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돈 담던 그 상자의 ‘아름다운 변신’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8.10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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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군청 제공

지금까지 관가에서 ‘라면 상자’ ‘사과 상자’ 등은 검은돈을 상징해 왔다. 라면 상자에 1만원짜리 지폐를 꽉 채우면 1억원이 들어간다. 최근 발행된 5만원권은 5억원까지 채울 수 있다. 정·관계 인사들과의 검은 거래에 ‘라면 상자’가 자주 사용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 자금을 살포할 때도 라면 상자를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때문에 라면 상자와 비슷한 크기의 골판지 상자들은 ‘정치권 게이트’가 터질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했다. 서민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었던 ‘라면’을 담은 상자가 오명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이런 오명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전남 담양 군청에 라면 상자 크기의 토마토 상자에 현금 2억원이 든 장학금이 전달되면서이다. 지난 7월30일 오전 군청 행정과 사무실에 10kg들이 토마토 상자가 택배로 배달되었는데 그곳에 5만원짜리 지폐 묶음과 1만원짜리 지폐가 가득 들어 있었다.

담양군청은 처음에는 ‘종이 상자’라는 선입견 때문에 ‘순수성이 의심된다’라며 경찰관의 입회 아래 농협 금고에 보관하는 해프닝까지 벌였다. 하지만 나중에 ‘장학금’인 것을 알고는 ‘아름다운 장학금’이라고 명명했다. 돈 상자의 배달 경로를 추적한 결과 돈 상자를 보낸 사람은 60대로 보이는 남자로 확인되었다. 담양 군청은 기부자의 뜻을 존중해 발송인을 더 이상 추적하지 않기로 했다. 이제 라면 상자나 사과 상자는 ‘검은돈’을 담는 오명에서 ‘아름다운 장학금’을 담는 행복 상자가 되었다. 앞으로도 ‘라면 상자’의 행복 바이러스가 전국 곳곳에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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