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장 잡자” 기업들도 호시탐탐
  • 박창섭 | 한겨레신문 기자 ()
  • 승인 2009.09.15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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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SK·CJ·한화·롯데·현대백화점·태광 등 대기업 종편 사업에 관심…중견 기업들에도 ‘러브콜’ 쏟아져

▲ 조선일보 방상훈 회장은 CJ(왼쪽) 이재현 회장을 만나 종편 추진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 사진자료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이달 중에 종합편성(종편) 채널 신규 사업자 선정 공모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9월10일 첫 번째 공개 변론을 연 헌법재판소는 10월 중순께나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지만, 방통위는 그에 관계없이 연내 사업자 선정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종편 진입을 희망하는 언론사들도 바빠지고 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메이저 신문 3사를 비롯해 매일경제, 국민일보, CBS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계획서 작성 및 인력·조직 정비 등으로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회사가 사활을 걸고 있는 것 같다”라고 사내 분위기를 전했다.

이와 함께 미디어법이 통과된 직후까지만 해도 방송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기업들도 꿈틀거리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언론사들과 혼맥, 혈연 등으로 연결된 대기업들이 유력 후보로 오르내리고 있으며, 자본력이 탄탄한 통신업체들도 방송에 진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들도 언론사들의 집중적인 회유를 받고 하나 둘씩 참여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모양새이다. 종편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은 무엇보다 언론사의 ‘러브콜’ 영향이 크다. 현재 종편 사업에 필요한 초기 자본금은 3천억원 선이다. 결국, 1천억원은 언론사들이 어찌어찌해서 조달한다고 해도, 2천억원은 기업들로부터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일부 메이저 신문사 간부들은 모집액을 할당받아 컨소시엄에 참여할 기업들을 접촉하러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업체의 한 관계자는 “언론사들이 하도 졸라대니 모른 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아마 대한민국의 웬만한 기업들은 거의 다 언론사들로부터 제안을 받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일부 기업들이 신수종 사업으로서 종편의 전망을 어둡지 않게 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뉴스, 오락, 교양,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그램을 방영하게 될 종편 채널은 사실상 지상파 방송과 차이가 없다. 특히 국내 가구의 90%가량이 유료방송을 통해 TV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종편 채널이 지상파 방송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게다가 정부의 종편 지원 의지가 워낙 강력하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광고시장 규제 완화와 세제 혜택 등 모든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가령 술, 병원 등의 광고를 풀고, 가상·간접 광고(PPL) 등 새로운 광고 기법이 허용되면 방송 광고시장이 급팽창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공영방송법을 제정해 KBS의 수신료를 인상해주는 대신 연간 6천억~7천억원 안팎인 KBS2 채널의 광고 매출을 20% 수준으로 축소할 방침이어서 연간 4천5백억원가량의 광고 물량이 새로 생겨나는 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종편 참여를 검토 중인 한 기업체 임원은 “정책 지원이 잘 되어서 종편의 연간 광고 매출이 4천억원만 넘으면 사업성은 있다”라고 말했다.

현재 종편 사업에 관심이 많은 대기업으로는 KT, SK그룹, CJ그룹, 한화그룹, 롯데그룹, 현대백화점, 태광그룹 등이 꼽히고 있다. 우선, SK그룹이나 KT는 현재 벌이고 있는 IPTV 사업(SK브로드밴드, 쿡)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종편 컨소시엄에 2대 혹은 3대 주주로 참여하는 방안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이 두 기업은 미디어법이 통과된 직후 메이저 신문사들의 구애를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KT 이석채 회장은 최근 조선일보 산업부장과 인터뷰를 한 뒤 경제면 톱기사로 다루어져 종편 컨소시엄이 구체화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MSO·MPP·언론사 등 합종연횡 활발할 듯

▲ 종편을 희망하는 신문사 상당수가 KT(위)와 접촉해 컨소시엄을 제안했다. ⓒ시사저널 사진자료

CJ그룹은 내부적으로 계속해서 종편 참여를 부인하고 있지만, 외부에서는 지속적으로 종편 진출 가능성이 큰 기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CJ헬로비전 등을 통해 케이블 방송 경험이 풍부하고 자금도 넉넉하다는 점이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최근에는 방상훈 조선일보 회장이 이재현 CJ 회장을 만나 종편 추진 내용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삼성이나 LG 등도 지금은 조용하게 있지만, 종편을 하는 언론사와의 원만한 관계 유지를 위해서 막판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한때 문화일보를 소유했던 현대그룹도 방송 진출에 대한 관심을 접기는 힘들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대기업은 아니지만 연간 3조원 이상의 거액을 운용하는 국민연금기금도 메이저 신문사들의 종편 컨소시엄에 참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기금이 종편에 참여할 경우 지분은 약 1천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견 기업들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무엇보다 대형 케이블 PP인 오리온그룹의 온미디어가 가장 주목되고 있다. 상당히 오랫동안 시장에 나와 있었던 온미디어는 지난 9월4일 매각 방침을 공식 철회했다. 인수 희망 기업들과의 협상에서 제시받은 가격이 그룹 내부적으로 정한 가격에 미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그룹 관계자는 온미디어 매각 철회 결정의 배경과 관련해 종편 등장 등 향후 국내 미디어 산업의 재편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종편 사업을 위해 통신사업자, MSO(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 MPP(복수방송채널사업자), 언론사 등 각 시장 참여자들 간에 합종연횡이 활발히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양질의 콘텐츠를 가진 온미디어가 부각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막대한 초기 투자비가 드는 종편 사업에서 온미디어가 중심이 되기는 어렵고, 종편의 일부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대기업 못지않게 매출과 수익이 좋은 한국도자기, 쿠쿠, 웅진코웨이 등도 언론사들의 집중 로비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메이저 신문사는 자사 지면에 연재했던 ‘파워 중견 기업’ 코너에 소개되었던 중견 기업들을 집중적으로 찾아다니며 노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아일보의 경우 지방의 중소기업들을 컨소시엄으로 묶어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한 중견 기업 임원은 “중견 기업이나 중소기업은 방송에 진출한다고 해도 대기업에 비해 사회적 부담이 크지 않은 것이 장점이다”라고 말했다.   

이미 종편 진출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4대 MSO의 종편 컨소시엄에 어떤 기업들이 추가로 들어갈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케이블TV업계에 따르면, 주요 MSO들은 종편 진출에 합의했지만, 미디어 전략에 대한 생각이 제각각이다. 사모펀드 매쿼리코리아오퍼튜니티즈자산운용(MKOF)과 MBK파트너스가 대주주인 C&M(씨앤앰)이나 칼라일이 대주주인 HCN의 경우 장기적인 투자보다 영업 수익을 챙기는 것이 우선순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은 다른 개별 SO나 PP 등을 끌어들여 케이블 진영의 연합전선을 펼치는 쪽에 무게 중심을 둔 것으로 풀이된다. 또, MSO들은 방송 경험이 풍부하고, 종편의 채널번호 지정권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언론사들이 공동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미디어법 강행 처리 이후 기업의 방송 진출이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이유가 아닌 다른 차원에 대한 고려에서 방송 진출이 이루어진다면 이후에 벌어진 결과에 대해서는 온전히 그 기업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냉혹한 시장 논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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