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에, 화장실에, 휴지통에 쓰레기처럼 버려지는 아이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8.10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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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수백 명씩 유기돼…단서 못 찾아 형사 처벌에도 어려움

▲ 탯줄이 달리거나 장애가 있는 모습으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채 길거리에 버려진 신생아들. ⓒ경찰청 실종아동찾기센터 홈페이지


경기도 남양주시 지금동 ㅅ연립에 사는 김성일씨(가명)는 지난해 1월22일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이날은 유난히 추웠다. 영하의 추위 탓에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했다. 그런데 이른 아침부터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 번 시작한 울음은 좀체 그치지를 않았다. 조용한 주택가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김씨는 혹시나 하며 밖에 나가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대문 앞에 수상한 귤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서 아기가 울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기 배꼽에는 탯줄을 자른 후 고정한 클립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아기는 한겨울인데도 달랑 보자기 하나에 의지한 채 강추위를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김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아기는 보호시설로 보내졌다.

이처럼 해마다 길에 버려지는 아기가 한둘이 아니다. 갓 태어난 영아에서부터 신생아, 유아까지 쓰레기처럼 마구 버려지고 있다. 심지어 탯줄이 달려 있는 영아를 건물 화장실, 담벼락 밑, 도로 옆, 여관방 등에 버린다. 부모들이 아기를 버리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이다. 양육 포기, 어려운 가정 형편, 미혼모, 장애아 등이 그것이다.

올해 들어서만 해도 평균 한 달에 삼십 명씩 유기된 아이들이 발견되고 있다. 지난 4월 제주에 수학여행 온 여고생이 아기를 낳은 후 병원에 버리고 달아났다가 경찰에 붙잡혔고, 5월에는 강원도 원주에서 신생아로 추정되는 아기가 아파트 엘리베이터 입구에 신문지에 싸인 채 버려졌다. 여수의 한 모텔에서는 욕실 휴지통에서 신생아가 이불에 싸여 숨진 채 발견되었다. 전주에 있는 한 아파트의 쓰레기장에서는 비닐 봉투에 담겨진 채 죽어 있는 신생아가 발견되어 충격을 주기도 했다.

경찰청 실종아동찾기센터에 따르면 전국에서 버려지고 있는 8세 미만의 보호 아동들은 올해는 8월6일 현재 지난해의 2백27명에 육박했다.

<시사저널>은 이 중 2세 미만의 아기 100여 명을 대상으로 처음 발견된 지점을 분석해 보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열 명 중 여덟 명이 길바닥 등 야외에서 발견되었고, 탯줄이 달린 상태에서 버려진 아기들도 상당수였다. 화장실에서 발견된 아기들도 많았다. 아기의 엄마가 화장실에서 몰래 출산한 후 곧바로 버린 것이다.

일부는 탯줄 달린 채로 버려지기도

지난 2001년 10월26일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주택가에서 발견된 여자아이는 배꼽이 운동화끈으로 처리된 채였고, 2003년 11월3일 경남 진해시 여좌동의 ㅅ교회 화장실에서 발견된 성명 불상의 남자아이는 생후 1개월이 된 상태에서 버려졌다.

2004년 7월29일 경기도 고양시 토당동의 ㅂ성당 앞 전화 부스에서는 몸에 피가 묻고 탯줄이 끊어져 있는 상태에서 파란색 타올로 감싸서 버린 남자 아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2004년 9월4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서 발견된 태어난 지 17개월 된 남자아이는 발견 당시 눈 부위에 선명한 멍 자국이 있는 등 학대당한 흔적이 있었다. 2007년 1월25일 경북 경산시 남천면의 ㅈ교회 담벼락 밑에서는 카키색 코르덴 점퍼에 싸여 탯줄이 붙은 상태로 버려진 남자아이가 발견되기도 했다.

올해 네 살 된 송성은양(가명)은 2007년 6월5일 대구 달서구 상인2동에서 버려진 채 발견되었다.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부모에게 버림받은 것이다. 그 후 성은이는 대구에 있는 한 아동보호시설에 맡겨졌고, 지금까지 그곳에서 지내고 있다. 당시 성은이와 함께 발견된 빨간색 가방에는 성은이의 생일과 이름이 적힌 메모가 놓여 있었다. 성은이가 머무르고 있는 아동보호시설에는 현재 89명의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으며, 이 중 38명이 버려진 아이들이다. 보호시설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유기된 아이들 5명이 입소했는데, 올해는 다행히 한 명도 없다. 아이를 키우기가 힘들면 입양 기관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입양시키면 되는데 아무 곳에나 버린다는 것이 안타깝다. 간혹 늦게라도 아이를 찾아오는 부모가 있지만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다”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젖먹이인 유아를 유기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백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다(형법 272조). 또, 이 죄를 범해 아기를 다치게 하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 때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고 있다.

하지만 아기를 버린 부모를 형사처벌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경찰청 실종아동찾기센터 신영숙 반장은 “유기된 아이가 발견되면 해당 경찰서에서 전국에 수배령을 내리고, 보호시설로 보낸다. 관할 경찰서에서 수사를 맡고 있지만 부모를 찾을 단서가 적기 때문에 수사에 어려움이 많다. 만약 아이의 부모가 뒤늦게 나타나더라도 유기했다는 물증이 없으면 처벌하기 곤란하다”라고 말했다. 현재 전국에는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인가받은 3천여 개의 보호시설(노인·장애아·아동 포함)이 있다.

“자식 버리는 것은 인간 존엄성 상실한 것”

아기를 버린 부모들은 나름대로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일반인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행동이다. 주부 이경아씨는 “능력이 없어서 아기를 버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나는 스무 살 때 아기를 낳아서 남편과 잘 살고 있다. 말도 안 되는 핑계들로 자신들을 합리화하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 책임을 지지 못할 것이면 낳지를 말든가. 말 못하는 아기들을 어쩌라고 버린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라며 분노했다. 주부 김정미씨는 “쌍둥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 (버려진) 아이들이 자라서 어디 담벼락이나 어느 공중전화 부스에 버려졌다는 것을 알면 세상 사는 힘이 없을 것이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실종 아이를 가진 가족,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 불임 때문에 고통받는 부부, 남의 자녀를 입양한 가족들이 들으면 천지개벽할 일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실종된 아이들을 찾아 해매고 있는 전국미아·실종가족찾기시민의모임 나주봉 회장은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평생 잃어버린 자식을 찾아 전국을 떠도는 부모들도 있다. 아이를 찾아다니며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심지어 가정이 깨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런데도 자기 뱃속에서 나온 자식을 버린다는 것은 인간 존엄성을 상실한 것이다. 이런 현실을 만드는 정부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라고 강조했다.

만약 유기한 아이들을 찾거나 문의사항이 있으면 경찰청 실종보호아동센터 182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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