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신화 꿈꾸는 재벌들의 ‘신약’ 전쟁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09.09.08 17:0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LG·SK·한화 이어 삼성까지 가세, 의약품 시장 ‘군침’

ⓒ시사저널 이종현


제약 산업이 재벌 그룹의 전쟁터로 바뀌고 있다. 이미 LG, SK, 한화그룹이 기존 제약업계의 강자인 동아제약, 한미약품 등과 함께 신약 개발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 삼성그룹까지 가세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삼성그룹이 바이오 산업을 미래 신수종 사업으로 선정하고 전격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지난 7월 지식경제부(약칭 지경부)는 경기 부양과 성장 잠재력 확충을 위해 실시하는 ‘신성장 동력’ 스마트 프로젝트의 바이오 시밀러 분야에 참여할 기업을 선정해 발표했다. 주관 기업으로 뽑힌 곳은 삼성전자, LG생명과학, 셀트리온, 한올제약 등 네 개 기업이다. 지경부는 스마트프로젝트에 선정된 기업들이 개발한 제품을 빠른 시일 내에 상용화하도록 하기 위해 3백억원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산업은행R&BD펀드(3천억원), 신성장동력 바이오펀드(1천억원)를 통해 추가로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재벌 기업들이 제약업에 뛰어드는 연결 고리 노릇을 하는 바이오 시밀러는 단백질을 이용해 만든 바이오 의약품의 복제약을 말한다. 복제약이기는 하지만 일반 화학 합성 의약품의 복제약(제네릭)과는 다르다. 합성 의약품의 복제약은 원제품의 화학식만 알면 똑같은 공정으로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세포를 이용하는 바이오 시밀러는 공정 환경도 까다로울 뿐더러 오리지널 약을 완벽하게 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바이오 시밀러(similar)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바이오 의약품이 2004년 당시 약 9조6천억원의 전체 의약품 시장 중 2천9백억원(3%)을 차지했지만 2008년에는 13조7천억원 중 9천7백억원(7%)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세계 바이오 산업 시장 규모도 2007년 1천1백23억 달러에서 2015년에는 3천9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2006년 16.7%이던 시장 점유율이 2012년에는 24.3%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약 산업 초보자인 삼성이 스마트 프로젝트에 뽑힐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향후 5년간 5천억원을 투자하겠다는 청사진 때문이다. 이는 삼성이 반도체의 뒤를 잇는 신수종 사업으로 건강 산업을 택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의료계에서는 조만간 삼성이 GE 모델을 따라서 헬스케어 쪽에 진출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아왔다. 이미 삼성병원이나 삼성그룹 종합기술원 쪽에 관련 연구 프로젝트팀이 활동하고 있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가전에서 출발한 GE나 필립스가 가전에서 철수하고, 시장 경쟁이 덜하고 수익성이 좋은 건강 의료기기 쪽에 올인하는 점도 근거가 되었다.

삼성은 헬스케어 산업 진출의 첫 단계로 제약(바이오 시밀러)을 택했다. 재미있는 점은 삼성과 LG그룹이 의료기기나 제약 등 헬스케어 시장에서도 경쟁 구도를 이루게 된 점이다. LG전자는 최근 의료용 진동기, 정수기, 이온수기 제품을 내놓으면서 헬스케어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삼성과 LG의 경쟁 구도가 가전-반도체-휴대전화에 이어 제약 산업과 헬스케어 시장으로도 이어지는 셈이다. 제약 분야에서 현재까지는 LG가 삼성에 확실히 앞서 있다.  

삼성, 향후 5년간 5천억원 투자 계획

▲ 세계 바이오 산업 시장 규모는 2015년에 3천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LG생명과학 제공

스마트 프로젝트에서 삼성이 제넥신과 이수엡지스, 프로셀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했고 셀트리온이나 한올제약도 컨소시엄을 구성해 선정되었지만, LG생명과학은 단독으로 신청해 선정되었다. 투자비가 많이 드는 바이오 시밀라 생산 라인을 갖추고 있고 그동안 쌓아온 연구 개발 역량이 충분한 데다 거의 개발이 끝난 바이오 시밀러 제품인 서방형 성장 호르몬제(1주일에 한 번 맞는 성장 호르몬제)와 빈혈 치료제를 내세워 2011년까지 해외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청사진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LG생명과학은 국내 제약사 중에서 연구비를 많이 쓰는 편에 속한다. 국내 선두 제약사인 동아제약의 연간 연구·개발비가 지난해 4백50억원이었는데 비해, LG생명과학은 6백8억원을 연구개발비로 썼다. 이는 매출액 대비 21.6%라는 금액이다. 한미약품이나 동아제약 등 LG생명과학보다 매출액이 훨씬 큰 제약사가 매출액 대비 5%가 넘는 금액을 연구·개발비로 쓴 것과 대비된다. LG생명과학 박철하 부장은 바이오 시밀러 쪽 연구 개발에 공을 들이는 이유에 대해 “현재 의약품 시장에서 화학약과 바이오약의 비중이 7 대 3 정도이지만 향후에는 바이오 의약품 비중이 더 커질 것이다”라고 밝혔다.

셀트리온은 스마트 프로젝트 선정을 전후해 유방암 치료제인 허셉틴을 개발해 임상실험에 들어갔다고 발표해 주가가 수직 상승하는 등 투자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었다. 셀트리온은 2010년까지 임상을 완료하고 2011년부터 국내를 시작으로 허셉틴의 바이오 시밀러 제품을 전세계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허셉틴은 세계 최대 바이오기업이었던 제넨텍(현재 로슈에 피인수)에서 개발한 유방암 표적치료제로 2008년 전세계에서 58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2011년께에는 80억 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화학 신약인 발기부전 치료제 자이데나와 천연물 신약인 스티렌(위염 치료제)으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동아제약은 바이오 시밀러 분야에서도 성장 호르몬제와 불임 치료제를 개발해 시판하고 있다. 동아제약측은 향후 10년 뒤 해외 매출이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신약 개발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번 스마트 프로젝트에서 고배를 마신 한화그룹은 드림파마라는 제약사를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한화는 지난 2006년부터 한화석유화학에서 바이오 의약품 개발에 착수했다. 바이오 시밀러는 세 개를 개발 중이고, 이 중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는 지난 6월 말 식약청에 임상실험을 신청한 상태이다. 한화는 스마트 프로젝트와 상관없이 오송생명과학단지에 2018년까지 2천55억원을 들여 바이오 시밀러 생산 시설을 갖추는 등 바이오 시밀러 분야에 계속 투자하겠다는 입장이다. 재벌의 선도적인 투자가 세계를 제패한 반도체 신화를 재현할지 주목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