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마다 ‘북새통’ 환자도 의사도 ‘쩔쩔’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09.09.0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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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진료 폭주…보건소에도 여전히 사람 몰려

▲ 신종플루 거점 병원으로 지정된 중앙대 용산병원 진료소에는 하루 평균 80명의 의심환자가 찾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신종플루가 대유행에 접어들면서 무서운 속도로 퍼지고 있다. 벌써 사망자가 세 명으로 늘었다. 국내 첫 사망자가 발생한 지난 8월15일 이후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전국 보건소와 병원은 신종플루를 문의하는 전화가 폭주하고 내방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정부는 지난 8월22일 신종플루에 관한 모든 검사와 진료를 병원으로 일원화했다. 이를 위해 전국 4백55곳에 거점 병원을 지정하고, 그곳에서 검사와 진료가 가능하도록 했다. 보건소에서는 상담만 가능하다. 병원을 찾는 의심환자들도 하루 평균 100여 명에 이른다. 전국으로 따지면 하루 4만여 명이 신종플루 감염 불안에 떨고 있는 셈이다. ‘열이 난다’ ‘외국에 다녀왔다’ ‘신종플루 확진환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등 다양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겪게 된 신종플루 대유행에 환자도, 의사도, 보건소 담당 직원도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시사저널>은 서울시내 주요 보건소와 거점 병원을 찾아 ‘신종플루’ 대유행에 따른 혼란 상황을 취재했다.

지난 8월27일 보건 당국은 신종플루로 인한 세 번째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오후에 찾은 서울 종로구 보건소에서는 직원들의 몸놀림이 정신없었다. 사무실 전화벨이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직원들이 폭주하는 전화를 받느라 다른 업무를 못 볼 정도였다. 오금환 방역계장은 “하루에 2백통 가까이 문의 전화가 걸려온다. 신종플루가 발생하기 시작한 지난 4월 말부터 이런 상황이 4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전화를 받으면 다짜고짜 타미플루를 달라고 조르는데, 처방이 안 된다고 하면 온갖 폭언이 쏟아진다”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모든 검사를 거점 병원으로 일원화했는데도 보건소를 찾는 환자가 적지 않았다. 종로구 보건소 1층 입구 바로 앞에 설치된 간이 상담 책상에서는 한 시간에 4~5명꼴로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신종플루 사망자가 처음 발생한 후 며칠간은 하루 평균 1백50여 명이 보건소를 찾았다고 한다. 상담을 받기 위해 줄을 설 정도였다. 그때와 비교하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혼란을 겪고 있다.

“6만원 넘는 진료비 너무 부담스럽다”

지금까지 종로구 보건소에서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는 총 13명이다. 보건소에서 만난 문인희씨(여)는 “고열이 나고 인후통이 심하다. 이비인후과에서 편도선염인 것 같기는 한데 신종플루가 의심된다며 보건소로 가라고 했다”라며 병원이 써준 소견서를 내밀었다. 보건소 직원은 체온계로 문씨의 체온을 잰 뒤 N95마스크를 착용시켰다. 체온이 정확히 37.8℃로 신종플루가 의심되었기 때문이다.

오금환 방역계장은 “일단 의심이 간다. 이비인후과에서 처방해준 약을 먹고 이틀 정도 푹 쉬고서도 낫지 않으면 거점 병원을 찾아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라며 마스크를 3~4장 더 손에 쥐어주었다. 가족들에게 전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임시방편이 마스크 착용이기 때문이다.

거점 병원으로 지정된 민간 병원은 그야말로 전쟁 중 야전 병원 같았다. 지난 8월27일 오후에 찾은 서울 용산에 있는 중앙대 용산병원(이하 용산병원)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몰려드는 환자를 감당하지 못해 급하게 창고를 개조해 진료소를 만들었다. 그 안에는 환자와 의사, 간호사 등 10여 명이 뒤엉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환자도 7~8명 정도였다. 병원측에 따르면 하루에 80명 정도가 검사를 받으러 온다고 한다. 그 가운데 10% 정도가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받는다. 나머지는 불안한 마음에 ‘정상’임을 확인받고 싶어서 온 사람들이다.

실제로 신종플루 증상이 전혀 없는데도 병원에 온 사람도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돌아오자마자 곧장 병원을 찾았다는 30대의 이미진씨(가명·여)는 “싱가포르에서 신종플루 확진환자와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서 공항에 내리자마자 단숨에 병원으로 달려왔다”라며 불안해했다.

신종플루는 치료제만 개발되었지 예방약이 없기 때문에 증상이 없다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막연한 공포감에 불안해하고 있다. 용산병원 응급의학과 김찬웅 팀장은 “질병에 대처하는 자세가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기보다는 사전에 할 수 있는 것들을 충분히 하고, 확진 판정을 받더라도 병원 지시에 따라 약을 복용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감기처럼 앓다가 지나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주변의 권유에 못 이겨 병원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서울 북아현동에 사는 유미진씨(여)의 경우 회사에서 기침을 몇 번 했더니 직장 동료들이 떠밀듯이 병원에 다녀올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유씨는 “지난주에 몸에서 열이 나 이비인후과를 찾았더니 인후염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1주일이 지난 후 몸 상태가 나아졌는데 기침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자 동료들이 빨리 병원을 가보라고 하더라”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진료비에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현재 병원에 가면 접수비와 검사비로 5~6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일반 서민들에게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신종플루 증상이 있는데도 병원비 때문에 검사를 받지 않는 사람이 생겨날 수 있다. 검사비가 오히려 신종플루 사각지대를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권은희씨(여)는 “6만원이 넘는 진료비가 부담스러워 3개월 할부로 납부했다. 보건소에서 검사를 실시했을 때에는 무료라고 하더니 민간 병원에서는 6만원이나 받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약간의 초기 증상을 보였던 지난주에 보건소를 찾았을 것이다. 전염병과 같은 국가적 질병에 대해서는 정부가 진료비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신종플루 감염이 가속화되는 9월 이후에는 이런 혼란과 불만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현실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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