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밀고 하토야마 끌고 나오토 뛰었다
  • 도쿄·임수택 편집위원 ()
  • 승인 2009.09.01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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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민주당 이끄는 주요 인물과 세력 분석 다양한 출신에 9개 그룹이 자유롭게 ‘동거’

▲ 8월2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중의원 선거 지원 유세에 나선 민주당 하토야마 대표(가운데)가 연설하고 있다. ⓒAP연합

2005년 선거에서 자민당의 고이즈미 전 총리는 우정성 민영화 문제를 놓고 진검 승부를 펼쳐 대승을 거두었다. 2009년 선거에서 민주당은 정권 교체와 관료 사회 타파라는 문제를 가지고 진검 승부를 펼쳐 대승을 거두었다. 이번 대승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다. 54년 만에 정권이 교체되었다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민주당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었다. 지난 7월21일 중의원 해산 이래 혁명적인 정권 교체를 호소해 온 결과이다. 

자민당식 정치, 자민당 파벌 정치의 막이 내리고 ‘민주당 세상’이 열렸다. 명실상부한 정권 교체는 이번이 처음이다. 따라서 민주당의 진로는 내외적으로 초미의 관심사이다. 그러나 민주당 인사들의 면면은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마쓰바라 진 의원과 같이 종군위안부 동원에 정부의 조직적 개입이 없었다고 강변하는 극우적 성향의 의원에서부터 칸 나오토 전 대표와 같은 진보적인 인사들까지 정치적 색채가 다양하다. 자위대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인물에서 일본은 보통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헌법 9조를 개정해서 보통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자민당의 우파적 사고를 하는 인물들이 동거하고 있다.

 출신들의 원적도 다양하다. 민주당의 중심축을 이루는 하토야마 유기오 대표, 이번 선거에서 총사령관 역할을 한 오자와 전 대표, 민주당 3인방 중의 한 사람인 오카다 전 대표 등 자민당 출신에서부터 나오시마 마사유키와 같은 민사당 출신까지 공산당 빼고는 출신 정당이 다양하다.

 사상적인 스펙트럼만 다양한 것이 아니다. 그룹도 많다. 오자와 전 대표를 지지하는 일신회 그룹, ‘정권 교체를 실현하는 모임’인 하토야마 그룹, 마쓰시다정경숙 출신들과 언론계의 모임인 노다 그룹, 고시이시 등 노조 출신이 중심이 되어 만든 신정국간담회 그룹 등 아홉 개의 그룹이 있다. 자민당의 파벌과 다른 점은 자유스럽게 들어가고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복수로 가입할 수 있고 결속력도 그다지 강하지 않다. 그룹의 장이라고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그동안의 대표 선거전을 보더라도 그룹의 통일된 의견에 일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정책과 개인의 판단에 따라 지지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자민당처럼 파벌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룹이라고 부른다.

오자와, 이번 중의원 선거에서 전권 행사해 주목

하지만 그룹 차원을 넘어 자민당처럼 파벌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모임이 있다. 오자와 그룹이다. 오자와 전 대표의 비서가 정치 자금 문제로 구속되어 대표직을 물러난 뒤 현 대표인 하토야마와 오카다 전 대표가 맞붙었을 때 오자와 그룹은 일사분란하게 오자와의 의중대로 하토야마를 밀었다. 하토야마 대표는 이에 보답하듯 이번 선거의 거의 대부분을 오자와 전 대표에게 일임했다. 오자와는 각 지역의 후보자 선정, 자금 관리, 전략 관리 문제 등 이번 중의원 선거가 사실상 오자와 선거라고 할 정도로 전권을 행사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오자와가 공천을 준 의원이나 신진 세력들이 친(親)오자와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 오자와의 당내 위상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오자와의 핵심 지지 그룹들은 ‘오자와 신자’라고 불린다. 이런 맥락에서 차기 민주당의 정책과 진로를 이해하는 데는 오자와와 오자와 그룹들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필요하다. 30명 정도로 분류되는 오자와 세력의 핵심은 자민당을 탈당해 신진당과 자유당을 거쳐 민주당에 안착한 야나오카 겐지 의원을 비롯해서 오타 가유미, 마쓰기 켄코우, 스즈키 카스마사 등이다. 이외에도 참의원 20여 명을 합치면 50명이 넘는 당내 최대 세력군을 가지고 있다. 의원 이외의 인력과 이번 선거에서 양으로 음으로 지원한 잠재적인 친오자와 세력까지 감안하면 그 수는 50여 명을 훨씬 넘는다. 따라서 앞으로 민주당에서는 겉으로 보이는 하토야마 대표의 언행만큼이나 막후에 있는 오자와 전 대표의 일거수일투족이 주시될 수밖에 없다. 오자와는 과거 자민당 시절 자신이 속했던 당내 최대 파벌인 다나카파와 같은 파벌을 민주당에서 이루어내고 있다.

오자와는 자민당에서 정치를 시작해 자민당의 다케시다파가 분열했을 때 탈당한 이후 신생당, 신진당, 자유당을 거쳐 2002년 민주당과 자유당이 합당하는 형식을 통해서 민주당에 뿌리를 내렸다. 오자와는 개혁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이다. 관료주의 탈피를 강하게 외치는 당내 강경론자 중 한 사람이다. 1993년에 쓴 <일본 개조 계획>은 정치인 도서로서는 이례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주목되었다.

오자와 전 대표가 이번 선거에서 드러나지 않은 승리의 주역이라면 명실상부한 승리자는 차기 총리가 확실시되는 하토야마 대표이다. 하토야마 대표는 일본의 대표적인 정치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증조부인 하토야마 가즈오는 중의원 의장을 지냈으며 조부인 하토야마 이치로는 총리를, 부친 이이치로는 외무대신을 지냈다. 하토야마 대표의 동생은 현 자민당 의원이다. 자민당의 다나카파로 정계에 입문한 뒤 당내 정치 개혁을 둘러싼 이견으로 탈당하고 신당 사카가케를 거쳐 민주당에 안착했다. 하토야마 대표의 사상적 체계에 총리를 지낸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가 큰 영향을 미쳤다. 사상적 신조는 ‘우애’이다. “리버럴은 사랑이고 이 사랑은 우애이다”라는 표현은 조부 이치로가 즐겨 쓰던 말이다. 오자와 전 대표가 비서의 정치 자금 문제로 대표직을 내놓고 하토야마를 지지해 대표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이유도 이 우애 정신을 믿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당이 정권을 획득하게 되면 하토야마와 오자와가 공동 지분을 가지고 정국을 운영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 바로 하토야마라는 인식에서이다.

개혁의 선봉은 하토야마 대표와 오카다 간사장

▲ 정권 교체를 위해 ‘필승’의 의지를 불태운 일본 민주당의 중의원 선거 유세 현장들. ⓒAP연합

이러한 우애 정신이 향후 외교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주목된다. 2009년 5월 대표 선거 때 “가치관이 다른 사회와도 공생해갈 수 있는 우애 외교를 추진한다”라고 주장하며, 아소 총리처럼 같은 가치관만을 가지고 있는 국가와 외교를 하는 형태를 비난하기도 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한·일 관계가 경색되었을 때는 야당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한명숙 전 총리 시절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 독도 문제 등에 대한 강한 유감 표명에 대해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라며 공감하기도 했다.

또, 지난 6월5일 이명박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는 이대통령의 새로운 사죄 요구에 대해 “일부에서는 과거 침략 행위를 미화하는 풍조가 있다. 민주당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 내셔널리즘의 포로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답변했다. 선거 유세 중에는 야스쿠니 신사 문제로 주변 국가와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 누구나 추도할 수 있는 국립 추도 시설을 설립하겠다고 말했다.

외교적인 부분에서 오자와와 거리감이 없지 않지만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시장경제를 신봉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그는 이번 선거의 쟁점 중 하나였던 소비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자민당의 주장에 대해 정부의 낭비성 예산만 제대로 잡으면 충분하다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초기부터 강도 높은 구조 개혁이 예상된다. 관료 중심에서 탈피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어 지난 54년간의 자민당 정치에 대수술을 가하는 파란이 일 것 같다.

개혁의 선봉 대열에는 오카다 가스야 현 간사장도 있다. 오자와 전 대표가 물러난 이후 하토야마와 대표 경선에서 패배한 뒤 정권 교체를 위해 하토야마가 제의한 간사장 자리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오카다의 정치 여정은 오자와와 흡사하다. 자민당에서 시작해서 신생당, 신진당, 국민의 소리, 민정당을 거쳐 민주당에 들어왔다. 오자와가 죽 같은 길을 걸어왔으나 1997년 오자와가 신진당을 해체하자 명분 없는 일이라며 갈라섰다가 민주당과 자유당의 합병으로 다시 만난 운명적 관계에 있다.  ‘미스터 클린’으로 불리며 소신을 꺾지 않는 원칙론자이다. 한편에서는 이상주의자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한다. 정치 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정치 자금 규정법을 개선하는 차원에서 1엔이라도 영수증을 첨부하는 의무를 부과하자고 주장했다. 기자들 사이에는 저녁에 술 한잔하고도 각자 나눠서 내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하지만 정작 집안은 이온그룹의 창업가로 부잣집 아들이다. 선거 때에는 이온 가게 앞에서는 절대 유세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외교적으로는 미·일 관계를 기본 축으로 하면서도 아시아와의 관계를 중시한다. 고이즈미 전 총리에 대해서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등 주변국과의 선린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 한국인을 비롯한 ‘영주 외국인 주민의 법적 지위 향상을 추진하는 의원 연맹’ 회장으로 영주 외국인에 한해서 참정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의원이다. 외교 문제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하토야마 대표와 같은 노선을 걷고 있으나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다소 독자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하토야마 대표의 증세 반대 주장에 대해, 자신이 대표로 있던 시절에는 소비세 증세를 주장해 집권 후 지도부에 대한 의견 조율 과정에 불협화음이 예상되기도 한다. 

시민운동 출신 칸 나오토 의원은 대표직 두 번이나 역임해

민주당의 미래를 논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의 핵심 인물은 바로 민주당 대표를 두 번 역임한 칸 나오토 의원이다. 앞서 언급한 민주당의 핵심 인물 4인 중 하토야마, 오자와, 오카다 의원들이 모두 친정이 자민당 출신인 데 반해 칸 나오토는 순수 시민운동 출신이다. 당내 진보적인 세력의 좌장 역할을 하고 있다. 당내외에서 인정받는 논객이지만 성품은 부드러우며 인간적이라는 평이다. 하시모토 내각에서 후생성 대신 시절 관료들의 문제점을 들추어내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었다. 연금, 복지 등 국내 문제에 대해서는 정통하나 외교 문제에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다만,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납치 피해자 전원 원상회복, 핵 폐기, 국교 정상화와 경제 지원 문제를 일괄 타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칸 나오토 전 대표의 리버럴한 정치색을 잇는 대표적인 젊은 의원으로는 에다 유기오 의원을 들 수 있다. 그는 칸 나오토가 대표 시절 정조회장을 맡는 등 젊은 의원의 선두 그룹으로서 성장해오고 있다. “일본이 국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수 세력이나 다양성을 중요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며 소수파를 옹호하는 인물이다. 국내 문제에 정통한 정책가이며 미국 일변도 외교 정책에 대해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과 관련해서는 경제적으로 중요시하나 정치적으로는 강경파로 알려져 있다.

 54년 만에 민의에 의해 정권 교체를 이룩한 민주당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은 크다. 하지만 당내 주요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내재된 불협화음이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도 많이 내포하고 있다. 당의 중심축이 될 4인- 하토야마, 오자와, 오카다, 칸 나오토-이야 각자가 대표직을 역임한 사람들이어서 각종 문제에 대해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화합을 이룩해갈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의원들의 다양한 사상적 스펙트럼과 출신 성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하는 등의 지난한 문제가 쌓여 있다. 센고쿠 요시토, 요코미치 다카히로 의원 등 강한 진보적 이념을 쉽게 꺾지 않을 인사들과 거리감을 좁히는 문제로 충돌이 예상된다. 반면, 마에하라 세이지 부대표, 겐바 코우이치로, 하라쿠치 가츠히로와 같은 강한 보수 성향의 의원들도 있다. 하라쿠치 의원은 한·일 의원 연맹 소속이기도 하지만 매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인물이다. 이들은 초당파 모임인 ‘신세기의 안정 보장 체제를 확립하는 젊은 의원회’ 회원인데 여기에는 자민당의 극보수 성향인 아베 신조, 이시바 시게루 의원 등이 소속되어 있다. 따라서 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한 성향의 의원들이 운집해 있는 색채를 조정하는 일이 앞으로 민주당의 성패를 좌우하는 관건이 될 것이다.

비단 당내 문제만이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하토야마 대표는 민주당이 단독으로 과반수를 획득한다 하더라도 사회당과 국민신당과의 연립정권을 유지해가겠다고 공언했다. 당장 선거 기간 중에 사민당의 후쿠시마 미즈오 대표는 내년 1월이 기한인 인도양에서 해상자위대의 급유 활동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는 한편, 현행법 유지와 비핵 3원칙 법제화를 주장하고 있어 민주당 일부 세력과의 마찰이 예견되고 있다.

출신 성분의 다양성과 사상적 배경, 개혁적 성향과 노련한 정치인들의 동거, 유사하지만 거리감이 있는 사회당, 국민신당과의 연합체제 구조이기에 민주당의 진군이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다만, 국민들의 과잉 기대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가 민주당이 복잡한 정체성을 조정하고 통일해서 집권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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