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된 막말로 이목 끌려는 사람들 있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8.2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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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전 중앙대 겸임교수 인터뷰

ⓒ시사저널 임영무


말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고,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0년 내란음모죄로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받기 직전에 재판장의 입을 예의 주시했다고 한다. 재판장의 입 모양새가 앞으로 둥글게 내밀어지면 ‘무기징역’, 반대로 입이 안쪽으로 들어가면 ‘사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말 한마디에 사람의 운명이 엇갈리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주류 사회에서는 ‘독설’과 ‘막말’이 난무하고 있다. 도저히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저급한 욕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하며 상대편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삼는다. 날카로운 경구로 상대편의 급소를 찌르는 ‘촌철살인’이 아쉬운 때이다.

<시사저널>은 활발하게 활동하는 진보와 보수 진영의 대표 논객들을 통해 막말이 판치는 사회 현상을 진단할 계획이다. 그 첫 주자로 진중권 전 중앙대 겸임교수를 만나보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특별한 인연이 있는가?

인연은 없다. 다만, 1985년 2월 미국 망명길에서 귀국할 때 공항에 나갔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하지만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뒤부터 생각을 바꾸었다. 동료와 선후배들이 목숨 바쳐 (정권 교체의) 기회를 주었는데 (양김씨가) 서로 싸우면서 기회를 잃었다. 그 후부터 진보 정당을 지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하나?

위대한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다시 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 독학으로 2만권에 달하는 책을 독파했을 정도로 가치관이 뚜렷했다. 김 전 대통령만큼 체계적인 수준의 정치 철학을 가진 정치인은 앞으로도 찾아보기 힘들 것 같다.

특히 높이 평가하는 것은 수십 년 동안 ‘빨갱이’라고 비난받고 탄압을 받으면서도 이에 굴하지 않고 남북 화해를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위대한 정치가’인 것은 틀림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교한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형이나 오빠 같고, 옆집 아저씨 같은 분이시다. 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적인 면이 강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애정 어린 대통령’이라고 한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은 평소 ‘용서와 화해’를 주장했다. 병상에 있을 때는 한때 정적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도 다녀갔다. 5·18 어머니들도 ‘이제는 용서할 때’라고 했다.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당사자 간의 용서와 화해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피해자가 용서하는 것도 좋지만 가해자도 진정으로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참회가 없는 용서는 큰 의미가 없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죽기 전에 과오를 정리해야 한다. 광주 망월동 묘지에 가서 영령들에게 고개 숙여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될 것이다.

최근 중앙대 독문학과 겸임교수를 포함해 그동안 강의를 맡고 있던 3개 대학에서 차례로 재임용되지 못했다. ‘정치적인 배후’가 의심된다고 했다.

현 정부 들어서 차례로 강의가 사라졌다. 한마디로 불쾌하다. 그 자리(겸임교수)는 대단한 자리가 아니다. 경제적인 의미도 별로 없다. 한 달에 강의 두 개를 하면 100여 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 시간에 다른 데 가서 강연하면 1시간에 100만~2백만원을 받을 수 있다. 마치 내가 큰 특혜를 받은 것처럼 생각하는데, 나는 학교를 도와주는 차원에서 강의를 나갔다.

국립대나 공립대는 국가 권력에 종속되고, 사립대는 시장 권력에 종속되면서 대학의 진짜 주인인 교수나 학생들의 발언이 무시되고 있다. 대학의 자율성이 침해당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혹시 강의하면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학문을 얘기하는 것도 모자란다. 나는 미학 쪽에도 나름대로 브랜드가 있고, 책도 펴냈다.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도 학문적인 기대감이 있다. 그런데 굳이 강의 시간에 정치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어떤 학생들은 내게 (정치 발언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학문’에만 열중한다. 만약 시험 답안지에 학문과는 상관없는 정치 이야기를 적었을 때는 과감하게 찍찍 긋는다.

‘진중권’ 하면 독설을 빼놓을 수가 없다. 도대체 독설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독설은 아무에게나 퍼붓지 않는다. 상대방이 저급하게 웃길 때, 상식을 무너뜨리고 비논리적인 주장을 펼 때 또는 상대가 양심 불량이고 그 발언이 심각하다고 느껴질 때 독설이 나온다. 독설의 소재는 상대방이 제공하는 것이다. 나 정도의 독설은 인터넷에 널려 있다. 좋은 말이 있으면 빌려도 쓰고, 허락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그냥 인용해서 쓰기도 한다. 

상대방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이 피곤하지 않은가?

나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상대편의 정책이나 방향 등 정치적인 결정의 문제를 가지고 독설을 퍼붓는다. 특정인을 공격하는 막말과는 차원이 다르다. 독설이 권력자를 공격한다면 막말은 약자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공격하고 상처를 준다. 이것이 독설과 막말이 다른 것이다.

지나친 막말을 한다는 지적도 있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막말을 해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막말을 하는 상대방에게 독설로 일침을 가한 적은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막말은 ‘다음 대통령은 대학을 나온 사람을 뽑자’라는 식의 상식 이하의 발언이다.

진교수를 비판하는 쪽은 2004년의 ‘자살세 발언’을 문제 삼고 있다.

그때는 일개 네티즌의 입장에서 한 말이다. 내가 공식적으로 쓴 칼럼이나 기고 글도 아니다. 그런데도 수년 전의 극히 개인적인 글을 마치 공식적인 발언인 것처럼 다시 끄집어냈다. 나를 흠집 내기 위해 들먹인 것이다.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 곧바로 사과도 했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와 오랫동안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데, 비생산적인 소모전이 답답하다고 느끼는 시각도 있다.

소모전이 맞다. 다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나는 ‘변희재’에 관심이 없다. 그와 엮이는 것도 기분 나쁘다. 그런데도 변희재는 사사건건 나를 물고 늘어진다. 빅뉴스에서 ‘진중권’을 검색하면 100개가 넘는 글이 검색된다. 나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나를 이용해서 유명해지고 싶은 모양이다. 예를 들어, 사이트(빅뉴스)에서 나를 씹으면 페이지뷰가 엄청 늘어난다. 소통에는 건전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장사를 하려는 속셈이다. 변희재가 먹고사는 방법이 그것이어서 소모전이 끝나지가 않는다. 지금까지 10년 동안 변희재에게 일방적인 스토킹을 당해왔다.

변희재 대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마디로 ‘박근혜를 짝사랑하는 허경영’이다.

보수 논객들의 ‘막말’이 사회적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왜 그런다고 보는가?

이 사람들이 언론의 관심을 갖고 유명세를 탈 때가 언제인가를 잘 생각해 보라. 망언을 할 때이다. 그전에는 누가 이름이나 기억해 주는가. 때문에 ‘망언’을 해야만 자기들이 유명세를 탄다는 ‘망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의도적이다. 이번 쇠고기 수입업체 에이미트가 배우 김민선씨를 고소한 것도 김씨의 유명세를 이용하기 위한 계산된 마케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진교수의 발언과 관련해 고소·고발된 횟수가 얼마나 되는가?

현 정권에 들어서만 세 건이다. 민·형사 고소를 함께해왔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여섯 건이라고 할 수 있다. 참, 얼마 전에 변희재씨가 고소한 것까지 합치면 총 일곱 건으로 늘어났다. 다 무혐의 될 것이 확실한데, 문제는 조사받으러 다니고 하는 것이 피곤한 것이다.

직접 정치할 생각은 없나?

최근 여러 가지 일을 당하면서 ‘권력이라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저래서 사람들이 권력을 쥐려고 하는 구나’ 하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 나서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

향후 계획은?

철학과 문학과 역사를 뛰어넘는 창작을 할 생각이다. 원래 소설을 읽지 않는 편인데, 요즘에는 소설을 많이 읽고 있다. 미술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요소들을 담을 것이다. 약 3년 정도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 조형예술, 미디어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하고 여기에는 그동안 벌어놓은 돈을 투자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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