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국세청 얼굴에 먹칠했나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9.08.1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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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률 전 청장 비판한 일선 세무서 계장, 명예훼손 이유로 파면에 고소까지 당해

ⓒ시사저널 유장훈

한상률 전 국세청장(사진)과 김동일 전 나주세무서 계장. 차관급인 조직의 수장과 6급 주사인 일선 세무서 조사관이라는 신분 차이에서 알 수 있듯 두 사람은 현직에 있을 때에도 직접적인 연결 고리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저 2만여 명 ‘국세청 가족’의 일원으로 함께 일했다는 정도가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그런 두 사람이 친정인 국세청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의 도마 위에 나란히 올라 있다.

한 전 청장은 행정고시 21회 출신으로 본청 조사국장, 서울지방국세청장, 본청 차장 등 고위 요직을 두루 거친 후 2007년 11월 국세청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올해 초 차장 재직 당시 그가 전군표 청장에게 인사 청탁 명목으로 고가의 그림을 선물했다는 이른바 ‘그림 로비’ 의혹이 제기되었다. 여기에다 경북 경주에 내려가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측근들과 은밀하게 골프를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국세청 내부 게시판에 글 올린 것이 화근

결국, 1월16일 자진 사퇴한 그는 두 달 뒤인 3월15일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다. 공부를 하기 위해 떠난 것일 뿐, 도피성 출국은 아니라고 했지만,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시 상황이 그렇다. 비난 여론이 거세진 데다 검찰 조사도 곧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인사 청탁 로비와 관련한 수사를 받지 않는 대신, 자신도 정권 실세들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에 대해 입을 닫기로 한 것이 아니냐는 뒷얘기가 무성했다.

김동일씨는 이러한 의혹과 함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데에도 한 전 청장의 책임이 있다.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 이유 등을 밝혀라’라는 내용의 글을 지난 5월28일 국세청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가 파면되었다. 징계 절차는 신속했다. 6월4일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고, 나흘 뒤인 8일 직위해제가 결정되었다. 그리고 불과 사흘 뒤 최고 수위의 징계인 파면을 당했다. 비리와 관련 없는 일로 국세청 직원이 파면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광주지방국세청은 7월16일 국세청 소속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김씨를 검찰에 고소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맡은 광주남부경찰서가 지금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인 것으로 밝혀졌다. 피고소인 김씨는 이미 불러서 조사를 마쳤는데, 정작 명예훼손 사건의 피해 당사자로 명기된 한 전 청장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진술을 받기는 어렵게 된 셈이다. 여기에다 한 전 청장과 피해 당사자로 명기된 광주국세청 직원들에 대한 명예훼손의 경우도 불특정 다수에 대한 피해 상황이 모호해 처벌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전 청장이 귀국해 조사에 응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 본인 스스로도 당장은 한국으로 돌아갈 마음이 없다고 했다. 검찰에서도 “한 전 청장이 귀국을 꺼린다”라고 말하고 있다. 김씨는 1998년에도 해임되었다가 행정소송에서 승소해 복귀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공무원 노조를 만들기 위해 먼저 출범시킨 공무원직장협의회 공동대표를 맡았다가 해임되었다. 김씨는 그때 동료들로부터 ‘야당 국세청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 전 청장과 김씨 중 과연 누가 진짜 국세청의 명예를 훼손한 것인지에 대해 국세청 내부에서도 비판과 자조의 목소리가 높다. 국세청은 물의를 일으킨 역대 청장 여섯 명 중 단 한 명도 검찰에 고발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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