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눈에 딸은 안 보여?
  • 이재현 (yjh9208@korea.com)
  • 승인 2009.09.0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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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가 보여주는 지긋지긋한 애증…뻔한 설정에 ‘최루탄’ 승부

▲ 감독: 정기훈 / 주연: 최강희, 김영애

외환위기 이후 한동안 <아버지>라는 소설이 장안의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온 나라가 구조조정 회오리에 들어 수많은 아버지가 직장을 잃고 거리로 나앉은 시절에 이 소설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평소에는 전혀 존재감이 없던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얼마나 헌신하고 살았는지 새삼 일깨워준다는 내용이다. 가부장이라는 혹평 속에서도 아버지는 식구들을 위해 굴욕을 밥 먹듯 견디고, 집에 와서는 그 굴욕을 내색도 하지 않고 살다 결국에는 죽어가는 이 땅의 아버지들이 처음으로 빛(?)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지금 다시 엄마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이 반증이다. 엄마는 모든 희생양의 대명사로 자식들에게는 원죄가 되는 존재이다. 큰소리나 치는 아버지와 달리 한없이 퍼주다 늙어가는 엄마는 분명 아버지보다 돋보일 수밖에 없다. <애자>는 가족 속에서 엄마에게 소외받는 딸을 주인공으로 모녀간의 애증을 그린 영화이다.

애자(최강희 분)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말썽을 부려 과부 엄마(김영애 분)에게 야단이나 맞는 애물단지이다. 가축병원 수의사인 엄마는 아들을 유학 보내는 등 정성을 다 쏟지만 딸 애자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다. 둘은 사사건건 부딪히며 싸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스크린은 이 두 여자의 경상도 사투리로 시끄러울 지경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모녀의 지나치게 과장된 싸움질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 것인지 알 수 있다.

사사건건 싸움질로 시끄러운 스크린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쓰러지고, 의사는 애자에게 한시도 눈을 떼지 말고 간호하라는 부탁을 하고, 그래서 붙어다니는 모녀는 말끝마다 또 싸우고…. 정기훈 감독의 주문이 있었는지 최강희와 김영애의 연기는 마치 연극 무대의 배우처럼 목소리가 크다. 그 때문에 영화는 리얼리티가 떨어지고, 관객들은 뻔한 결말을 기다리는 꼴이 되고 말았다. 원수처럼 싸우다 죽어가는 엄마를 부둥켜안고 우는 애자를 보며 눈시울이 붉어지기는 하지만 처음부터 예정된 ‘최루탄’ 앞에 어이가 없다.

그럼에도 여성 관객들은 모녀의 애증에 공감을 하고 있다. 여자가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여자들끼리의 애증이라는 것이다. 엄마를 내세워 감동적인 이야기를 조금은 가볍게 다루어보겠다는 취지는 읽혀지나 감독의 연출이 지나쳐 배우들의 연기가 겉도는 것이 흠이다.

상영 시간 1백10분. 9월1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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