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이 명관인가 17년째 ‘정상 질주’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09.08.1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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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 이건희 전 회장 아성 여전, 2위는 윤증현 장관 안철수, 새롭게 10위권 진입…박현주·이재용은 밀려나

ⓒ시사저널 이종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무색하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올해도 어김없이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경제 관료 포함)’으로 꼽혔다. 지난 1993년부터 17년째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 1위에 오른 것이다. 전체 순위에서도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에 이어 3위에 올랐다. 국내 최대 기업집단 삼성그룹의 최대 주주이자 실질적 지배자라는 명함이 이 전 회장이 지닌 영향력을 돋보이게 한다. 삼성그룹은 64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매출액은 1백91조원이고, 고용 인원은 27만7천명이다. 매출액 기준으로 따지면, 삼성그룹은 세계 1백80여 개 국가 가운데 30번째로 큰 나라에 비견된다. 이 전 회장은 지난해 4월 삼성전자 등기 대표이사와 회장직에서 사퇴했으나 그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생각하는 이는 드물다. 삼성그룹 내에서 이 전 회장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스티브 잡스 대표이사가 애플 사에서 차지하는 비중 못지않다. 스티브 잡스가 그 천재적 카리스마로 애플을 이끄는 것과 비슷하게 이 전 회장은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보다 큰 거대 기업집단 삼성그룹을 초현실적 권위로 통치한다. 이 전 회장은 국내 제1의 부호이기도 하다. 이 전 회장이 갖고 있는 주식의 가치는 지난 8월10일 종가 기준으로 3조7천3백30억원이다.

2위에는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이 올랐다. 윤장관은 지난 2월 기획재정부장관에 취임해 지난해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함께 전세계를 휩쓴 세계 금융 위기 와중에 경제 정책을 무난하게 이끌어왔다고 평가되고 있다. 윤장관이 가진 영향력은 경제 분야 최고 권부의 수장이라는 직함에서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경제 정책, 예산, 세제를 총괄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정부 조직 개편으로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통합해 출범했다. 재정 운영과 정책 조정 기능까지 아우르면서 경제 분야 최고 권부로 부상했다. <시사저널>이 해마다 실시한 조사에서 기업인에게 밀리던 경제 부처 수장이 2위에 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3위에 올랐다. 불황이 깊어지면서 세계 자동차업체들이 도산하거나 통폐합하는 와중에 현대기아차그룹은 세계 시장에서 약진하고 있다. 생산 대수를 기준으로 세계 5위 자동차업체에 올랐고, 미국 시장에서는 시장 점유율에서 일본 닛산자동차를 제쳤다.

현대기아차그룹 관계자들은 평소 품질 경영을 주창하고 공격적 마케팅을 독려한 정회장의 리더십 덕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 산업만큼 산업 전후방 효과가 큰 장치 산업은 없다. 산업 전문가는 ‘삼성전자가 무너진다고 한국이 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대차가 쓰러지면 한국은 망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현대기아차그룹은 계열사 41개를 거느리고 있다. 종업원 수는 12만명이 넘는다. 자동차는 2만개가 넘는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에 자동차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는 7천2백개가 넘는다. 협력업체 종업원 수는 50만명을 웃돈다. 협력업체까지 합치면 현대기아차그룹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삼성그룹 못지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정회장은 갖고 있는 주식의 가치가 3조9백50억원에 달하는 국내 제2의 부호이기도 하다.


권한·위상 높아지는 한은 총재, 4위에


▲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왼쪽)과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연합뉴스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 4위에 오른 인물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이다. 이총재는 중앙은행이자 발권은행인 한국은행 총수로서 통화가치 안정과 은행 신용 제도 건전화, 물가 안정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 이총재는 세계 금융 위기 와중에 확장적 통화 정책을 실시해 국내 경기 회복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총재는 조만간 ‘경제 대통령’에 준하는 권한을 갖게 될 듯하다. 세계 금융 위기 여파로 ‘은행의 은행’인 한은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면서 한은의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준하는 권한을 확보하면, 이성태 한은 총재는 단지 통화 신용 정책을 주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벤 버냉키 FRB 의장처럼 경제 정책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 5위에 올랐다. LG그룹은 자산총액 기준으로 국내 4위이다. 그룹 규모에 걸맞은 영향력을 지닌 것으로 조사되었다. 국내 2위 전자업체 LG전자나 화학업체 LG화학의 활약에 힘입어 LG그룹은 사상 초유의 실적을 내고 있다. LG그룹은 그룹 총수 가운데 가장 선진화한 경영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구회장은 지주회사 ㈜LG를 중심으로 계열사 53개를 거느리고 총 매출액 1백16조원, 종업원 17만명(글로벌 기준)을 이끌고 있다.

조석래 전국경제인연합 회장은 국내 최대 경제단체 수장이라는 직함에 걸맞게 6위에 올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국내 3위 기업집단 총수에 걸맞지 않게 영향력 순위에서 7위에 오르는 데 그쳤다. 최회장은 국내 최대 이동통신업체 SK텔레콤과 정유사 SK에너지를 비롯해 64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총 매출액 1백5조원이 넘는 기업집단을 이끌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그룹 경영에 나선 지가 오래되지 않아서인지 사세에 어울리지 않는 순위에 오르는 데 그쳤다.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은 기업 경영보다 한나라당 최고위원이라는 정치적 영향력과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이라는 인지도가 겹치면서 영향력 8위에 올랐다.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장관은 물러났지만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받는 경제 관료라는 평가에 힘입어 9위에 올랐다.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는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이라는 명성 덕에 10위에 오른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금융 기관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진동수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11위,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삼성그룹 후계자라는 후광 덕에 12위에 올랐다. 뒤를 이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 이윤호 지식경제부장관, 한승수 국무총리, 정주영 고 현대그룹 회장,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전광우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 등이 영향력 있는 경제인에 포함되었다. 지난해와 비교해 안철수 교수가 10위권에 새로 진입한 반면, 박현주 회장과 이재용 전무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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