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날두 떠난 자리 박지성이 빛날까
  •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 ()
  • 승인 2009.09.0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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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력’ 줄어든 맨유, 미드필더들 모두 골 경쟁에 가세

▲ 8월20일 열렸던 맨유와 번리의 경기에 출전한 박지성 선수. ⓒ연합뉴스

유럽 프로축구 리그들이 속속 개막하는 가운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초반부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기존 ‘빅 4’ 클럽들(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첼시, 아스널) 이외에 시즌 출발이 좋은 토트넘, 맨체스터 시티의 약진이 두드러지면서 올해는 과거 어느 때보다 치열한 상위권 경쟁 구도가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박지성의 향배는 어떠할까.

2라운드에서 승격한 클럽 번리에게 패하며 맨유의 올 시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맨유는 여전히 강력한 우승 후보이다. 무엇보다 클럽의 안정성, 선수단의 양적·질적 두께, 어려움을 헤쳐나오는 관록과 위기 극복 능력 측면에서 맨유는 ‘빅 4’들 중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맨유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걱정은 역시 시즌 평균 30~40골을 도맡아왔던 공격의 ‘절대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사라졌다는 것으로부터 나온다. 번리전에서 드러났던 바와 같이 맨유가 객관적 약세인 클럽을 상대로 승점 3점을 챙기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다. 호날두의 스피드와 개인 전술, 대담함을 넘어 다소간 무리해 보이기조차 하는 득점 시도가 상대의 끈질긴 수비를 깨뜨리며 끝내 승리를 일구어내곤 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알기 쉽다.

맨유는 지난 시즌 ‘빅 4 클럽들 간의 미니 리그’에서 단 5점의 승점만을 따내는 데 그쳤다. 4승2무를 기록했던 리버풀이 14점으로 1위, 시즌 내내 고전했던 아스널도 9점이나 얻은 것을 감안하면 좋지 않은 성적표이다. 하지만 맨유는 세 라이벌들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과의 32경기에서 무려 85점의 승점을 쌓았다. 반면, 리버풀은 이 부문에서 72점에 그치며 우승과 멀어졌다. 결국, 지난 시즌 맨유의 우승 원동력은 라이벌 이외의 팀들을 확실히 잡았다는 데 있고, 올 시즌의 우승 경쟁에서도 이 대목이 중요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이다. 이는 프리미어리그의 전반적 발전상과도 맥이 닿는 문제로서, 지난 시즌 이전까지는 ‘빅 4’ 간 경기들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팀이 거의 우승을 차지하는 추세였지만, 중하위 팀들의 반란 빈도가 늘어난 지금에는 오히려 그들을 잘 제압하는 팀이 우승 경쟁에 유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호날두(그리고 테베스까지) 없는 맨유는 중요한 문제를 안게 되었다. 수비를 굳히고 대항하는 약팀들과의 경기에서 골을 터뜨리기 힘들어진다면 승점 획득이 이전보다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웨인 루니가 팀의 에이스로서 우뚝 서고, 디미타르 베르바토프가 당초의 기대대로 루니와의 조화로운 투톱 위력을 보여준다면 걱정거리는 줄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경우에도 미드필드에는 물음표가 남는다. 지금처럼 4-4-2를 가동했던 10년 전에는 ‘긱스-킨-스콜스-베컴’이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미드필더가 투톱을 위한 양질의 득점 기회들을 제공했다. 반면, 지금은 발렌시아, 박지성, 나니, 안데르손, 캐릭, 플레처 등을 믿어야 한다. 10년 전 미드필드 백업이 버트, 블롬퀴스트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양적으로는 크게 성장했으나 주전 멤버의 평균 수준은 그때만큼은 아니다. 물론 긱스와 스콜스는 변함없이 존재하지만, 둘의 위력은 전성기에 비해 상당한 정도로 감퇴했다. 하그리브스가 빨리 돌아오면 좋겠지만 그의 몸 상태는 적어도 현재로서는 믿을 것이 못된다. 결국, 호날두가 떠난 맨유는 총체적 관점에서 가장 좋았던 상태의 파괴력에는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기본적으로 맨유는 지금 ‘과도기’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이다. 선수의 우수성과 전술적 완성도를 동시에 구현했던 ‘긱스-킨-스콜스-베컴’ 시대와 ‘호날두-루니’ 시대 사이에는 다소간의 과도기가 있었다. 바로 지금 맨유가 다시 한 번 그러한 시기를 맞이했다.

▲ 박지성 선수와 미드필더 경쟁을 벌이고 있는 안토니오 발렌시아 선수(왼쪽)와 나니 선수(오른쪽 사진 가운데). ⓒ연합뉴스

‘에이스’를 위한 플레이에서 벗어나야

그러면 이러한 시기에 맨유와 함께하는 박지성의 입지는 어찌될까? 단순하게 말해, 맨유의 현재 상황은 박지성에게 좋은 측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다. 먼저 장점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에이스이자 절대자로 군림했던 호날두의 이탈은 박지성을 비롯한 나머지 선수들 모두의 지분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다. 호날두가 있는 상태에서 측면의 한 자리는 호날두를 위해 비워놓아야 했지만 이제 그런 상황은 없다. 새로 영입된 발렌시아든, 기존의 나니와 박지성이든, 이 상황은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의 장을 열어줄 것이다. 호날두 한 사람의 역량 발휘를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한 전술은 이제 없다. 모두가 조직적으로 팀 득점에 가세해야 한다. 호날두의 공백이 야기할 또 하나의 유리함은 호날두가 공격수 역할을 할 경우 곧잘 측면에서 플레이하곤 했던 루니가 이제는 그런 역할을 맡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측면의 잠재적 경쟁자 한 명이 줄어듦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호날두의 이탈이 박지성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있다. 호날두의 득점력을 최대로 이끌어내기 위해 시도되었던 전술은 루니를 비롯한 많은 선수의 이타적 플레이를 요구했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이타심과 전술 이해도가 높은 선수들의 출전 기회를 늘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바로 박지성이 그러한 범주에 속하는 선수임을 감안할 때, 호날두의 공백은 오히려 박지성에게 불리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새로이 가세한 발렌시아가 일정 수준의 수비력을 겸비한 공격 자원이라는 사실도 박지성의 팀 내 ‘특별함’을 다소간 감소시킬지 모르는 요소이다. 결국, 호날두의 이적은 박지성에게 기회의 장이 될 수도, 아니면 팀 내 역할을 축소시킬 수도 있는 사건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의 박지성의 대책은 특히 시즌 초반 주어지는 기회에서 최선을 다해 팀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 이외에 다른 것이 없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박지성이 지금까지 노력해 온 방식과도 같은 것이다.

한편, 박지성의 입지와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약간의 변수는 역시 측면을 소화할 수 있는 새로운 공격 자원의 영입니다.

재정 상황에 약간의 숨통이 트인 스페인 클럽 발렌시아는 다비드 실바를 다른 팀에 내주지 않을 태세이다. 현재 상황에서 영입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이는 인물은 호날두와 카카의 영입으로 자리를 잃게 된 레알 마드리드의 아르옌  로벤이다. 부상이 너무 잦다는 단점은 있으나 공격적으로는 확실한 재능맨인 로벤이 맨유에 입성하게 된다면, 이는 박지성에게 앞에서와 정반대 의미에서의 ‘일장일단’을 다시금 제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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