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가 뭐가 무서워”
  • 충남 금산·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09.08.0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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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탐방 다녀온 이재오…당 복귀 위해 내년 1월 전당대회 노릴 듯

ⓒ시사저널 임영무

여야 정치권이 미디어법 공방으로 벼랑 끝 대치를 벌이는 동안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잠시 여의도를 떠나 있었다. 이 전 최고위원은 7월25일부터 31일까지 충남 금산과 전남 순천으로 농촌 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여름 휴가철에 맞춘 연례행사라고 하지만 정계 복귀를 준비 중인 여권 실세 정치인의 행보로서는 다소 의외였다. 당초 구상했던 9월 조기 전당대회를 통한 복귀 계획이 암초를 만난 상황이라 더욱 그러했다. 따라오겠다는 측근 의원들과 취재진까지 따돌리며 떠난 1주일간의 여정, 그는 어떤 해법을 구상했을까.

지난 7월28일 금산군 남이면의 한 인삼밭에서 만난 이 전 최고위원은 주민들의 일손을 돕느라 분주했다. ‘금산 인삼 농협’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모자 틈새로 흰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삐져나온 모습은 여느 농부와 다르지 않아 보였다. 이날 새벽 6시부터 시작된 인삼 수확 작업은 정오 무렵이 되어서야 마무리되었다. 밭두렁에 차려진 점심을 먹으면서 “밥벌이 했죠?”라며 웃는 그에게 한 마을 아주머니가 “품삯 줘야겠네”라며 농담을 건넸다.

이마에 맺힌 땀을 닦고 있는 그에게 왜 농촌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는지를 물었다. 충청과 호남으로 내려온 데도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매년 여름마다 휴가 대신 농활을 해 왔다. 지난해에는 미국에 있어서 못 왔지만 재작년에는 강원 인제, 충북 단양, 경남 진주 세 곳을 돌았다”라며 정치적 해석을 경계했다.

그는 “여기 내려와서 일하면 잡념이 없어진다. 여의도나 정치 생각이 싹 달아난다. 그래서 사무실 식구 이외에는 못 오게 했다. 다른 정치인들도 함께 오겠다는 것을 일절 못 오게 했다. 일하는 데 피해만 준다”라고 말했다. 의도적으로 정치권과 거리를 두려는 몸짓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 전 최고위원은 임시 숙소로 정한 금산농업기술센터 기숙사까지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자전거를 타고 갔다. 12㎞나 되는 만만치 않은 거리인 데다, 도중에 오르막길도 여러 번 만나 페달을 밟는 그의 발이 무거워 보였다. 비까지 맞아 축축한 몸으로 자전거를 타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의 대답은 “딴생각하면 사고 난다. 앞만 봐야지”였다.  

흔히 말하는 ‘이재오식 정치’ 스타일 역시 앞만 보고 달리는  자전거와 같다고 한다. 좀처럼 옆으로 눈길을 주거나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 그의 정치 스타일이었다. 그를 따르는 이들이 많은 만큼 경계하는 이들도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야당은 물론 같은 당내에도 ‘안티 이재오’ 세력은 상당하다. 이로 인해 귀국한 지 100일이 지나도록 어떠한 역할을 맡을 계기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반대자가 없는 지도자는 지도자라고 할 수 없다. 미국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도 안티가 많았고 링컨도 엄청나게 안티가 많았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그렇다. 정치인에게 안티는 으레 있는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안티 때문에 할 일을 못해서야 되겠나. 동서고금 모든 지도자가 다 마찬가지이다.”

우회하기보다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직설적인 화법은 여전하다. 그는 에둘러 말하는 정치적 수사와 거리가 멀다. 최근 단문 메시지 송수신 사이트인 트위터에 올린 그의 글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7월21일 이 전 최고위원은 ‘한 집안에 권력자가 두 사람이 있으면 그 집은 무슨 일을 해도 성과가 없다’라는 글을 올려 논란을 불러왔다. 하루 전날인 20일에는 ‘멀쩡한 사람을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느니, 건강이 어떻게 나쁘다느니, 그저 나를 나쁘게만 헛소문 내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악성 루머를 누가 왜 퍼뜨리는지 진원지가 여의도라니 알 것 같기도…’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 서울을 떠나 민생 탐방 중인 이재오 전 의원이 지난 7월28일 충남 금산군의 한 인삼 재배 농가에서 출하 작업을 마치고 농민들과 함께 점심을 같이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시사저널 임영무

“농민들과 생활하며 흐트러졌던 생각 정리해”

거침없던 이 전 최고위원의 기세는 미디어법 강행 처리 파동과 한나라당 서울시당위원장 경선 이후 다시 주춤해졌다. 최근 며칠 동안은 트위터를 이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의 글을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데 대한 부담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별 생각 없이 하루에 한두 번 글을 올렸는데 정치적으로 채색을 하니까 올리기가 조심스럽다. 그런 의도가 아닌데도 현실에 빗대어 해석을 한다”라고 말했다.

이 전 최고위원의 심경이 편치 않아 보인다. 그의 정계 복귀는 험난한 가시밭길의 연속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내심 기대했던 9월 전당대회는 ‘친박(친박근혜)계’를 중심으로 한 부정적인 여론에 밀려서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친박계의 지원을 받아 당선된 중립 성향의 권영세 서울시당위원장도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역시 두터운 친박계의 벽이 다시 한 번 입증된 셈이다.

정계 복귀를 여전히 “준비 중이다”라고 말하는 이 전 최고위원에게 전당대회에 대한 입장을 묻자 “이번에 내려와서 농민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서울에서 흐트러지고 혼란했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즉답을 피했지만, 사실상 9월 전당대회는 포기한 듯한 뉘앙스였다. 이 전 최고위원의 최측근 인사 또한 “현실적으로 9월 조기 전대는 힘들어진 것 아니냐. 다음 수순을 준비할 수밖에 없다”라고 귀띔했다. 복귀를 위한 첫 번째 구상이 이미 헝클어진 셈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현장에서 몸으로 일을 해야 생각이 맑아진다. 그러지 않으면 관념에 치우치게 된다. 일을 하면서 생각을 현실화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가 이제 ‘현실화할 수 있는 생각’은 무엇일까. 10월 재·보선 출마도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내각에 참여하는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 때마침 그의 입각설이 다시 고개를 드는 분위기이다. 이대통령의 구상과 맞아떨어지면 개각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주변에 ‘안티’가 많다는 지적이다.

이 전 최고위원 자신도 내각 참여보다는 당 복귀에 더 무게를 두는 듯한 행보를 보여왔다. 한 측근은 “당에서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이 아직도 강하다”라고 전했다. 결국, 당 복귀를 위해 다소 시간을 갖고 밖에서 준비하면서 내년 1월의 전당대회를 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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