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죽지세’ 호랑이 포효는 계속된다
  • 이환범 (스포츠서울 기자) ()
  • 승인 2009.08.1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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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타이거즈, 최강 마운드·선수들 투지 살아나 ‘펄펄’

▲ 지난 8월6일 기아·LG전에서 홈런을 친 뒤 3루를 돌며 최태원 코치와 하이파이브하는 기아의 김상현. ⓒ연합뉴스

기아타이거즈가 지난 8월13일 롯데전에서 패배하면서 파죽지세로 이어가던 연승 행진을 마감했다. 지난 7월30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전부터 8월12일 광주 구장에서 열린 롯데전까지 11연승이다. 11연승은 2001년 기아 창단 이후 팀 연승 타이 기록이다. 기아는 김성한 감독이 이끌던 2003년 8월21일부터 9월3일까지 11연승을 기록한 적이 있다. 전신인 해태 시절에는 1988년(4월30일~5월15일)과 1994년(5월13~28일) 12연승을 기록한 것이 최다이다.

시즌 초반만 해도 기아가 이토록 고공비행을 할 줄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선발 마운드는 강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 몇 년간 공격력은 허약했고 수비 조직력도 다른 구단과 비교해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이를 반영하듯 시즌 개막 초반인 4월만 해도 10승12패로 5할 승률에도 미치지 못했다. 팀방어율은 3.13으로 강했지만 팀타율 2할5푼2리의 빈약한 타선이 뒤를 받쳐주지 못했다.

그렇지만 5월 이후 부쩍 힘을 내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오더니 급기야 파죽의 연승 가도를 달리며 마침내 1위에 올랐다. 11연승을 하는 동안 팀방어율 3.18의 짠물 투구에 팀타율은 3할4리나 된다. 특히 홈런은 총 21개로 다른 팀의 두 배이다. 절대 지지 않을 것 같은 강팀으로 변모했다. 기아가 이처럼 확 달라진 모습으로 연승 행진을 하며 1위를 질주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야구 격언처럼 연승의 저력은 선발 마운드의 힘이었다. 윤석민, 구톰슨, 양현종, 로페즈 등 4명의 선발투수가 축을 잡고 확실한 로테이션을 이어나가고 있다. 구톰슨과 로페즈는 10승을 넘었고, 양현종은 시즌 8승으로 생애 첫 10승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토종 에이스 윤석민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후유증과 시즌 중반 마무리로 나서는 등의 사정으로 6승에 그치고 있지만, 최근 6연승 행진 중이어서 10승 달성 가능성이 크다. 네 명의 10승 투수가 버티는 마운드는 달리 설명할 필요가 없다.
기아가 최강의 마운드를 구축했지만 하늘에서 복덩이들이 떨어져 저절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시즌 개막 초반인 4월만 해도 선발 자원은 풍부했으나 불안감이 상존했다. 에이스 윤석민은 WBC 후유증으로 컨디션이 뚝 떨어졌고, 메이저리거 출신 서재응도 몸 상태가 완전치 않았다. 좌완 양현종을 선발로 돌렸지만 붙박이 선발 전환은 미지수였다.

공들여 영입한 외국인 투수 구톰슨과 로페즈는 미국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를 거치는 등 경력은 화려하지만 불펜에서 뛴 횟수가 많아 부상 없이 긴 이닝을 소화할 수 있을지 불안했다.

새로 도입한 6선발 체제도 한몫

▲ 지난 8월12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2-0으로 승리해 11연승을 기록한 기아 선수들. ⓒ연합뉴스

조범현 감독은 고육지책으로 6선발 체제를 고수했다. 보통 5일 선발 로테이션을 유지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1주일 만에 한 번씩, 그것도 이닝 수를 제한하며 던지게 해 어깨 부담을 최소화했다. 풍부한 선발 자원 덕분에 가능한 시나리오였지만 웬만한 인내심과 배짱이 아니고는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조범현 감독은 “일본인 칸베 토시오 투수코치가 4월 한 달간 투수 로테이션을 쭉 짜 와서 보고하는데 6인 로테이션이었다.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어차피 페넌트레이스 대장정을 생각하면 호흡을 길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과감히 결정했다. 덕분에 5월 중순부터는 선발투수들이 제 궤도에 오르며 연승의 밑천이 되었다”라고 술회했다.

기아의 팀타율은 8월13일까지 2할6푼6리로 8개 구단 중 꼴찌이다. 규정 타석을 채운 3할 타자는 김상현이 유일하다. 그렇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약하지 않다. 득점 기회에서 집중력을 발휘하며 승리를 위해 필요한 점수는 꼭 뽑아냈다. 그 중심에 LG에서 이적해 온 3루수 김상현이 있었다. 김상현은 4월16일 문학구장 SK전부터 시작해 8월13일까지 89경기에서 3백26타수, 98안타, 타율 3할1리에 89타점, 23홈런을 기록했다. 타점 부문 단독 1위이고, 홈런 더비에서 1위 클리프 브룸바를 한 개 차로 추격하며 단독 2위로 올라섰다. 단순히 개수가 문제가 아니다. 역대 한 시즌 타이 기록인 네 개의 만루홈런을 기록했고, 결승타는 11개로 단독 1위이다. 그만큼 팀을 승리로 이끄는 극적인 홈런이 많았다.

김상현의 맹활약은 최희섭·나지완 등 기존 거포들을 자극하며 타격 상승이라는 시너지 효과를 팀에 가져왔다. 시즌 초반 반짝하다 부진했던 최희섭은 연승 기간 4홈런, 18타점을 기록하는 등 완벽한 부활을 알리고 있다. 김상현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홈런포를 펑펑 쏘아 올리며 팀 승리를 이끌고 있다. 시즌 초 발목 골절상을 입었던 WBC 투지의 화신 이용규와 김원섭 등이 7월에 복귀해 최강의 테이블세터진을 재구축했고, 중심 타선이 찬스에서 폭발적인 장타력을 과시하면서 연승을 달리는 밑바탕이 되었다.

조범현 감독은 시즌 초만 해도 “우리 선수들은 참 여유 있게 야구를 한다”라고 말해왔다. 노력과 투지가 부족하다는 비난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러나 김상현의 가세와 알토란 신인 안치홍의 등장은 고인 물 같았던 기아 팀 내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고 새로운 경쟁 체제를 구축하는 시발점이 되었다. 올 시즌 신인왕을 노리는 안치홍은 빠른 발과 펀치력을 자랑하며 붙박이 2루수로 자리 잡았고, 김상현은 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외야 역시 마찬가지이다. 중견수 이용규를 제외하면 붙박이 주전이 따로 없을 정도로 치열한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종범, 장성호, 김원섭, 나지완 등이 번갈아 나서며 완벽한 플래툰 시스템을 구축했다.

프로야구 최다 연승 기록은 1986년 삼성이 기록한 16연승이다. 기아가 이 기록을 깨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야구라는 것이 앞날을 모르는 것이어서 연승할 때는 절대 지지 않을 욱일승천의 기세이지만, 한 번 지고 나면 기세가 꺾이고 약점이 부각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기아는 다르다. 연승 기록 도전에 실패해도 상관없다. 연승에서 이기는 방법을 터득했고 선수들 자신에 대한, 그리고 서로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며 진정한 강팀으로 거듭나고 있다.

아직 수비력 등 세기 면에서 보완할 요소는 많지만 페넌트레이스 1위로 최종 종착점에 골인한다면 1997년 우승 이후 10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달성도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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