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드러진 ‘지역 편중’ 절반 이상이 영남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9.08.18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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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고위급 인사, 27명 중 17명이 TK·PK 출신

▲ 이현동 국세청 차장(왼쪽), 채경수 서울청장(오른쪽). ⓒ국세청 제공, 뉴시스(왼쪽부터)

국세청은 인사에 민감한 정부 기관 중에서도 유별나다고 평가된다. 피라미드형 조직 구조로 승진 관문이 좁다 보니 인사 경쟁은 늘 과열 양상을 띠었다. 실제 국세청의 경우 5급 이상 간부 비율이 7%로 일반 공무원 13%의 절반 정도 수준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인사 적체 현상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학연·지연을 따지는 연고 문화와 폐쇄적인 조직 문화가 강하다. 인사 청탁에 따른 부작용이 끊이지 않는 원인도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세청 내부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지난 2월 한국행정학회가 공개한 국세청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국세청 조직이 출신지나 출신 학교가 같은 사람을 이끌어주는 편인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50.5%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또, 응답자의 33%가 ‘상사와의 친밀도가 중시된다’라고 답한 반면, ‘능력이 중시된다’라고 답한 응답자는 26.5%에 그쳤다. 연고주의에 대해서는 62.5%가 ‘개선되어야 할 점’으로 꼽았고, 64%의는 ‘집단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에 우선시되고 있다’라고 답했다.

백용호 신임 국세청장은 “학연, 지연, 줄대기, 인사 청탁이 발붙일 수 없는 국세청을 만들겠다”라는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그는 “인사를 하는 데 있어서 다른 이유를 고려하지 않고 조직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제고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외부에서 영입된 백청장 입장에서는 인사 관리를 통해 조직 내부의 신뢰를 쌓고 불만을 불식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개혁’을 추진할 내부 동력을 마련할 수 있다. 이는 ‘백용호 체제의 성패가 첫 인사에 달렸다’라는 지적에서 잘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지난 7월 말 두 차례에 걸쳐 단행된 국세청의 첫 고위직 인사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시사저널>은 고위 공무원단에 속한 31명 가운데 공모 등으로 공석인 네 명을 제외한 27명 고위직 인사의 출신 지역과 학교, 임용 형태 등을 분석했다(표 참조).

전체적으로 상당한 ‘물갈이’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외부 인사가 수장에 내정되자 내부 고위직 상당수가 옷을 벗었다. 이때부터 사실상 인적 쇄신 작업이 진행된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파격적이라기보다는 대체적으로 무난한 인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재풀이 제한된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새로운 청장에 맞춘 ‘친정 체제’가 구축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채경수 서울청장은 ‘골프 사건’ 연루되었던 인물

하지만 영남 편중 현상은 다른 사정 기관의 고위직 인사보다 더 두드러진다. 대구·경북(TK) 9명, 부산·경남(PK) 8명 등 모두 17명이 영남 출신이다. 전체의 63%에 이르는 높은 비율이다. 반면, 호남 출신은 세 명에 불과해 11%를 겨우 넘는 수준이다. 이외에 수도권이 네 명, 충청권이 세 명이다. 강원과 제주 출신은 한 명도 없다. ‘능력을 중시했다’라고 하지만 ‘지역 안배에 실패했다’라는 뒷말이 나온다.

국세청 ‘넘버2’ 자리에 오른 이현동 차장은 대표적인 TK 인사이다.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경북고와 영남대를 졸업했다. 서울국세청 조사3국장으로 근무하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파견되었다가, 정권 출범과 함께 청와대 재정경제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4개월가량 일했다. 이후 국세청 핵심 요직인 조사국장으로 친정에 복귀한 그는 올해 초 서울국세청장으로 승진했고, 이번 인사에서 본청 차장으로 발탁되었다. 현 정권 들어 가장 주목되는 국세청 인사이다. 일각에서는 국세청의 ‘TK 편중 현상’과 관련해 그의 역할을 주목한다.

부산 출신으로 경남고와 동아대를 졸업한 채경수 서울청장은 국세청 내 PK 인사를 대표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구국세청장으로 발탁된 그는 한상률 전 청장의 낙마 계기가 된 성탄절 골프 사건에 연루되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하지만 올해 초 본청 조사국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이번에 서울국세청장으로 승진하면서 사실상 ‘사면령’을 받았다. 골프 동행과 관련해 해당 지역 청장으로서 어쩔 수 없지 않았겠느냐는 시각도 있지만, 비판 여론도 적지 않다. 당시 관련자들은 대거 좌천되었다.

본청 국장급도 공모로 뽑은 직책 세 곳을 제외하면 절반이 영남 출신 인사로 채워졌다. 이종호 개인납세국장과 이전환 법인납세국장은 대구 출신이며, 원정희 부동산납세국장과 김문수 근로소득지원국장은 경남 밀양과 사천이 고향이다. 이종호 국장과 김문수 국장은 고려대를 나왔다. 이전환 국장은 서울대, 원정희 국장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서울청 조사국은 TK가 점령했다. 조사1국에서 4국까지 네 명의 국장이 모두 TK 출신이다. 임환수 조사1국장은 경북 의성, 제갈경배 조사2국장은 달성, 박동열 조사3국장은 경산, 김연근 조사4국장은 상주가 고향이다.

서울청 국장은 모두 일곱 명이다. 중부청은 국장이 다섯 명인데 한 명이 공석 상태이다. 하종화 조사1국장이 경북 청도, 박인목 조사2국장이 경남 마산, 정연식 납세지원국장이 대구, 박차석 세원관리국장이 부산 등 네 명의 국장이 모두 영남 출신이다. 제갈경배 국장은 현 정권 출범과 함께 청와대 민원제도행정실 행정관에 임명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하종화 국장도 당시 행정관을 지냈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백청장이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인사를 했다. 지방청장 가운데는 중부청장과 대전청장 그리고 국세공무원교육원장이 호남 출신이다. 대구청장이 경북, 부산청장은 경남 출신이다. 충청 출신은 없다. 인사가 지역적으로 편중되었다는 지적과는 거리가 멀다”라고 말했다.

임용 형태로 살펴보면 행정고시 출신이 18명으로 가장 많은 가운데, 27회가 일곱 명으로 주축을 이루고 있다. 짧은 기간 사이에 주요 국장급이 대부분 ‘젊은 피’로 교체된 것이다. 핵심 직책인 송광조 본청 조사국장을 비롯해 이종호·이전환·제갈경배 국장 등이 행시 27회 출신이다. 임환수·김연근·박차석 국장 등 행시 28회도 세 명이나 된다. 28회 가운데 본청에 들어온 이는 아직 없다.

고위 공무원단에 속하지는 않지만 충남 보령 출신인 백용호 청장을 가까이서 보좌하는 측근 요직으로 분류되는 과장급에는 충청권 출신이 떠올랐다. 이번 인사에서 유임된 임광현 정책보좌관은 충남 홍성 출신이다. 새로 보직을 맡은 구돈회 세원정보과장은 보령 출신이고, 심달훈 감찰담당관은 충북 음성이 고향이다. 유임된 임형균 대변인은 전남 장성, 김영기 운영지원과장은 경북 구미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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