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면 끝장” 미디어법 놓고 또 맞붙은 앙숙
  • 김영화 (한국일보 기자) ()
  • 승인 2009.08.1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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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이번에는 조·중·동과 전면전 “왜곡·조작 심각” “거짓말 선동” 날선 공방

▲ 민주당은 지난 7월28일 서울 영등포역 앞에서 언론악법 원천무효 거리 선전전을 가졌다. ⓒ시사저널 유장훈

이른바 ‘조·중·동’(조선·중앙·동아일보)과 민주당이 전면전 양상으로 충돌하고 있다. 싸움의 단초는 바로 미디어법이다. 사실 그동안 미디어법 정국이라는 링 위에 섰던 파트너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었다. 연말 연초 해머와 전기톱, 소화기 분사로 얼룩졌던 1차 법안 전쟁부터 계속된 여야의 충돌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지금은 양상이 사뭇 달라졌다. 대리인 격이었던 한나라당이 뒤로 빠지고 이제 조·중·동과 민주당이 직접 맞닥뜨리는 전면전 양상이다.

신문 권력을 대표하는 조·중·동과 민주당의 충돌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대중 정권 시절에 집권 여당이 조·중·동을 대상으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 칼을 뽑아든 것을 계기로 1차 권언(勸言) 전쟁이 벌어졌다. 노무현 정권 시절은 집권 내내 조·중·동과의 긴장 관계가 계속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중·동을 빗대 ‘조폭 언론’이라는 용어가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그 뒤 비교적 잠잠했던 양측이 이제 신문의 방송 진출을 허용한 미디어법 전선에서 또다시 운명적으로 조우하고 있다. 다시 만난 두 숙적의 싸움은 해묵었던 감정까지 오버랩되면서 갈수록 그 강도가 높아지는 양상이다.

▲ 민주당을 비판한 8월5일자 조선일보(오른쪽)와 동아일보(왼쪽). ⓒ시사저널 이종현

민주당의 선공에 조·중·동 사설로 반박

지난 8월5일 양측의 공방은 그 신호탄이었다. 오후 무렵 국회 기자회견장을 찾은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기자를 만나 “오늘은 브리핑할 내용이 두 개인데 모두 신문을 공격하는 것이다”라며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두 글 모두 직접 본인이 썼다는 사실도 소개하며, 잔뜩 벼르고 나왔음을 내비쳤다. 실제로 이날 민주당 현안 브리핑은 모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대한 맹비난으로 채워졌다.

발단은 민주당이 가두에 배포한 홍보물에 넣은 문구였다. “조선·중앙·동아일보가 어떤 신문입니까? 대한민국 대표 반민주·반서민·반통일 수구 언론입니다. 이들이 방송사를 소유하고 뉴스까지 만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평소 버릇대로 왜곡·조작 보도는 일상사일 테고, 오로지 이명박 정권을 칭송하고, 소수 특권 세력의 비위만 맞추는 ‘땡박 뉴스’에 혈안일 게 뻔합니다”라는 내용이다. ‘보수 신문에 방송을 주면 안 된다’던 식의 점잖았던 비판이 거리로 나간 이후로는 훨씬 더 톤이 강해졌고, 표현도 자극적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자 조·중·동이 역공에 나섰다.  ‘미디어법에 대한 민주당의 네 가지 거짓말’ ‘민주당의 거짓말 행진’ ‘육식성 좌파’ 등의 제목을 단 사설 및 칼럼을 연일 게재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8월5일자 신문에서 한 면을 할애해 민주당을 융단 폭격했다. 공교롭게 같은 날 동아일보도 민주당의 방송법 재투표 무효 주장과 배치되는 2003년의 도시철도법 개정안 재투표 사례를 보도했다. 물론 나중에 해당 사례는 방송법 표결과 맥락이 달라 비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두 메이저 신문으로부터 난타당한 민주당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대응에 나선 것이 바로 노대변인의 브리핑이었던 것이다.

민주당의 공개적인 맞대응만 없었을 뿐, 중앙일보와의 관계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중앙일보가 미디어법 통과 직후부터 “야당의 억지 주장으로 누더기 법안이 되었다”라며 연일 민주당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자, 당내에는 “중앙일보가 방송 진출 때문에 아주 작심을 한 것 같다”라는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특정 정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한국의 언론 풍토에서 어느 정도 여야 간의 공정성과 형평성에 신중을 기해야 할 주류 신문과, 어느 집단보다 언론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제1 야당이 이처럼 정면 충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차적으로는 역시 미디어법의 본질에서 찾을 수 있다. 신문·방송 겸영 허용 같은 미디어 환경의 재편은 기존의 여론 구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사안이다. 여론 기능의 일익을 담당하는 신문사와 여론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정치권이 누구보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더구나 방송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는 조·중·동은 신·방 겸영 허용 정책의 이해 당사자 격이다. 남의 일이 아니니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특히 방송통신위원회의 사업자 선정 단계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제1 야당이 장외로 나가 여론 독과점 문제를 떠드는 것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헌재 판결 따라 어느 한쪽은 타격 불가피

좀더 근본적인 배경으로는 서로에 대한 해묵은 불신을 꼽을 수 있다. 민주당에는 여전히 “조·중·동은 심각하게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신문이다”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 막강한 여론 지배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 사사건건 민주당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상당수 민주당 관계자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공직자 인선 과정에서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던 조·중·동이 이명박 정부 이후 고위 공직자들의 의혹에 대해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태도를 보인다”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민주당이 미디어법을 놓고 극한 투쟁을 벌이는 데에는 이처럼 가뜩이나 자신들에게 불리한 언론 환경이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녹아 있다. 물론 당내에는 “조·중·동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이 과연 옳은 길인지 모르겠다”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언론을 적으로 삼았던 참여정부 시절의 공과를 떠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조·중·동이 방송에 진출하면 여론 독점으로 국민이 건전한 판단을 할 수 없다→이는 민주주의의 위기이다→그러므로 민주당이 온몸을 던져 막아야 한다’라는 삼단 논법이 현재로서는 의원들의 공감을 더 얻고 있다.

조·중·동의 입장은 정반대이다. 민주당이 미디어법 반대를 위해 거짓 선전·선동을 하고 있다고 본다. 지금 여론 독과점 문제는 신문이 아니라 60% 안팎의 여론 지배력을 가진 것으로 조사된 KBS·MBC·SBS 등 지상파 3사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들 신문은 그 사례로 탄핵 사태와 광우병 파동,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방송사들의 보도 태도를 꼽는다. 최근 나온 조선일보의 사설은 “민주당 거짓말 선동의 목적은 결국, 지난 10년 자신들 편만 들던 자기네 TV의 기득권 구조를 계속 이어가려는 것이다”라고 규정했다.

현재로서는 평행선을 달리는 양측이 인식의 차이를 좁힐 가능성은 작다. 이런 가운데 미디어법의 운명마저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맡겨져 상황은 더욱 꼬여 있다. 만약 헌재가 초유의 법안 통과 무효 선언을 하면 조·중·동의 방송 진출 꿈은 물거품이 된다. 반대의 경우에는 민주당의 투쟁 동력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고 10월 재·보선, 내년 6월 지방선거의 승리도 기약하기 어렵다. 양쪽 다 벼랑 끝에 서서 싸울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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