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에 걸면 코걸이’ 식…저작권 논란이 또 “미쳤어”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09.0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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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미쳤어> 흥얼거린 아이의 춤 동영상 삭제해 파문

▲ 8월25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박경신 교수(왼쪽)와 정연순 변호사가 ‘네이버 동영상 삭제’ 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 어린아이가 노래 몇 소절을 따라 부르는 동영상 한 편이 저작권 보호와 공정 이용에 관한 논의 필요성을 다시 부각시켰다. 지난 7월 창작자의 권리가 강화된 개정 저작권법이 발효되었지만, 여전히 저작권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인식이 충분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네티즌이 기존에 이용하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거나 저작권법에 저촉될 것을 두려워해 인터넷 사용을 자제하는 것 가운데 양자택일을 하고 있다. 이번 논쟁이 어떻게 결말지어지느냐에 따라 공정 이용에 관한 기준이 좀 더 명확해지는 계기가 마련되어 네티즌들이 인터넷에 게시물을 게재하는 형태에도 영향을 크게 미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이 된 동영상은 다섯 살 된 여자아이가 손담비의 <미쳤어>를 춤과 함께 따라 부르는 모습을 아버지가 촬영한 것이다. 네티즌 우 아무개씨는 딸이 보여주는 어설프지만 귀여운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지인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서 지난 2월2일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있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전체 노래 가사 중 세 줄 정도에 해당하는 53초 분량에, 원곡 음원을 배경 음악으로 사용하지도 않은 어린아이의 흥얼거림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이하 음저협)의 생각은 달랐다. 음저협은 이 동영상이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삭제를 요청했고, 네이버는 이에 따라 지난 6월17일 게시물이 보이지 않도록 블라인드 처리했다. 지난 6월22일 네이버로부터 이같은 사실을 통보받은 우씨는 다시 게재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우씨는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와 함께 음저협과 네이버를 상대로 각각 5백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음저협은 저작권을 대리하는 입장에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했다는 입장이다. 소송에 관해서도 정식으로 소장을 접수받지 못한 상황이라 공식적인 대응 방침을 세운 것은 아니지만 법원의 판단에 맡길 생각이다. 음저협은 네이버와 저작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법으로 돌아다니는 음악들에 대해 최근 노래를 중심으로 모니터링을 했다. 유형석 음저협 법무실장은 “모니터링 결과 이번 소송 건처럼 꼬마가 부른 것도 있고, 배경 음악으로 사용된 것도 있었다. ‘노래가 사용됐다’는 것은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삭제 요청을 한 것이다. 음원을 사용하지 않은 경미한 사안이라는 말이 있지만, 저작권이 음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원 작사·작곡가의 권리는 음원과는 관계가 없는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상업적인 의도가 포함되지 않은 게시물이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개인이 사적으로 본인이나 가족 등으로 한정해 이용했다면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네이버는 그런 사람들을 모아서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고 있다. 저작물을 이용해 이득이 생겼으면 저작자에게 적정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네이버도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에서는 음저협과 다르지 않다. 원윤식 네이버 홍보팀장은 “현 저작권법을 보면 가수의 춤 동작이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도 저작권 범주에 포함된다. 이 부분에 대해 저작권자인 음저협이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에 법 테두리에서 실행한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저작권법 103조 1항과 2항에 따르면 음저협의 요구와 네이버의 조치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인다. 문제는 저작권법 상의 공정 이용에 해당한다며 다시 게재할 것을 요구한 우씨의 요구를 네이버가 받아들이지 않은 데 있다. 103조 3항에 따르면 복제 및 전송자가 정당한 권리임을 소명하고 재개를 요구하면 저작권자에게 통보하고 예정일에 재개시켜야 한다. 네이버가 우씨의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은 그의 동영상이 공정 이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정 이용이란 저작권자가 아닌 사람들이 라이선스나 저작권 양도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저작권법에서는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비평·교육·연구 등을 위해서는 정당한 범위 안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다’라는 내용의 28조를 통해 공정 이용의 범위를 규정하고 있다. 정당한 범위와 공정한 관행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례를 통해 인용의 목적, 저작물의 성질, 인용된 내용과 분량, 독자의 일반적 관념, 원 저작물에 대한 수요를 대체하는지 여부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인식 부족한 현실 드러내

▲ 다섯 살 난 꼬마 아이가 손담비의 를 춤과 함께 따라 부른 동영상. 이 동영상은 네이버 블로그에 올랐다가 네이버에 의해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삭제당했다. ⓒ참여연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으로 있는 박경신 고려대 교수는 “원 저작물이 일반인에게 주는 감흥을 재해석해 다른 재미를 주는 경우 독립적인 창작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새로운 저작물을 만드는 창작 활동에서는 공정 이용이 허용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미국 법원이 잡지 <베니티 페어>의 표지를 장식한 데미 무어의 만삭 누드 사진을 패러디한 <총알 탄 사나이 3> 홍보 포스터를 공정 이용으로 인정한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미국 법원은 이것이 창작 활동의 결과물로 저작권 침해에서 벗어난다고 판단했다. 국내에서도 일본 영화 <러브레터>의 일부 장면을 전제한 <해피 에로크리스마스>에 대해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선언한 사례가 있다.

위의 경우는 상업적으로 이용했음에도 저작권 침해를 벗어난 사례이다. 결과적으로 포털사이트에 이익을 주었을지라도 우씨의 동영상이 상업적인 목적을 띠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개인의 일상을 담아냈을 뿐이다. 최근 미국에서도 이런 소송이 있었다. 유명 가수 프린스의 음악 <레츠고 크레이지> 음원을 틀어놓고 걸음마하는 아기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어머니가 촬영해 유튜브에 올린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프린스 노래의 음원권자인 유니버설뮤직이 이 동영상에 대해 삭제 요청을 해 삭제가 이루어졌고, 어머니 스테파니 렌즈의 요청으로 며칠 만에 다시 복원되었다. 렌즈는 며칠 동안 동영상이 삭제된 것에 대해 유니버설뮤직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연방법원은 소송을 기각해줄 것을 요구한 유니버설뮤직의 요구를 거절했고,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우씨의 동영상은 음원을 담아내지도 않았고, 해당 사이트가 복구 요청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렌즈 사건보다 저작권 침해 정도가 경미하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소송에 들어간 만큼 어린아이의 흥얼거림이 담긴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리는 일이 저작물에 대한 공정한 이용인지에 대한 판단은 법정으로 넘어갔다.

지난 8월12일 음저협,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와 네이버는 저작권 및 이용자 보호와 음악 산업 발전을 위한 공동 협약을 체결했다. 저작권을 보호하면서도 공정한 저작물 이용 보장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잡으려는 시도이다. 네이버 원윤식 팀장은 “저작권법은 친고죄이기 때문에 저작권자가 지적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협의를 통해 상식선에서 무리가 없을 정도로 공정 이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네티즌들이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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