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선 두 남자의 동행
  • 이재현 (yjh9208@korea.com)
  • 승인 2009.08.0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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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살해하고 기억을 잃은 남자…가족을 버리고 떠난 남자

▲ 감독: 다니엘르 알비드 / 주연: 멜빌 푸포, 알렉산더 시디그

7월 말~8월 초. 무더위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여름 한철에만 휴가를 주니 1년에 한 번, 피서를 겸한 ‘떠나기’가 펼쳐진다. 더위를 잊기 위해 더위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가면서 후회하고 오면서 후회한다. 교통 정체에 바가지 상혼이 해마다 거듭되는데도 마치 그것을 즐기려는 것처럼 떠난다. 한가한 시절 다 놓아두고 꼭 사람 많을 때 떠나는 사람들을 보면 그 속내를 알 수가 없다.

방학과 겹친 피서철을 겨냥한 극장가가 멀리 가지 않고 도심에서 영화와 함께 피서를 하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국산 블록버스터 <차우>에 이어 개봉한 <해운대>가 순조로운 출발을 보여 과연 얼마만큼의 관객을 모을지 벌써 주목을 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재미있는 영화가 아니더라도 작은 극장에서 좀 심각한 ‘작품’을 보는 것도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될 듯하다.

아내가 간통을 했다고 믿고 그녀를 살해한 다음 집을 뛰쳐나와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거리를 헤매는 푸아드(알렉산더 시디그 분)는 아내와 딸이 있는 집을 버리고 여행 중이던 사진가 토마스(멜빌 푸포 분)를 만난다. 정신 나간 얼굴을 하고 있는 푸아드(레바논인)에게 호기심을 느낀 토마스(프랑스인)는 그를 통역사로 대동하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 토마스는 밤마다 술집을 찾아다니며 여자를 구하고, 숙소로 데려와 정사를 나눈다. 같은 방에서 이를 지켜보는 푸아드는 반응이 없다.

여자 하나로는 안 된다며 밤마다 여자를 갈아치우는 남자와 도무지 말이 없는 남자의 이 기이한 동행은 목적지가 없다.

밤마다 술집에서 여자를 구하다

감독은 이 두 남자가 왜 이렇게 방향성 없이 돌아다니는지 설명해 주지 않고 있다. “레바논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살았지만 내 인생은 조국에서도 완성되지 않았고 프랑스에서도 완성되지 않았다.” 감독의 말이다. 푸아드와 토마스를 통해, 모국을 버렸지만 프랑스인도 아닌 자신의 인생을 보여주려 했나. 내전을 거친 레바논에서 프랑스로 건너간 감독의, 가고 싶지만 가기 싫은 조국을 보여주려 했나.

<로스트 맨>은 상당 부분을 정사 장면으로 채우고 있다. 채울 수 없는 공허감을 무미건조한 정사로 채우려 했던 듯하다. 영화를 보는 유일한 위안은 바에서 흘러나오는 중동의 음악과 무희들의 춤이다. 오랜만에 보는 난해한 영화이다. 상영 시간 93분. 8월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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