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의 숨막히는 ‘최후 투쟁’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8.1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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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한 달 만에 위험한 고비 네 차례 넘겨…의료진, 신약 등으로 치료 만전

ⓒ시사저널 유장훈


병원에 입원한다는 것을 미리 알기라도 했던 것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지난 6월, 6·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 30여 명에게 “여러분은 연부역강(나이가 젊고 기력이 왕성하다는 뜻)하니 하루도 쉬지 말고 뒷일을 잘 해 주시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얼마 뒤인 지난 7월13일 DJ는 폐렴 증세 때문에 연세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다.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 ‘퇴원’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고 있다.

요즘 정·관계에서 초미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DJ’이다. 김 전 대통령의 건강이 정확히 어떤 상태인가, 향후 어떤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가 등을 놓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관계 당국에서는 이미 이러저러한 가능성에 대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원이 길어지면서 쾌유를 기원하는 인사들이 병원 문이 닳을 정도로 그를 찾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김영삼 전 대통령, 이란의 인권운동가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시린 에바디 변호사와 캐슬린 스티븐슨 주한 미국 대사 등이 병원을 찾아 김 전 대통령이 환하게 웃으며 병원 문을 나서기를 기원했다. 이들 외에도 김형오 국회의장,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민주당 정세균 대표, 선진당 이회창 총재 등 많은 인사가 병원을 찾았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입원 중인 신촌 연세세브란스병원 응급실. ⓒ시사저널 유장훈

특히 정치적 동지이자 라이벌 관계인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지난 8월10일 병원을 찾아 지난 1987년 대선 후보 단일화 협상 결렬 이후 거듭되어온 반목을 털어내고 화해한다는 뜻을 전했다. 직접 DJ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한국 현대사에서 애증을 겪어온 두 사람의 ‘화해’는 동서 화합의 상징으로 부각되기에 충분한 의미가 있다. DJ가 쾌유해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광주를 방문한다면 이들의 화해는 역사적인 맥락으로 승화할 것이다.

의료진 “강한 투병 의지 느낄 수 있다”

단편적으로 이런저런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DJ의 건강이 어떤 상황인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의료계에서는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라고 본다. DJ는 입원 한 달 만에 위험한 고비를 네 차례나 넘겼다. 7월16일 산소포화도가 90% 이하로 떨어졌고, 7월23일에는 폐동맥색전증으로 촌각을 다투는 일이 생겼다. 8월2일과 9일에도 갑작스런 호흡곤란 증세로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 8월2일까지만 해도 한때 의식을 차렸던 김 전 대통령은 8월9일 이후 엿새가 지난 14일 현재까지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연세의료원 홍보실장 금기창 교수는 8월12일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건강 수치가 정상 범위에 있다. 횡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고령임에도 위험한 고비를 잘 견디고 있다. 그의 강한 투병 의지를 느낄 수 있다”라고 밝혔다. 횡보란 사전적 의미로 ‘모로(옆으로) 걸음’을 뜻하는데 의학 용어는 아니다. 건강 상태가 수직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단 형태로 내려가는 정도를 의미한다. DJ의 강한 투병 의지만큼 의료진의 필사적인 노력도 수차례 긴박했던 순간을 넘기는 데에 한몫했다. 정남식 심장내과 교수, 장준 호흡기내과 교수, 최규헌 신장내과 교수 등으로 구성된 의료진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의료 기술, 장비, 약물을 사용하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85세로 고령인 데다 신장 기능 저하, 당뇨, 고혈압, 폐부종 등 병력이 겹친 상황이다. 여기에 폐렴이 치명타를 가했다. 폐렴은 말 그대로 폐에 염증이 생긴 질환이다. 염증으로 인해 허파꽈리에 분비물과 백혈구가 쌓여 체내에 산소를 공급하지 못한다. 김 전 대통령이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는 이유이다.

일반 폐렴은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폐에 침투해 염증을 일으키는 감염성이지만, 흡인성 폐렴은 가루약이나 음식물 찌꺼기가 식도로 넘어가지 않고 기도로 들어가 폐에서 염증을 일으킨다. 박창일 연세의료원장은 “균이 검출되지 않았다.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면 사래가 걸리고 재채기를 한다. 이런 것으로도 폐렴이 생길 수 있다”라며 김 전 대통령의 증세를 흡인성 폐렴이라고 진단했다.

폐렴으로 인해 갑작스런 호흡곤란 증세 즉, 급성호흡부전증후군(ARDS)이 나타날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이 한 번씩 위독한 상황을 맞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아산병원의 한 전문의는 “인공호흡기를 부착했다는 자체가 ARDS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신호이다. 이 단계에 이르면 의료적으로 힘든 상황이 이어진다”라고 말했다.

심장에서 나온 혈액은 폐로 이동한다. 폐의 허파꽈리에서 산소와 결합한 후 다시 심장으로 돌아간다.
ARDS가 생기면 허파꽈리가 찌그러진다. 혈액과 결합할 산소가 부족하게 된다. 이런 상태에 놓인 김 전 대통령에게 의료진은 인공호흡기를 부착했다. 순간적으로 산소 압력을 두 배 정도 높이면 찌그러진 허파꽈리가 펴지면서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 장기간 체내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면 심장에서 먼 쪽의 피부 조직부터 서서히 죽어간다. 김 전 대통령의 손과 발에는 이희호 여사가 손수 뜨개질로 뜬 벙어리장갑과 양말이 씌워져 있다.

인공호급기 튜브를 기관지에 삽입하면 환자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롭다. 이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수면 유도제를 투여한다. 위 내시경을 사용할 때 수면 유도제를 사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한 노인병원 전문의는 “수면 유도제를 투여했기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은 고통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환자 상태가 좋아지면 수면 유도제 용량을 줄이면서 병세를 관찰한다”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이 이따금 의식을 차리는 때가 이 시기이다.

피부 조직 괴사 막으려 장갑·양말 착용

김 전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만성 신부전증을 앓아왔다. 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주는 신장이 고장 난 셈이다. 이때 혈액을 환자의 몸 밖으로 빼내 투석기를 통해 노폐물을 걸러낸 후 다시 몸속으로 넣어주는 신장 투석을 한다. 일반적으로 네 시간이 걸린다. 많은 양의 혈액을 짧은 시간에 빼내다 보면 혈압이 떨어지기도 한다. 혈압이 불안정한 김 전 대통령은 지속적 혈액투석기계(CRRT)로 투석을 받고 있다. 한 대학병원 응급실 간호사는 “혈압이 떨어지는 정도를 줄이기 위해 최신 투석기를 사용해 24시간 동안 서서히 투석한다”라고 말했다.

폐렴의 변수는 폐부종이다. 흔히 폐에 물이 찼다고 표현하는 증상이다. 폐 조직이 손상을 입으면 폐에 지나친 양의 체액이 쌓인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한 노인병원 간호사는 “CRRT를 사용할 정도라면 폐에 물이 찼을 가능성이 있다. 김 전 대통령에게도 수액이나 영양분을 투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스스로 몸 밖으로 수분을 배출하지 못할 것이므로 폐에 물이 찰 가능성이 크다. 폐렴으로 손상된 폐 조직은 회복이 불가능하다. 한 번 폐에 물이 차면 계속 그렇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통상 체내 수분을 배출시키기 위해 이뇨제를 사용한다. 이는 혈압을 떨어뜨릴 수 있다. 혈압이 떨어지면 혈액이 산소를 몸 구석구석으로 전달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신체의 여러 장기가 손상된다. 이를 막기 위해 혈압을 높이는 약을 사용한다. 서울시 북부노인병원 내과 이연 과장은 “혈압이 떨어지면 일반적으로 도파민이라는 혈압상승제를 사용해서 혈압을 높인다. 김 전 대통령처럼 심각한 상황이라면 노르에피네프린 계열의 강한 약을 사용한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강한 약으로도 혈압이 올라가지 않으면 사실상 방법이 없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김 전 대통령에게 강심제도 투여하고 있다. 심장 박출량을 늘려 혈압을 조절하는 약으로, 보통 혈압을 조절할 때 혈압상승제와 같이 사용한다.

지난 7월23일, 김 전 대통령의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고 심장도 거의 뛰지 않았다.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시도할 만큼 위급한 상황이었다. 뚜렷한 이유 없이 혈압이 떨어지면 폐동맥색전증을 의심할 수 있다. 폐동맥색전증은 다리 정맥에서 응고된 피떡(혈전)이 심장과 폐 사이에 있는 혈관(폐동맥)을 막아버려 생기는 것이다. 급성 심부전증으로 이어져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의료진은 피떡을 녹이는 혈전용해제를 투여했고, 폐동맥이 극적으로 뚫리면서 혈액이 폐로 흘러들어갔다. 김 전 대통령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삼성서울병원 정형외과 전문의는 “의학적으로는 24시간 동안만 병상에 누워 있어도 폐색전증이 생길 수 있다. 물이 고이면 썩는 것처럼 피도 흐르지 않으면 응어리가 생긴다. 이 혈전이 폐동맥을 막으면 산소가 몸으로 공급되지 않아 호흡곤란이 생긴다”라고 설명했다.

김 전 대통령의 욕창(褥瘡)을 치료하기 위해 신약도 사용되고 있다. 욕창이란 오랜 기간 누워 지내는 중환자의 등이나 엉덩이가 짓무르면서 생기는 피부 궤양을 말한다. 이를 통한 세균 감염이 병세를 악화시킬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에게 세포 내 단백질을 이용한 피부재생제인 EGF라는 신약을 투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약은 욕창을 빨리 아물게 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본래 당뇨 환자의 발가락 궤양 치료를 위해 개발한 스프레이 형태의 약이다. 

2005년에도 위급 상황까지 갔지만 회복

심폐 기능이 정지되면 체외막산소공급장치(ECMO)를 이용할 수 있다. 혈액을 몸 밖으로 빼내 기계가 산소와 결합시켜 다시 몸 안으로 넣어준다. ‘인공 폐(肺)’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 기계는 산소와 결합한 혈액을 몸에 다시 보낼 때는 심장처럼 쥐어짜는 역할도 한다. 연세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은 아직까지 이 기계의 사용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병원의 한 전문의는 “ECMO는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등으로 갑작스런 심장마비가 온 경우에 주로 사용한다. 또, 신장이나 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해서 이식수술을 할 때도 사용한다”라고 말했다. 

관건은 김 전 대통령의 나이이다. 80대 중반이라는 나이는 면역 기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를 의미한다. 같은 병이라도 나이가 많을수록 치료와 회복이 더디다.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크다. 일반적으로 폐렴은 성인의 경우 1주일 정도 치료받으면 증상이 호전된다. 면역 기능이 떨어진 노인의 경우에는 입원 기간이 보름에서 길게는 한 달 이상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주치의였던 최규완 삼성서울병원 명예교수는 “고령의 폐렴환자가 오래 버티기는 쉽지 않다. 김 전 대통령은 상당 기간 신장 투석을 받았고, 혈압이 불안정해서 약물에 의존하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환자의 의식 상태를 확인해야 하는데, 김 전 대통령의 의식 상태가 어떤지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2005년에도 폐렴으로 입원했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며칠 만에 회복했다. 그가 고령이라는 장벽을 넘어 이번 고비도 이겨낼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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