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달·지구 일렬로 선 ‘우주쇼’ 일식
  • 이은희 (과학저술가) ()
  • 승인 2009.07.2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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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서는 흉조로 받아들여진 어둠 미실의 월식 예언은 ‘책력’ 덕분에 가능해

▲ MBC 월화 드라마 의 월식 장면. ⓒMBC 제공

지난 7월22일, 지구상에서는 최대의 우주쇼가 열렸다. 태양과 달과 지구가 정확하게 일직선상에 놓이면서 지름이 태양의 1/400에 불과한 달이 커다란 태양을 완전히 가려버리는 절묘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전세계에서 수억 명의 사람들이 태양이 붉은 초생달이 되었다가 완전한 암흑 속에 빠지는 장관을 즐겼다.
사람들이 일식이나 월식 같은 천문학적 현상을 그저 ‘즐길 수 있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역사를 통틀어 이들의 출현은 대개 흉조로 받아들여졌다. 천문학은 가장 일찍부터 발달한 학문이다. 사람들은 지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 하늘을 살폈다. 동양에서는 하늘을 자미원·태미원·천시원의 3원으로 구분하고 각각을 왕이 기거하는 궁궐, 신하들이 거주하는 조정, 백성들이 살아가는 도시 혹은 시장으로 여기며 하늘에도 지상과 동일한 세상이 있다고 믿었다. 여기에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다’라는 이념이 정치 근간이었기에, 임금은 하늘의 움직임을 늘 예의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천문학적 돌발 상황은 왕의 실정(失政)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졌다. 고대인들이 천문학을 ‘제왕의 학문’으로 받아들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왕들은 하늘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이를 정확히 예측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세종실록 4년(1422년 1월1일)에는 일식 예측을 1각(약 15분) 잘못했다는 이유로 세종이 격노하여 일식예보담당관인 이천봉에게 장형(杖刑)을 내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늘의 움직임을 부정확하게 예측한 것 자체가 임금의 위엄에 손상을 가했다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별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역법,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정확한 책력(冊曆)은 왕조의 정당성과 제왕의 권위를 만천하에 알리는 방법이자 수단이었다. 태조가 조선 건국 원년에 서운관(천문을 맡아보던 관청)을 다시 세웠고, 세종이 오랜 시간을 들여 학자들에게 수많은 천문 기구를 제작케 하여 이순지와 김담에게 조선의 역법을 바탕으로 칠정산을 제작하게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 전까지는 중국으로부터 책력을 수입해서 썼다.

고대인들의 천문학은 ‘제왕의 학문’

뉴턴 이후 별의 움직임은 물리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과학’이 상식이 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자연의 법칙성을 통해 도출된 과학 법칙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막강한 권력으로 작용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MBC 드라마 <선덕여왕>이 이를 잘 보여준다. 신라 권력을 한몸에 지닌 미실은 ‘인력구(人力口, 가야(伽)를 뜻하는 파자)를 추방하지 않으면 달이 빛을 잃게 될 것(월식)’이라는 ‘예언’을 통해 자신에게 대항할 가능성이 있는 가야 세력의 싹을 잘라버리려 한다. 미실의 말대로 월식은 일어나고 결국, 가야 유민의 추방은 하늘의 뜻이 되어 정당성을 갖게 되며 미실은 세속적 권력뿐 아니라 신성성까지 획득하게 된다.
미실이 이를 모두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정말로 하늘과 교감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정확한 책력을 ‘혼자서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래로 과학적 지식의 독점은 권력의 바탕이 되어왔다. 하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과학을 잘 모르고 있다.

월식을 중요한 테마로 다룬 이 드라마에서도 월식이 일어나는 방향을 거꾸로 묘사했고, 현대 과학의 총아인 인터넷에서조차도 일식을 보도한 기사 아래 ‘흉사가 일어날 징조’라는 댓글이 줄줄이 달리는 실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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