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토불이’ 뮤지컬 의 미래 작품성 · 흥행성에 달렸다.
  • 조용신 | 뮤지컬평론가 ()
  • 승인 2009.09.1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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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제작 편수 1백50편 넘어…질적인 성장만이 미래 보장해

▲ 김종욱 찾기. ⓒCJE 제공


노동집약 산업에서 지식기반 산업으로 중심이 이동하는 우리나라에서 뮤지컬은 삶의 질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최근 몇 년간 성장을 많이 해왔다. 그런데 현재 뮤지컬 시장의 70% 이상은 여전히 해외에서 들여온 뮤지컬이 차지하고 있다. 매년 해외로 빠져나가는 로열티 가격도 상승하고 있다. 이왕이면 그 로열티의 수혜자가 한국인이 되고, 나아가 해외에 수출까지 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한다면 어떨까? 이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서 돈키호테가 꾸는 ‘불가능한 꿈’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인의 손으로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작품을 ‘창작 뮤지컬’이라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창작이 아닌 뮤지컬이란 존재하지 않겠지만, 해외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국내 배우들이 한국어로 공연하는 ‘라이선스 뮤지컬’과 구별하기 위한 명칭이라고 볼 수 있는데, 좀 더 정확한 표현은 ‘한국산 뮤지컬’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 창작 뮤지컬은 많은 창작·제작자들의 노력으로 많이 성장하고 있다. 초연된 지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어서도 여전히 스테디셀러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명성황후>나 <사랑은 비를 타고>는 물론이고, 작품성과 흥행성을 만족시키는 작품들도 다수 등장했다. <화성에서 꿈꾸다> <바람의 나라> <김종욱 찾기> <뮤직 인 마이 하트> <싱글즈> <형제는 용감했다> 등은 재공연을 거듭하면서 제작사들의 효도 상품으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대장금> <댄싱 쉐도우> 등에서 보듯 대극장 작품이 성공한 사례는 적고, 소극장 특유의 치고 빠지는 아기자기한 재미와 감동으로 관객들의 호평을 얻는 뮤지컬 코미디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현재 창작 뮤지컬의 연간 제작 편수는 1백50편을 넘어섰지만, 시장 점유율은 20%를 넘지 못한다. 창작 뮤지컬은 대부분 소극장에 집중되어 있지만, 라이선스 뮤지컬이 중·대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고 그 매출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잘 써진 대본과 완벽하게 작곡·편곡된 악보를 받아들고 한국화하는 작업 역시 제2의 창조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신토불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공통의 역사 인식과 생활의 경험을 공유하는 우리나라 관객들을 대상으로 국내 작가·작곡가·연출가 등 토종 제작진에 의해 만들어진 창작 뮤지컬은 우리 입맛에 훨씬 잘 맞을 수밖에 없다.

창작 뮤지컬은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먼저 인정받아야 한다. 국내에서 외면받고 해외에 수출해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오산이다.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영어권 사회가 상업적으로 성공한 뮤지컬 레퍼토리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이유는, 자국의 관객을 먼저 사로잡았고 이를 바탕으로 전세계로 진출해 장기 공연과 레퍼토리 리스트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성공이 한국에서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뉴욕과 도쿄에서 매진 사례를 기록했던 <라이언 킹>이나 토니상 역대 최다 수상작이라는 화려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정통 뮤지컬 코미디 <프로듀서스>가 한국 시장에서 기대 이하의 성과를 보인 것처럼, 수입 뮤지컬이라고 해서 흥행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이제 성공하려면 현지 관객들로부터 인정받는 스펙타클한 무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여기에 현지 관객의 감수성을 제대로 자극해야 할 것이다. 한국 관객의 감수성을 가장 잘 아는 것은 한국의 작곡가·극작가·연출가일 것이다. 그들이 무대에서 무엇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한국 창작 뮤지컬 시장도 커지고 뮤지컬 산업도 활성화될 것이다.

국내 작가·작곡가·연출가가 만든 창작 뮤지컬이 우리 입맛에 맞아

이렇듯 창작 뮤지컬이 중요하다는 데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지만, 창작 뮤지컬이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져 수익 모델로 검증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다행히 뮤지컬 활성화로 인해 뮤지컬 전용극장과 투자자들의 관심도는 과거에 비해 많이 늘어나고 있다. 배우나 댄서 역시 뮤지컬 관련 학과나 사설 아카데미 등을 통해서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인프라는 대부분 해외 뮤지컬의 수입과 관련해 부가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핵심 크리에이티브 팀 인력(작곡·대본·가사·연출·안무 등)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창작 뮤지컬을 통해야 한다. 1990년대 이후 한국 영화의 비약적인 발전 뒤에는 수많은 영화 아카데미와 해외 유학파들, 국내 인력들이 쏟아지면서 인력의 풍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이 분야에서도 과거에 비해 진전이 있다. 뮤지컬 학과나 아카데미에서 창작자들을 양성하는 과정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전국문예회관연합회가 주관하는 창작 팩토리를 비롯해서 대구뮤지컬페스티벌, 서울문화재단, 차범석희곡상, CJ문화재단 등 민·관에서 현재 동시다발적으로 공모를 포함한 다양한 창작 지원 방안을 내놓는 것도 고무적이다. 1995년에 생긴 한국뮤지컬대상과 2007년에 창설된 더뮤지컬어워즈에서 모두 창작 뮤지컬에 대상을 수여하고 있는 점도 창작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매년 고속 성장을 거두어왔던 뮤지컬 시장이지만, 올해 뮤지컬계는 낙관론과 비관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전반적으로는 지난해 말 금융 위기의 영향으로 올해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방향이 바뀔 것이라는 비관적인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수입 뮤지컬은 높아진 로열티로 인해 수익 구조가 악화되었고, 창작 뮤지컬은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최근 뮤지컬 시장은 대형 창작 뮤지컬의 잇따른 실패, 무모하게 뛰어든 일부 기획사의 구조조정 등 성장통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위기는 기회일 수 있다. 영화 시장이 그랬다. 한국 영화 침체론이 나올 때마다 한국 영화계를 한 단계씩 끌어올린 것은 그때마다 터진 ‘1천만명 동원’ 한국 영화였다. <실미도> <왕의 남자> <괴물> <해운대>가 모두 그랬다. 2000년대 초반부터 양적으로 급팽창했던 뮤지컬계가 이제 질적인 성장을 통해 한국 관객층을 넓힐 수 있는 창작 뮤지컬로 응답해야 하는 시점이다. 도약이냐 추락이냐의 기로인 셈이다. 지금 대안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제작자들과 창작자들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야 할 이유이다. 


▲ 브로드웨이 42번가. ⓒCJE 제공
수입 뮤지컬의 티켓 가격이 비싼 이면에는 매년 상승하는 로열티가 있다. 가령 소극장에서 공연된 <지하철 1호선>이 초연 당시 독일 원작사에 지급한 로열티는 매출 대비 6%였지만, 요즘 대다수 중극장 라이선스 작품은 8~11%이고, 영·미권의 대형 인기 뮤지컬은 기간과 지명도에 따라 12~18%에 이른다. 이러한 구조라면 한국의 로컬 프로듀서가 수익을 내기는 정말 어려운 실정이고, 그 부담은 대부분 관객이 져야 한다. 로열티가 상승하는 이유로는 한국 제작사 간의 과열 경쟁도 있지만, 날로 성장하는 한국 시장에서 큰 이익을 취하려는 해외 프로듀서의 욕심과 에이전시의 수수료도 한몫한다. 특히 공연의 흥행 결과와 관계없이 무조건 지급해야 하는 선지급금(Advanced Royalty)과 주당 지급하는 러닝 코스트(Running Cost) 역시 날로 상승하고 있다. 해외 인력의 인건비는 평균적으로 국내의 세 배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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