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어버리고 살았더니 암이 깨끗이 사라졌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08.2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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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확인 후 직장 대부분 들어내…“죽음에 초연해야 오늘이 가치 있어”

▲ 암을 이긴 사람들③ 박성근씨


“한 5년은 넘은 것 같은데, 언제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대장암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박성근씨(63)는 자신이 언제 암에 걸렸는지 기억하려 애쓰지 않았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표현이 정확할지 모른다. 대부분 암 환자는 암 선고를 받은 날짜는 물론 시간과 당시 상황을 소상하게 기억해내는 재주(?)가 있다.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그때를 어떻게 잊겠는가. 그러나 박씨는 그때 일을 잊었다. 다른 암 환자들에게도 암이 걸렸다는 사실을 잊고 생활할 것을 강조했다. 2003년 여름 그는 대장암을 발견했다. 암 바로 전 단계인 악성 용종(polyp)이 확인되었다. “형제가 7남매인데, 그중에 세 명이 같은 날 국립암센터에서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 나는 그동안 별다른 검진을 받지 않았다. 대장 내시경 검사도 그날 난생 처음 받았다. 사이즈가 큰 용종이 두 군데나 있었고 악성이라고 했다. 결국, 암세포로 판명 난 셈이다. 이렇게 생을 마감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장은 위치에 따라 맹장, 상행결장, 횡행결장, 하행결장, 에스결장, 직장으로 나눌 수 있다. 박씨의 경우는 상행결장과 직장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다. 두 곳에 있는 용종을 내시경으로 떼어냈다. 그러나 용종을 제거하는 것만으로는 불안한 상태였다. 용종 크기가 컸고 대장의 다른 부위도 안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해 9월 대장을 거의 다 제거하는 개복수술을 받았다. “대장 길이가 1백50cm 정도라는데 그중에 1백20cm를 제거했다. 대장을 거의 다 없앴기 때문에 소장과 직장이 바로 연결되어 있다. 당시 박재갑 국립암센터 원장이 대장의 주기능은 음식물에서 수분을 흡수하는 정도이므로 제거해도 생활하는 데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는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를 받지 않았다. 수술 이후 몇 차례 치료를 받았고, 현재는 정기적으로 검사만 받고 있다. 서울대병원 외과 박재갑 교수는 “현재 아무런 이상이 없다. 더 이상의 용종도 없고 암세포가 다른 곳으로 전이되지도 않았다”라며 완치된 상태를 확인했다. 박씨는 비교적 암에 약한 형질을 타고났다. 6년 전 그와 함께 종합검진을 받은 두 형제 모두 암 선고를 받았다. 한 명은 위암이었고 다른 한 명은 갑상선암이었다. 그의 모친도 암으로 삶을 마감했다. “당시 암 선고를 받은 두 형제는 치료를 받고 현재 잘 살고 있다. 지방에 살고 있어서 그날 같이 검진을 받지 않았던 형제 두 명은 나중에 암 선고를 받았다. 늦게 발견해서 결국 저 세상으로 떠났다. 나와 함께 검진을 받아서 일찍 암을 발견했더라면 지금도 살아 있을지 모른다. 아버지는 고혈압으로, 어머니는 췌장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두 분 모두 회갑 전에 세상을 떠났다. 아마도 이런 가족력이 나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먹고 싶으면 먹고 무엇이든 다 한다”

가족력이 있기 때문에 박씨는 항상 암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다. 게다가 육류를 유달리 좋아한다. 칼로리 섭취가 높으면 대장에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어릴 적에 풍족하지 않은 시골 집안에서 자랐다. 1년 내내 고기 구경하기도 쉽지 않았다. 대학 때 체중이 50kg도 나가지 않았다. 그때까지 생선회, 멍게, 해삼이 무슨 음식인지도 몰랐을 정도로 다양한 음식을 접해보지 못했다. 사회에 진출해서 이런저런 음식을 접하게 되었다. 얼마나 맛있겠는가. 특히 기름진 음식과 고기를 계속 먹었다. 술도 많이 마셨다. 지금 체중은 74kg이다. 학교 동기조차 못 알아볼 정도로 뚱뚱해졌다. 이런 식습관이 대장암의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가족력과 식습관이 좋지 않으면서도 박씨가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어제는 과거이고 내일은 알 수 없는 미래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이다. 과거에 연연하고 미래를 불안해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특히 나처럼 가족력이 있고 나쁜 식습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먹고 싶으면 먹고, 하고 싶으면 무엇이든 한다. 그렇다고 무절제하게 산다는 말은 아니다. 죽음에 초연해지면 ‘오늘’을 가치 있게 살려고 노력한다”라고 강조했다.

하루를 알차게 보내려고 하니 박씨에게 24시간은 짧다. 암으로 수술까지 받았던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아침 5시에 기상한다. <반야심경>을 붓글씨로 쓴다. 남은 먹물로 달마, 말, 난 등 동양화를 그린다. 오전 6시20분까지는 서초구청에 가서 7시30분까지 국선도를 한다. 12년 동안 국선도를 해왔다. 그래서 몸이 유연하다. 그 다음 회사로 출근해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요즘은 태평무, 부채춤 같은 전통 춤도 배우고 있다. 장구와 색소폰도 배운다. 일요일마다 등산하고 시간 나면 골프도 한다. 로터리클럽 등 많은 단체에도 가입되어 있어 하루가 바쁘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걱정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식습관에 바뀐 것이 없는 데다 한 번에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 몸에 무리가 오지 않겠느냐는 우려이다. 이에 대해 박씨는 ‘마인드 컨트롤’ 이야기를 꺼냈다.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면 바꿔야 할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당장 생활 습관과 식습관을 바꾸어야 한다. 사실 나는 현재도 아무 음식이나 잘 먹는다. 식사량도 과거와 다름이 없다. 물론 육류는 조금 줄였다. 그럼에도 건강을 유지하려면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암을 잊어야 한다. 자기 개발에 힘쓰고 취미 활동에 전념하면 도움이 된다.”

박씨는 수술 후 화장실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다. 소장과 직장이 바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술 직후에는 하루에도 12번 이상 화장실로 달려갔다. 무의식적으로 대변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기저귀도 찼다. 시간이 가면서 익숙해졌다. 이런 증상도 마인드 컨트롤로 극복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화장실 가는 횟수가 줄었다. 지금은 하루에 3~4번 가는 것 같다. 일반인이 1~2번 가는 것보다 약간 많지만 처음보다 많이 좋아진 것이다.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다. 이를 한탄하면 어쩌겠는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별 어려움이 없다. 어떤 환자는 이런 사소한 것에도 크게 실망한 채 살아간다. 결코, 좋은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장암 환자들은 대개 과거의 식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꾸려고 노력한다. 대장암은 식습관과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익숙해진 식습관을 갑자기 바꾸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차라리 활동량을 늘리는 편이 좋다. 서울대병원 외과 박재갑 교수는 “30분 정도 활발하게 걷기와 같은 신체 활동을 1주일에 5일 정도 하는 것이 대장암 예방과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된다. 또, 가능하다면 섬유질이 함유된 채식이 포함된 균형 있는 식생활을 하면서 칼로리가 과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62종의 발암물질이 함유된 담배는 대장암 발생률을 높이는 만큼 반드시 금연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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