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하다 병원 실려 간 슈퍼 대통령
  • 파리·최정민 통신원 ()
  • 승인 2009.08.04 17: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젊은 이미지 망신살“건강에 문제 있으면 국민에게 알리겠다”

▲ 니콜라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오른쪽)이 입원한 파리 군 병원에서 방문객 차를 검문하는 프랑스 경찰. ⓒEPA(왼쪽), REUTERS(오른쪽)


프랑스의 여름 스포츠는 뭐니뭐니해도 사이클이다. 프랑스 전국을 질주하는 ‘뚜르 드 프랑스’는 여름 바캉스를 알리는 전례 행사이며, 경주의 종착점은 파리 개선문이다. 샹젤리제와 콩코드 광장을 돌아 결승점에 들어오는 날 파리는 축제 분위기로 들뜬다. 올해는 은퇴 후 다시 등장한 미국의 랜드 암스트롱의 복귀 무대로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날 뉴스를 장식한 것은 사이클의 우승자가 아닌 조깅 중 실신한 사르코지 대통령이었다.

슈퍼 대통령이 쓰러졌다. 과거와의 단절을 표방하며 노쇠했던 전임 시라크와 차별화된 젊고 강한 대통령의 상징이었던 사르코지가 어이없게도 조깅을 하다가 병원에 실려 간 것이다. 영국 가디언을 비롯한 유럽 언론들은 사르코지의 그동안의 행보와 건강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기 바빴다.

그리고 그러한 호사가들의 입방아와 함께 다시 고개를 든 문제가 대통령의 건강 문제이다.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는 대통령의 건강 문제에 있어서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해 왔다. 전임 시라크 대통령 이전의 퐁피두 대통령과 미테랑 대통령이 모두 암 투병 사실을 숨겼던 것에서 보듯 국가 수반의 건강 문제는 일급비밀이었다.

이러한 풍토는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권력의 공백과 권력 누수에 대한 국민적 불안에서 말미암은 바가 크다. 그러한 불안을 낳은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미테랑 대통령이었다. 미테랑 대통령은 재임 시절 공개 대담에서 건강 문제에 관한 한 질문자인 앵커가 무안할 정도로 불쾌하게 받아들이며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하면서도 암 투병 사실을 끝까지 밝히지 않았었다. 이러한 그의 이중적인 행보는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보면 어쩔 수 없던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국가 수반은 미테랑이었지만, 자신이 소속한 사회당이 하원선거에서 참패하여 내각을 우파에게 넘겨준 동거 정부를 구성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각료회의 풍경을 두고 한 정치 원로는 “주위에 온통 적들에게 둘러싸인 노쇠한 왕의 모습이었다”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건강과 관련해 비밀을 유지하는 것은 권력 누수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사회당이 최악의 참패를 당한 당시의 선거 직후 “그래도 국민은 대통령과 함께 할 것이다”라는 위안 아닌 위안이 회자될 정도였다.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 관심거리

이번에 사르코지가 입원했을 때 이미 잡혀 있던 일정이었던 경제 인사들과의 면담을 주관한 크리스틴 라 갸르드 재정부장관은 다음 날 뉴스에 출연해 대통령의 상태를 설명하며, “대통령을 대행하게 되는 것인가?”라는 앵커의 질문에 “대통령을 대행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대통령이 직접 챙길 것이다”라고 못 박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미 사르코지의 부재를 두고 어떠한 권력 누수도 없다는 것을 강조한 셈이다.

그러나 미테랑 대통령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건강을 정치적으로 잘 활용했다. 재임 당시 첨예하게 대립했던 유로화 도입 문제와 관련해 국민 투표를 앞두고 당시 반대파의 선봉장이었던 필립 세갱 의원과의 텔레비전 대담에서 세갱의 기선을 제압하여 여론을 돌려놓기도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한 프랑스 민영 방송의 분석에 따르면, 방송 전 대기실에서 링거를 맞는 대통령을 목격한 세갱이 대통령의 건강을 의식한 나머지 마음 놓고 공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치 분석가이자 <렉스프레스>의 편집장인 크리스토프 바르비에는 당시의 대담에 대해, “미테랑의 건강을 의식한 세갱은 성격대로 거칠게 몰아붙이지 못했다. 마치 할아버지를 조르는 아이처럼 ‘유로화 안 하면 안 돼요?’라고 매달리고 있었다”라고 술회했다. 그리고 며칠 후 이루어진 국민 투표에서 유로화 도입 법안은 51%의 찬성으로 통과된다. 그 이후로도 정치적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미테랑은 텔레비전 대담을 자청해 노쇠한 이미지로 동정론을 모아왔다는 것이다.

사르코지가 이번 건강 문제를 미테랑처럼 잘 넘길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이번 입원 사태를 두고 각계각층에서 쏟아진 안부를 묻는 메시지에 사르코지는 무척 만족했다는 후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사르코지는 인맥 관리 사이트인 페이스북에 인사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지난 7월30일 올해의 마지막 각료회의 후(프랑스는 여름 바캉스를 기준으로 회기가 끝나고 바캉스 후 새로운 회기로 접어든다)  “나 또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프랑스 민영 방송이 조사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통령이 너무 바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66%의 프랑스 국민들이 “그렇다”라고 답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르코지는 엘리제궁에서 열린 마지막 각료회의에서 자신의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힌 뒤 3주간의 휴가에 들어갔다. 그는 “혹시 건강에 문제가 있으면 숨기지 않고 국민에게 알리겠다”라고 말했다.
건강 문제를 공개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던 전임 대통령들의 행태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사르코지는 남부 지중해 연안에 있는 브루니 여사의 별장에서 휴가를 보낼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입원했던 군 병원 의료진들은 대통령에게 ‘운동을 줄이고 식사를 많이 할 것’과 ‘충분한 휴식을 취할 것’을 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유럽 언론들은 사르코지가 휴가를 어떻게 보낼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전처럼 사이클 등을 타며 다시 활동적인 모습을 과시할지 아니면 조용히 휴식하는 모습을 보일지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편, 사르코지는 바캉스를 떠나는 각료들에게 “어려운 문제들이 우리 앞에 있다”라고 전제한 뒤 ‘각오하고 돌아올 것’을 주문했다는 후문이다. 이를 두고 르 피가로는 “사르코지가 벌써 새로운 대형 프로젝트들을 던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자신의 건강에 대해 일고 있는 의구심을 불식시킬 새로운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거나 ‘젊은 대통령’ ‘슈퍼 대통령’으로 불렸던 사르코지가 이번 일로 입은 이미지 타격을 앞으로 어떻게 회복할지 지켜볼 일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