인 것은 맞다. 하지만 당시(2002년) F-X 사업 계약에 참여했던 다른 회사가 또 있었다. 우리는 (그 회사와는) 관계가 없다. 다만, F-15로 계약된 후에 전투기가 들어오고, 장비가 들어오면서 지원한 적은 있다. 계약 후에 관리 업무를 맡았다. 그런데 방사청에서는 우리 회사가 현재 보잉 사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다는 이유로 전체 F-X 사업을 우리가 다 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서사장의 해명은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의 장황한 해명에 대해 기자가 계속 질문하자 “우리 사업 특성상 자세히 답변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조풍언의 기흥물산, DJ 정권 시절 2~3년 실적으로 ‘3위’ 올라

원일에 이어 2위를 차지한 ‘훠스트 스탠다드 코리아’는 지난 2008년에 F-X 2차 사업을 중개했다. 지난 1988년 설립된 이 회사는 지난 2007년까지 단 한 건의 무기 거래 실적도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혜성’처럼 나타나 F-15K 21대를 오는 2012년까지 수입하기로 한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 계약 금액은 2조6백45억3천4백여 만원에 달했으며, 이 한 건만으로도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8.36%였다.

이처럼 ‘원일’과 ‘훠스트’ 두 회사만 합쳐도 금액으로는 8조5천7억5천3백여 만원에 달한다. 전체의 75.61%에 해당하는 셈이다. 한마디로 ‘원일’과 ‘훠스트’ 등 양대 산맥이 미국의 보잉 사를 상대로 F-X 사업을 통해 무기 중개 시장을 거의 독점한 셈이 된다. 

3위에 오른 ‘기흥물산’은 우리에게도 상당히 낯이 익은 업체이다. 무기중개상으로 유명한 조풍언씨가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이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었기 때문이다. 기흥물산은 1천5백93억9천2백여 만원의 계약을 성사시켜 전체의 1.42%를 차지했다. 지난 1999년 미국 ITT 사의 ‘내장형 전자전 장비’를 1천1백47억8백여 만원에, 미국의 트랜스에어로(TRANSAERO) 사의 ‘에어 헬멧’을 7천여 만원에 각각 들여왔다. 2000년에도 ITT 사 제품을 4백46억여 원에 수의 계약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지난 2001년 8월 이 회사는 갑자기 문을 닫았다. 서울의 한 무기중개상은 “당시 업계에서는 기흥물산의 실제 사장이 조풍언씨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래서인지 김대중 정부 시절 그 회사는 잘나갔는데, 갑자기 회사 문을 닫아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라고 전했다.

기흥물산이 문을 닫은 다음 해인 2002년 정치권에서는 조씨가 도마에 올랐다. 당시 한나라당은 조씨가 기흥물산의 실제 대표이며,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에 수십 건의 군납을 따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조씨의 배후에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들이 있다고 겨냥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국방부는 조씨에 대한 특혜 의혹과 대통령 아들 배후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4위인 ‘옥포무역’은 1999년부터 2004년까지 ‘근접 방어 무기 체계’ 등 네덜란드산 무기 5건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금액으로는 1천5백87억5천여 만원이었으며, 전체의 1.41%를 차지했다. 다섯 번째로 실적을 올린 ‘헬리텍 인터내쇼날’은 2004년 단 한 차례만 미국산 ‘지휘헬기(VH-X)’를 1천1백92억여 원에 계약해서 군납했다. 6위에 오른 ‘퍼시픽 시스템 인터내쇼날’은 1999년과 2000년에 각각 이스라엘과 미국산 무기 1천67억여 원어치의 거래를 성사시켰다.

7위를 차지한 ‘씨스텍 코리아’는 1999년부터 2006년까지 비교적 꾸준히 실적을 쌓았다. 이 회사는 독일산 ‘추진기’와 ‘발전기’, ‘선체고정음탐기’ 등 모두 17건, 8백3억여 원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8위인 ‘디펜스텍’은 지난 2007년 스웨덴 ‘사브’ 사의 무기 위치 레이더(weapon locating radar)를 7백86억여 원에 계약했다. 9위에 오른 ‘동지 인터텍’은 지난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이스라엘과 독일산 무기 계약을 성사시켰다. 계약액은 7백45억여 원이다.

10위에는 ‘LG상사’가 올랐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회장이 운영하는 이 회사는 지난 2001년과 2002년에 러시아산 ‘수중 권총과 소총’ ‘탐색구조헬기’ 등 3건으로 6백20여 억원의 계약을 성사시켰다.  

무기 중개 액수를 보면, 연도별로 그 차이가 상당히 컸다. F-X 1·2차 사업 계약이 성사되었던 2002년과 2008년에는 계약 금액이 수조 원에 달했으나, 2001년과 2003년에는 ‘고작’ 수백억 원대에 머물렀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면 △1999년에는 5천91억여 원 △2000년 1천9백25억여 원 △2001년 7백89억여 원 △2002년 5조6천5백87억여 원 △2003년 8백87억여 원 △2004년 3천6백57억여 원 △2005년 1천2백94억여 원 △2006년 1조6천4백66억여 원 △2007년 4천9백70여억 원 △2008년 2조7백60여 억원이었다. 김대중 정권 4년 동안 사업 규모가 6조원이 넘는 규모로 이것은 노무현 정권의 배에 해당한다.

 

 



미국산 ‘편식’하는 세계 3위 무기 수입국

 

우리의 무기 수입이 지나칠 정도로 미국에 편중된 사실도 확인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무기중개상들은 미국·러시아·독일·이스라엘 등 해외 24개국에서 수입해 군에 납품했는데, 최대 수입국은 예상대로 미국이었다.(왼쪽 표 참조) 미국으로부터 모두 3백33건, 계약 금액으로는 9조3천4백21억여 원에 달하는 무기를 들여왔다.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83.1%로 압도적이었다. 다음은 러시아로 6천1백84억여 원(5.5%), 독일 5천2백5억여 원(4.7%), 이스라엘 2천3백91억여 원(2.1%) 순이었으나, 미국과 비교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밖에 네덜란드 1천5백88억여 원(1.4%), 영국 1천29억여 원(0.9%) 순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군사력의 해외 의존도가 갈수록 심해진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내놓은 ‘방위산업 재정 지출 성과와 과제: 방위 산업 위기와 핵심 군사력 해외 의존 심화’라는 분석 자료를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3년 수입액은 5억7천5백만 달러였는데, 5년 뒤인 지난 2007년에는 18억7백만 달러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수출은 세계 17위인 데 반해 수입은 중국과 인도, 아랍에미리에이트, 그리스 등에 이어 세계 5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스웨덴 연구 기관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 동안 무기 수입 총액 기준으로 중국과 인도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가 몇 년 사이에 세계 3위 무기 수입국으로 ‘올라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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