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엔자 ‘가을 대공습’ 왜 일어나나
  • 김형자 (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09.09.0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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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습도 낮아 활동에 유리…저항력 떨어진 인체 공격

▲ 서울 이촌동 신용산 초등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등교하는 학생의 체온을 재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바이러스는 인류 역사 내내 출현해 엄청난 생명을 앗아갔다. 인류의 역사는 ‘바이러스와의 투쟁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물도 무생물도 아닌 아주 하찮아 보이는 이 바이러스는 감기에서부터 에이즈에 이르기까지 인류를 괴롭히는 지독한 병원체이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신종플루 감염자가 18만명을 넘어서고 있고, 사망자 수가 약 1천8백명에 이른다. 세계는 지금 이렇게 확산되는 신종플루를 막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환자 수는 날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다가오는 가을부터 겨울까지 신종플루가 더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계절 특성상 기온이 떨어지는 가을이 되면 신종플루의 대유행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10월과 11월에는 유행의 정점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계절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기에 신종플루의 대유행을 가을로 예상하는 것일까.

올해도 어김없이 독감의 계절, 가을 환절기가 돌아온다. 유행성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성 감염 질환으로, 바이러스가 몸에 침투해 생기는 질병이다. 보통 감기는 리노 바이러스ㆍ파라인플루엔자 바이러스ㆍ호흡기세포융합 바이러스·인플루엔자 바이러스·아데노 바이러스 등에 의해 유발된다. 이 가운데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기도 윗부분의 감염을 흔히 독감(인플루엔자)이라고 한다. 같은 바이러스 감염이지만 독감은 감기와 달리 10∼40년 주기로 유행하고, 바이러스의 종류에 따라 계절별로 발생하는 빈도에도 차이가 있다. 리노 바이러스 감염은 가을과 봄에, 코로나 바이러스는 겨울에 많다.

매년 가을을 앞둔 환절기가 되면 계절성 독감 환자들이 들끓는다. 그것은 이 시점 기후의 특징인 낮과 밤의 급격한 기온 차이 때문이다. 이것은 낮과 밤의 습도 차이를 유발시킨다. 결국, 유행성 독감은 이러한 기온 차이, 습도 차이와 관련이 있다. 기본적으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온도와 습도가 낮은 경우에 생존율이 높다. 즉, 기온이 쌀쌀하고 습도가 낮은 가을과 겨울에 증식이 활발해진다.

거꾸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온도와 습도에 약하다는 얘기이다. 따라서 온도가 높고 습도가 많은 여름에는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하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들이 날씨가 쌀쌀해지는 계절이 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북반구에서 독감이 11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유행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독감 환자들이 가을부터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1918년 스페인 독감도 봄에 처음 찾아왔을 때는 그 기세가 미약했지만 가을에 강력한 독성으로 무장하면서 전세계를 강타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보통 온도가 높은 여름에는 유행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신종플루가 여름의 고온 다습한 기후에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이유는 신종플루에 면역을 가진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라는 것이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의 슈채트 박사의 설명이다.

또한, 환절기에 면역 능력이 반감되는 것도 유행성 독감을 확산시키는 원인의 하나이다. 여름은 체력 소모가 많은 계절이다. 여름철에는 체온이 지나치게 올라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물질대사를 촉진하는 갑상선호르몬의 분비량을 줄여 신체 내에서의 열 생산을 억제한다. 그러다가 환절기에 접어들어 일교차가 커지게 되면 여름철에 알맞게 설정된 우리 몸의 시스템을 일교차에 알맞은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시스템을 전환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려 환절기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쉽게 피로해진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면역 시스템인 저항 능력도 떨어진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계절성 독감이나 신종플루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쉽게 감염된다.

독감과 합쳐져 변종 나타날 수도

▲ 서울 중앙대 용산병원 진료소에서 신종플루 의심환자들이 진료를 받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올 가을과 겨울에는 폐렴과 신종플루, 독감의 유행 시기가 겹쳐 신종플루와 계절성 독감이 합쳐진 변종 발생 가능성도 제기된다. 물론 신종플루는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고, 폐렴은 세균 감염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근본적으로 감염 원인이 다르다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동일하게 호흡기를 통해 감염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고, 동시 감염되면 독성이 상호 상승하는 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겨울에 유행하는 계절성 독감은 해당 지역 인구의 약 10%가 감염된다. 계절성 독감의 경우 예방 백신을 맞은 사람도 있고, 감염이 누적되어 자체 면역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신종플루보다는 감염자 수가 적다.

그렇다면 만약 신종플루가 가을과 겨울에 대유행을 하면 과연 얼마나 감염이 되는 것일까? 인구 10명 중 대체로 3명이 신종플루의 감염자가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그 정도 감염되어 면역성이 생겨야 사람끼리의 교차 감염이 차단되고 확산이 수그러들기 때문이다.

대유행은 질병이 전국적으로 퍼졌다는 뜻이지 사망자가 많이 발생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따라서 지나치게 공포에 휩싸일 필요는 없다. 계절성 독감은 1천명당 2.6명의 환자가 발생하면 유행주의보를 발령한다. 신종 인플루엔자는 1천명당 1.81명이다. 치사율 면에서는 계절성 독감과 비슷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치사율이 높은 강력한 변종 바이러스로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특성상 유전자 재조합에 의한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전염력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바이러스는 과거에 경험했고 지금도 되살아나는 기존 질환의 유행(re-emerging)이거나, 과거에 만난 적이 없는 새로 생겨난 질병의 유행(emerging)이다. 그런 면에서 바이러스의 영원한 ‘짱’인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를 누를 수 있는 바이러스는 당분간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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