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을 아버지에게 줄 수 있어 기뻤다”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09.0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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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효녀 심청 권지현씨 인터뷰 / “앞으로도 효도”

심청은 고금을 막론하고 ‘효녀’의 대명사로 회자된다. 그런데 요즘은 ‘효녀’보다는 ‘패륜’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심지어 나이가 들고 병든 부모를 버리는 ‘현대판 고려장’까지 판치고 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판 심청이’ 이야기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머나 먼 전설 속의 이야기가 되고 있었다.

이런 때에 대구에서 들려온 ‘현대판 효녀 심청’ 이야기가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간암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자기 간을 이식한 딸의 이야기가 순풍에 돛단 듯이 전국으로 퍼져가는 중이다. 주인공은 대구한의대 1학년에 재학 중인 권지현씨(20)이다.

지현씨의 부친 권영환씨(50)는 지난 4월 간암 판정을 받고 시한부 생명이 되었다. 장기이식센터에 이식 희망자로 등록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에게는 절망으로 다가왔다. 장기 이식자를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피 말리는 나날이었다. 더구나 아버지 권씨의 간은 계속 굳어지면서 정맥류까지 생겼다. 이를 보다 못한 지현씨와 언니가 나섰고, 아버지의 간과 크기가 비슷한 지현씨가 수술을 받기로 했다.

지난 7월21일 14시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아버지 권씨는 꺼져가던 생명을 건질 수가 있었다. 평상시 삼대가 모여 살면서 화목하게 지냈다는 지현씨의 가정은 다시 ‘희망’을 품었다. <시사저널>은 ‘효녀 심청’ 지현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수술받은 지 얼마 안 되는데, 몸 상태는 어떤가?

지난 7월21일에 수술을 받았다. 한 달쯤 지나서 그런지 몸이 많이 좋아졌다. 활동하는 데 지장은 없고, 생각보다 회복이 빠른 편이다.

아버지가 ‘간암’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낌이 어떠했나?

그때는 정말 믿겨지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우리 가족에게 그런 일이 닥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간 이식할 때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나?

입원하기 전에 약간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도망치고도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께는 내가 필요했다. 내 간을 아버지에게 줄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다.

간을 이식한 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수술이 끝나고 한동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로지 아버지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수술 후) 3일이 지나고 나니까 아버지가 내가 있는 병동 쪽으로 올라왔다. 그때 ‘아버지가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살아서 고맙고, 힘든 것을 잘 견뎌내서 감사했다. 

간 이식을 하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평소에는 이런 것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이런 일을 겪고 나니 간 이식이 절실한 환자들의 가족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는 헌혈도 열심히 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살고 싶다.

요즘 ‘효녀’라는 말을 많이 들을 것 같다.

나에게 ‘효녀’라는 말은 너무 과분하다. 그동안 아버지에게 사랑만 받고 내가 해드린 것이 별로 없었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그것(간 이식)밖에 없었는데, 아버지가 미안해 하셔서 내가 민망했다. 앞으로도 언니와 함께 효도하면서 살겠다.

건강을 되찾으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아버지가 건강하실 때에는 가족끼리 여행을 자주 갔다. 아버지 몸이 완전하게 회복되면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가고 싶다. 그때가 되면 아버지가 좋아하는 낚시도 가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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