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교체한다고 ‘재건’이 잘될까
  • 박동희 | 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09.09.2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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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하위팀 LG·한화, ‘리빌딩’ 고민에 빠져

▲ 지난 5월3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KIA 경기에서 7회 말 조인성 선수가 2점 홈런을 치고 들어와 김재박 감독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사전을 펴보자. ‘리빌딩(rebuilding)’은 무슨 뜻인가? ‘재건(再建)’이다. ‘재건’은 어떤 의미인가. ‘허물어진 건물이나 조직 따위를 다시 일으켜 세움’을 말한다. 요즘 프로야구계의 화두가 바로 ‘리빌딩’이다. LG와 한화가 대표적이다. LG는 전반기에 반짝하다가 후반기부터 7위를 지켰다. 한화는 시즌 초반부터 꼴찌를 도맡았다. 남은 경기에서 모두 이긴다고 해도 두 팀의 순위에는 변함이 없다. 문제는 두 팀의 지금 전력으로는 다음 시즌 전망도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리빌딩 없이 미래도 없다’라고 주장하는 LG와 한화가 어떻게 팀의 재건을 위해 고민하는지 살펴보았다.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가 있다.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Born in the USA(미국에서 태어나)>이다. 당시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진영은 이 노래를 로고송으로 썼다. 제목만 보면 공화당다웠다. 미국인의 애국심을 자극할 만했다. 그러나 반대였다. <Born in the USA>는 대표적인 반전노래였다. 친(親)민주당적인 가사였다.

2006년 10월 LG는 김재박 현대 감독을 영입했다. 3년간 계약금 5억원, 연봉 3억5천만원 등 총액 15억5천만원에 달하는 매머드 계약이었다. 사실 당시 LG에게 김감독은 로고송이었다. 구호였다. 메시아였다. 김감독만 영입하면 2002년 이후 밑바닥을 기던 팀이 내일 당장 우승팀이 될 것만 같았다. 김감독이 더그아웃에만 앉아 있어도 구단 이미지가 개선될 줄 알았다. 그러나 꿈은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하지만, 현실은 그만큼 차가운 법이다. LG는 3년 동안 3백억원에 가까운 돈을 쏟아붓고도 하위권을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다. FA(자유계약선수)를 싹쓸이하고도, 하다못해 잠실구장 외야 펜스를 앞당기고도 성적은 그대로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LG의 리빌딩은 실패한 것일까? 김감독 영입 당시 LG는 ‘두 마리 토끼인 팀 성적과 이미지 개선을 동시에 잡을 만큼 팀 전력이 좋은가’를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팀을 재편하는 일에 철저히 무관심했다. 당시 구단 수뇌부에게 리빌딩의 정의는 ‘재건’이 아니라 ‘감독 교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김감독은 로고송이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 반대였다. 현대 시절 김감독에게는 김용휘 사장이라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다. 그라운드에서 경기에 집중하면 나머지는 김사장이 알아서 했다. 현대 시절 김감독은 “선수들과 한 번도 밥을 같이 먹어본 적이 없다”라고 실토했다.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선수들과의 스킨십은 김사장이 담당했다. 하지만 LG는 달랐다. 김사장 같은 이가 없었다. 김사장의 역할까지 감독이 담당해야 했다. “당신이 알아서 다 하시오”라는 말이 김감독에게는 배려가 아니라 괴로움이었다. 그러니까 실패는 예견된 셈이었다. 원뜻과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Born in the USA>는 로고송으로서 성공했고, 결국 ‘김재박 감독’은 실패했다. 취재 결과 현재 LG 운영팀에서는 감독 후보군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야구계는 LG 김영직 2군 감독과 두산 박종훈 2군 감독, 삼성 한대화 수석코치, 고려대 양승호 감독 등을 유력한 후보로 꼽는다.

문제는 LG의 리빌딩이 이번에도 감독 교체로만 끝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정작 점검해야 할 스카우트와 2군 시스템 점검, 노장 선수 정리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이 보인다. 구단 수뇌부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원래 리빌딩은 구단이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비전에 맞게 팀을 재정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LG는 비전을 제시해야 할 구단 수뇌부가 “야구를 모른다”라고 손사래를 치곤 한다. 야구계에 이런 말이 있다. “꼴찌인 한화는 조용한데 오히려 7위인 LG는 바람 잘 날이 없다”라고. 구단의 가치를 ‘홍보’하고 리스크 관리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프런트가 과연 그 시간 어디에서 뭘 했는지 스스로 돌아보지 않는 한 LG의 리빌딩은 공염불이 될 것이다.

1986년 창단한 빙그레(한화의 전신)의 그해 성적은 꼴찌였다.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지난해까지 한화는 무려 22년 동안 꼴찌와 무관했다. 구단 관계자들이 “1986년 이후 꼴찌를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팀은 한화와 삼성이 유이하다”라며 자랑스러워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말이 씨가 되었다. 9월17일 현재 한화는 43승3무81패로 승률 3할3푼9리를 기록 중이다. 부동의 꼴찌이다. 7위 LG가 전패해도 마찬가지다. 이로써 한화는 올 시즌 23년 만에 꼴찌를 맛보게 되었다. 그것도 2003년 롯데(승률 3할) 이후 가장 낮은 승률로 말이다.

꼴찌 추락 책임은 구단 수뇌부도 져야…장기적인 비전 제시하고 팀 정비를

▲ 7월2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김인식 한화 이글스 감독이 취재진에게 연패 탈출의 의지를 보이고 있다. ⓒ뉴시스

올 시즌으로 계약 기간이 종료되는 한화 김인식 감독은 팀의 꼴찌로 재계약을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을 준우승으로 이끌며 ‘국민 영웅’으로 칭송받던 그였다. 그러나 반년 만에 한화를 구렁텅이로 빠뜨린 주역이 되었다.

한화도 LG처럼 새 감독을 찾는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리빌딩의 시작을 감독 교체부터 하겠다는 의지는 한화도 다르지 않은 듯이 보인다. 그러나 LG에 비해 조용하다. 아니, 질적으로 다르다. 한화는 일찌감치 리빌딩을 시작했다. 시즌 도중 송진우·정민철 두 노장 투수에게 은퇴를 권했다. 문동환·최상덕은 아예 방출했다. 대신 젊은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계획이다. 

구단이 리빌딩을 이끄는 점도 이렇게 정석대로이다. 송진우·정민철 두 프랜차이즈 스타의 은퇴에는 구단의 힘이 작용했다. 김감독조차도 “(구단이) 왜 하필 시즌 중에 은퇴를 시키는지 몰라” 하며 혀끝을 찼을 정도이다. 그러나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리빌딩의 희생양으로 김감독만 지목되는 것이 온당하느냐는 것이다. 김감독이 ‘재활공장장’이라는 별명을 단 이유가 있다. 김감독이 노장 선수를 선호하기도 했지만, 구단의 지원이 원체 빈약했기 때문이다. 김감독도 “구단이 전력 보강에 인색했기에 다른 팀에서 퇴물 선수를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라고 항변한다.

한화는 SK와 함께 2군 전용구장이 없기로 유명하다. 대전 계룡대와 인근 고교 운동장을 떠돈다. 그러나 SK와 비교하는 것은 무리이다. 선수단 지원과 연봉에서 큰 차이가 난다. 한화의 중심 타자 이범호와 김태균은 올 시즌을 끝으로 FA가 된다. 그러나 두 선수가 팀에 잔류할 확률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이슬람으로 개종할 확률보다 낮다. 한화 선수들은 ‘짠돌이’ 구단에 불만이 많다. 2007년 타율 2할9푼, 21홈런, 85타점을 기록한 김태균은 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팀내 고과 1위에 오르고도 연봉이 삭감된 경험이 있다.

다수의 야구 전문가는 한화 꼴찌의 책임을 구단 수뇌부도 져야 한다고 말한다. 한화의 리빌딩이 성공하려면 모그룹의 지원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현대·삼성·SK는 모두 그해 구단 운영비가 최상위권이었다. 희생양은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처형되었기 때문에 죄가 있는 것이다. 김감독이 ‘딱’ 그런 모양새이다. 유능한 감독을 영입하기 전에 모그룹을 잘 설득해 지원을 받아낼 수 있는 구단 수뇌부부터 리빌딩하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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