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야생’ 앞세운 남자들 천하
  • 하재근 (문화평론가) ()
  • 승인 2009.08.10 18:1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9년 상반기 TV 예능 분야, <무한도전> <1박2일> <패밀리가 떴다>가 ‘삼분’

▲ SBS 는 스타 게스트를 적절히 배치하고 아기자기한 재미를 보여준다. ⓒSBS 제공


2009년 상반기 예능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역시 ‘리얼버라이어티 삼국지’라고 할 수 있다. 예능의 판도를 가르는 주말 황금 시간대에 세 개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천하를 삼분했다. 바로 <무한도전> <1박2일> <패밀리가 떴다>이다. 

원조는 당연히 <무한도전>이다. <무한도전>은 올해에도 매주 컨셉트를 바꿔가며 마르지 않는 창조성을 과시했다. <무한도전>은 한때 위기를 맞았었다. 프로그램 자체의 흥미도도 떨어지고, 성공에 따른 견제 심리로 <무한도전>을 비판하는 기사가 양산되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부활에 성공했다. 끊임없는 도전과 공감을 얻어내는 소재를 발굴한 결과이다.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난 <무한도전>은 이제 ‘존경받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올 상반기를 마감하며 준비한 듀엣가요제 특집으로 또 한 번 대박을 쳤다. 방송이 끝난 2주 후까지도 듀엣가요제 관련 소식들이 이슈의 중심에 오를 정도로 엄청났다. 

<1박2일>도 2008년 후반에 위기를 맞았었다. 흥미도는 떨어지면서도 견제 심리는 강해진 형국이었다. 하지만 지난겨울부터 반전이 시작되었다. 강한 체력의 남성들로 구성된 <1박2일>은 극한의 여행 아이템으로 시청자를 공략했다. 욕을 먹어도 끊임없이 도전한 끝에 결국, 시청자를 승복시켰다. 또, 스타의 화려함을 배제한 인간미로 승부를 걸었다. 연예인 게스트가 아닌 평범한 보통 사람들, 심지어는 제작진까지 참여시켰던 것이다. 이것은 프로그램을 다시 살렸다. 이렇게 부활한 <1박2일>도 역시 존경받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패밀리가 떴다>는 도전 정신, 창조성이나 극한의 체험, 인간미 등으로 승부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이것은 남녀가 함께 떠난 MT에서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한 재미를 추구한다. 스타 게스트를 적절히 배치한 아기자기함은 일요일 밤 시청자를 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올 상반기 네티즌의 견제가 점점 강해지는 위기를 맞았다.

최근 <1박2일>이 포함된 <해피선데이>의 통합 시청률이 <패밀리가 떴다>를 꺾어 파란을 일으켰었다. <해피선데이>의 또 다른 코너인 <남자의 자격>이 선전했기 때문이다. <남자의 자격>은 리얼버라이어티 삼국지 이후에 출발한 후발 주자 중에서 가장 크게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것은 30대에서 50대에 이르는 아저씨들이 진정한 남자다움을 찾아간다는 컨셉트를 지니고 있다. 남자의, 남자를 위한, 남자에 의한 프로그램인 것이다. 이것이 성공했다.

남자들의 우정·인간미 등이 감동과 위안 줘

<무한도전>도, <1박2일>도 모두 남자들의 세계이다. <패밀리가 떴다>에서도 여자는 소수이다. 남녀가 동수로 나오는 짝짓기 포맷은 전멸했다. 30대 이상의 아저씨들이 예능계를 점령하고 있다.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여성형 예능 프로그램은 겨우 숨만 쉬고 있는 분위기이다. <골드미스가 간다>와 <세바퀴>가 그나마 선전하고 있는데, 모두 일반적인 여성성과는 상관이 없는 ‘드센 여자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굴욕적인 침체는 상반기에 많은 화제를 양산했다. 망해도 너무 망했다. 유명 MC들을 단체로 초빙해도, 소녀시대를 전면에 내세워도, 뭘 해도 되는 일이 없었다. 상반기 말쯤에 처음으로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주목받는 코너가 나타났으니 그것이 바로 <오빠밴드>이다. 이것도 아저씨 예능이다. 토요일에 시작된 <천하무적 야구단>도 역시 아저씨들의 활극이다. 야생이 강조되는 리얼버라이어티의 시대에는 남자가 더 유리했다.

평일에는 <해피투게더> <야심만만2> <놀러와> 같은 스튜디오 토크쇼들이 안정적인 인기를 얻었다. 지나친 스타 사생활 캐기로 종종 물의를 빚었지만, 대중이 스타에게 관심을 가지는 한 이런 프로그램은 영원할 것이다. 토크쇼 분야에서는 특히 <무릎 팍 도사>의 선전과 <박중훈 쇼>의 몰락이 강렬히 대비되었다.
공개 코미디의 몰락 속에 <개그콘서트>의 선전이 눈길을 끌었다. <개그콘서트>는 수많은 유행어를 폭풍처럼 양산하며 예능계의 인재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분장실의 강선생님>은 상반기 최대 히트작이라 할 만했다. 반면에 <개그야>와 <웃찾사>는 끝없이 추락했다.

종합하면 한국인은 요즘 가식을 벗어던진 리얼 야생에 통쾌함을 느끼며, 동시에 남자들이 보여주는 우정, 인간미, 따뜻함 등에서 감동과 위안을 얻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인기를 얻는 예능 프로그램에는 모두 출연자들 사이에 정이 흐르며, 가식 없이 감정을 폭발시킨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 대망>은 바로 그 정의 느낌을 주지 못함으로써 올 상반기 가장 화려하게 망한 프로그램에 등극했다.


재석·호동 ‘쌍벽’을 누가 넘보랴

 
사람 중심으로 보면 역시 유재석·강호동의 <초한지>가 핵심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유방처럼 후덕한 배려형 리더십의 소유자인 유재석과, 항우처럼 카리스마 파워형 리더십의 소유자인 강호동이 예능계를 사실상 양분했다. 주말에는 주말대로, 평일에는 평일대로 ‘유·강 초한지’는 올 상반기에도 끝날 줄을 몰랐다.

이경규의 부활이 상반기의 화제였다. 이경규와 호흡을 맞춘 김국진도 함께 부활했다. 새롭게 예능인의 대열에 합류한 김태원도 화제였다. ‘길’과 ‘붐’도 조용히 영역을 늘려나갔다.

이들을 비롯해 남자 중심 리얼버라이어티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거의 모두 평균 이하·루저·싼티·굴욕 코드로 무장해 사랑받았다.  스튜디오 속에서 럭셔리하게 앉아 있는 1인자의 이미지가 강한 신동엽·김용만 등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 탁재훈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신정환은 ‘부실닭’으로 사랑받았으나 어느 순간부터 예능의 총아로 격상된 후 급격히 위상이 하락했다.

김구라는 약보합세였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지금 <오빠밴드>나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새 코너에 모여 절치부심하고 있다. 상반기 마지막의 깜짝 예능 스타는 최근 ‘시청률 70%의 사나이’가 되어버린 <1박2일>의 이승기라고 할 수 있다.

반대로 마지막에 지뢰를 밟은 스타는 단연 윤종신이다.

윤종신은 <무한도전> 듀엣가요제 관련 모습에서 최근 트렌드와 정반대인 거만함과 자기 이익 챙기기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바람에 대중 정서법의 철퇴를 맞았다. 실제로 그런 것이 아니라 완전히 오해였는데도 정서법은 무서웠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