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결국은 핵 포기할 것”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08.1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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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인터뷰 / “미국 국가 이익에 한·미 동맹은 일부분일 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시사저널 유장훈


이명박 정부가 또다시 중대한 기로에 섰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방북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만난 이후 대북 관계의 주도권이 미국으로 넘어갔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현 정부도 다소 당황해 하는 기색이 엿보인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지금은 남은 이명박 정부의 3년 반 임기를 좌우할 만큼 아주 중요한 시점이다”라고 강조한다. 무언가 획기적인 전환카드가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김대중 정권 마지막과 노무현 정권의 처음 통일부장관을 지냈다. 현 정부의 대북 정책에 있어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전직 통일부장관으로서 정권 이해관계 차원이 아니라, 오로지 국가를 위해 진심으로 충언하고 싶다”라며 인터뷰에 응했다.  

이번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에 대해 ‘북·미 간 빅딜의 실마리 격’이라고 평가했는데.

북한과 미국 간의 현안이 기본적으로 핵문제이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대선에서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최근 다시 한 번 자신의 임기 중에 핵무기 없는 세계를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재천명했다. 그런 면에서 북핵 문제는 가장 발목을 잡는 요인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동안 미국과 북한의 대치 정국에서도 실제로는 꾸준히 물밑 접촉이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에도 물밑에서 약 4개월간 협상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나. 그런데 단순히 여기자 석방 문제만 놓고 4개월을 협상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를 계기로 해서 북·미 간의 전반적인 현안 문제에 대해 광범위한 의견 조율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번 방문에 대해 미국 정부는 지나친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눈치가 역력해 보인다.

오바마 정부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첫째는 미국이 현재 대북 제재 결의안을 주도하고 있고, 실제 대북 제재 조정관이 현재 세계를 순회하고 있다. 그런 마당에 “이번 방북이 북·미 관계의 새로운 시작의 단초이다”라고 자처하고 나서기는 어렵다. 둘째로 현재 미국 방북단은 평양 현장에서 취득한 김정일 위원장의 얘기와 현지 분위기들을 본격적으로 분석하고 있을 것이다. 그 분석이 끝나서 결과와 대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절대 구체적인 언급을 피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뿐이다.

현재 미국의 신중한 태도는 한국 정부를 고려한 측면도 있다고 보는가?

한국 정부의 체면을 고려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의 대외 관계 전략이다. 그 특징 중의 하나가 절대 정보를 완전히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오바마 대통령이 생각하는 미국의 국가 이익과 이명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한국의 국가 이익은 다를 수 있다. 실제 김영삼 정권 때인 지난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한·미 간에 이런 갈등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한·미 간의 동맹 강화도 중요하지만, 우선순위는 동북아시아의 안정과 질서가 지켜지고 서태평양 및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굳건히 바로 서는 것이다. 미국의 리더십이 손상당할 위험이 있으면, 미국은 독자적 행동을 해서라도 일단 자기들의 리더십을 굳혀놓고 난 다음에 한국이나 일본과의 동맹을 강화하는 수순을 밟는다. 1994년이 그랬다. 당시 김영삼 정권이 클린턴 미 행정부의 북·미 간 직접 접촉을 비판하고, 자꾸 훈수를 두려고 그러니까 나중에 미국이 아예 얘기를 안 해버리더라. 이런 예는 지난해에도 있었다. 부시 전 대통령이 6년 동안 북한을 줄곧 압박하다가 임기 말에 가서야 대화와 협상으로 전환하지 않았나. 그 국면에서 일본 아소 내각과의 협정 과정에서 미국이 좀 불편해지니까 아소 내각의 대미 요구를 무시해버린 경우가 지난해 4월에 있었다.

이명박 정부가 가장 강조해 온 것이 굳건한 한·미 공조이다. 이번 클린턴 방북으로 한·미 공조의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 평양에 도착한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화동으로부터 꽃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공조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만 얽매여서 보면 안 된다. 자국의 이익만 철저하게 계산되는 국제 관계에서는 특히 그렇다. 한·미 공조라는 말의 유래를 보면, 결국 한·미 간의 견해차 때문에 생긴 것이다. 1994년 북핵 위기 때 한국이 계속 미국의 행보를 견제하려고 하는 과정에서 결국, 한·미 공조라는 말이 부쩍 강조되었다. 그때의 공조 성격은 우리 정부가 딴소리를 못하도록 미국이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한 차원에서 만들어진 성격이 짙다. 즉, 우리 정부가 뭔가 의견을 개진하거나 불만을 제기하면, 미국은 “공조하기로 해놓고 왜 자꾸 딴소리하느냐. 이렇게 되면 결국, 북한만 좋은 일 시키는 것이다”라는 논리를 폈다.

북·미 간 빅딜이라고 하면 결국 6자회담과 핵폐기 문제로 귀결될 듯하다. 6자회담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북한은 이제 “6자회담은 더 이상 없다”라고 선언하지 않았나?

북한이 6자회담을 무턱대고 거부한 것이 아니었다. 결국, 북한의 속내는 촉박한 시간에 따른 조바심에 있다. 북한은 내부적으로 2012년을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로 삼고 있다. 시간이 별로 없다. 빨리 빅딜을 해서 미국 등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아 먹고사는 문제를 안정화할 수 있는 평화 체제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그 남아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서로 의견이 분분한 6자회담보다는 북·미 간 양자회담이 훨씬 효과적인 셈이다.

반면, 미국의 입장에서는 절대 북·미 양자회담만으로 갈 수는 없다. 우선 북한의 핵폐기를 전제로 한 경제 지원에서 미국은 5개국의 균등한 5분의 1씩의 책임을 강조한다. 또, 평화협정 역시 중국은 당사국이고, 한국 또한 향후 전작권이 환수되는 상황을 감안하면 중요한 이해 당사국이다. 또한, 주변의 한반도 평화체제가 더 공고해지려면 일본과 러시아의 협조도 필요하다. 미국의 입장에서 6자회담은 피해갈 수 없다. 다만, 북한의 경우에 실속만 챙기면 모양새는 6자회담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입장이라면 북·미 간의 의견 조율은 어렵지 않을 전망이다.

결국, 북·미 간의 최대 과제는 핵문제 아닌가?

단적으로 북한이 끝까지 핵을 보유하겠다고 덤벼든다면 결국, 북한의 길은 굶어죽는 것밖에 없다고 본다.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핵 보유는 결코 용인할 수 없는 문제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 일본도 핵무장에 나설 수밖에 없고, 한국도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중국이 또 가만히 있겠는가. 현재 일본의 기술과 자본력 그리고 플루토늄 보유량으로 보면, 만약 일본이 핵무장을 할 경우에 중국의 핵무기는 대포 앞의 소총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중국의 입장에서도 북한의 핵 보유는 악몽인 셈이다. 중국과 미국의 이해가 일치되는 부분이다.

북한이 핵 보유에 집착하지 않으리라고 보는가?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북한은 사실상 핵을 폐기하고 그 반대급부로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되니까 막 나가고, 경제적 지원이 끊어지니까 더 막 나가곤 하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의 현재 전략이다. 미국은 강자이다. 강자의 입장에서는 약자가 핵을 보유하겠다고 나서면 그들이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들이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채택해서 밀고 나가야 한다.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 일변도가 지금껏 모두 실패했다. 결국, 대화와 협상 그리고 그에 따른 보상밖에 선택할 길이 없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과 관련해서 북한의 급변 사태를 주시하는 듯하다. 미국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많다.

이번에 북한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보내달라고 한 데는 김정일 위원장이 자신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한 계산도 깔려 있다고 본다. 과거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면 3년 내에 북한 체제가 붕괴할 것이다”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비현실적인 논리이다. 지금 북한에 조선노동당 당원과 인민군이 모두 약 4백만명이다. 가족들까지 포함하면 약 1천만명이 된다. 북한 인구의 약 절반 정도에 해당한다. 이들이 어떻든 지금 북한 체제의 혜택을 받고 있다. 헐벗고 굶주리는 주민들은 나머지 절반에 해당한다. 그렇게 쉽게 무너질 체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내 일부 보수론자들은 북한의 체제 붕괴를 기다리고 접수하면 통일이 된다는 아주 위험한 발상을 하고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하는 소리이다. 한반도 이북에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 강대국이 대치하는 또 하나의 분단만 더 생길 뿐이다. 그보다는 남과 북이 우리끼리 서로 교류하고 왕래하면서, 같이 살겠다고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상황에서 주변 강대국이 도저히 못하게 뜯어말릴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즉 민심이 통해버리면 그 구심력 때문에 국제 정치 간섭이라는 원심력이 힘을 쓸 수 없게 된다. 이럴 때 통일이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이번에 목적한 바를 이룬 셈인가?

북한도 이번 클린턴 방북을 계기로 북·미 간에 심도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찬스를 잡았으니 만큼 무엇보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에게 신뢰를 줘야 한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북한은 절대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신의도 없다. 북한이 또 과거처럼 “미국이 먼저 북한에 신뢰를 베풀어야 일이 해결된다”라는 고집만 되풀이하면 가능성은 없다. 미국으로 하여금 이번에는 진짜 일이 될 것 같다는 느낌으로 유연하게 나올 수 있도록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안 올 수도 있다.

이번 클린턴 방북을 계기로 한국이 더 고립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오는 8월15일 광복절 축사에서 이명박 정부가 무언가 진전된 내용을 들고 나올 것으로 기대해 본다. 거기서 이 정부의 나머지 3년 반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보여진다. 남은 기간에도 계속 국민들로 하여금 긴장 속에서 지내도록 놔두는 것은 정권의 도의가 아니다. 지금 선택을 잘 해야 한다. 과감하게 정책 전환을 하지 않으면 미국은 한국을 돌아보지 않고 그냥 간다. 한·미 동맹이 미국 국가 이익의 전부가 절대 아니다. 미·일 동맹도 중요하고, 미·중 관계는 더 중요하다.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의 경제 안정을 위해서라도 북·미 관계의 정상화를 부추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칫 우리만 ‘왕따’당할 수도 있다. 

전직 통일부장관으로서 현 정부에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있나?

전혀 없다. 통일고문에서도 쫓겨났다.(웃음) 뭐, 의견 개진이야 이런 언론을 통해서도 할 수 있는 것이니 그것은 크게 중요치 않다. 다만, 어떻게 하는 것이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점은 꼭 명심했으면 한다. 과거 1994년 상황을 다시 한 번 반추해 보아야 한다. 지난해 여름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려고 했을 때, 우리 정부가 취한 행보도 역시 되돌아보아야 한다. 당시 이명박 정부도 그랬고, 일본의 아소 내각도 모두 미국에 제동을 걸었다. “북한에게 잘못된 사인을 준다. 북한이 곧 굴복하고 나올 텐데 왜 미리 그러느냐” 하고 반대했다는 것으로 이미 소문이 나 있다. 그때 미국이 한국과 일본을 어떻게 상대했는지를 냉철히 분석해 봐야 한다. 그냥 떼놓고 가버리지 않았나. 결국, 10월 초에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시켰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 한국 정부와 엇박자를 낼 때 돌아온 것이 무엇인가는 역대 사례에서 반면교사로 삼으면 된다. 자칫 잘못하면 이번 일을 계기로 지난 1994년보다 더 크게 한·미 간에 균열이 생길 수도 있다. 아마 미국은 조금은 기다려줄 것이다. 그러나 계속 안 따라오면 “그럼 우린 그냥 간다”라고 나올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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