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에서 댓글까지 ‘핫이슈’ ‘디시’ 뜨면 세상이 출렁인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9.2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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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상에서 여론 장악한 ‘디시인사이드’, 열 돌 맞은 최근에도 박재범 사태 등 진원지 되며 건재 과시

‘막장’이나 ‘듣보잡’이라는 말의 뜻을 알고 있다면? 메신저로 대화를 하면서 ‘~하삼’이라는 말을 들어보았거나 쓰고 있다면? 혹시 누군가 자신에게 요즘 유행하는 ‘잉여(할 일 없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뜻의 은어)’라고 했을 때 기분이 나쁘다면? 당신은 이미 ‘디시인사이드(www.dcinside.com, 이하 디시)’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디시는 인터넷상에서 ‘언어’를 지배하고 있다. 

갖가지 사건들도 디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디시는 정보 유통의 채널로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지난 9월5일 인터넷을 들썩이게 만든 사건이 일어났다. 인기 아이돌 그룹 2PM의 박재범씨는 2005년 자신의 마이스페이스에 썼던, 한국을 비하하는 글이 알려지면서 결국 그룹을 탈퇴하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기성세대가 혀를 차게 만드는 사건도 있었다. 박재범 사태로 시끌시끌하던 9월9일 뉴스를 장식한 사람은 한 예술고등학교 고등학생이었다. 여선생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선생님, 사귀자”라고 말하는 것을 비롯해 성희롱 소지가 다분한 동영상을 버젓이 자기 미니홈피에 올렸는데 이것이 세상에 알려졌다.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개의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사건을 세상에 알리고 확산시킨 채널로 사용된 곳이 ‘디시’에서 최대 상주인구를 자랑하는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라는 점이다.

디시는 1999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올해 10월이면 10주년을 맞는다. 첫 출발점은 디지털카메라의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였지만, 지금은 거대한 커뮤니티로 변신했다. 하루 페이지뷰는 3천만~4천만건을 기록하고 있다. 갤러리(카테고리별로 나누어진 게시판) 숫자만 1천100개에 이른다. 

디시가 출범 초기 주목되었던 것은 인터넷 놀이로 약간은 엽기스러운 코드를 유행시키면서부터이다.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법한 ‘아(모호하고 기분이 언짢을 때 사용하는 표현)’과 싱크로율(동화율, 얼마나 잘 합성했는지를 뜻함)이 높은 패러디 합성사진들이 인터넷을 장악했고, 그것의 출처는 대부분 디시였다. 일부에서는 ‘잠깐 유행을 타고 사라질 사이트’라며 디시 현상을 축소했다. 하지만 디시는 여전히 건재하다. 오히려 전보다 강해졌다. 10년을 굳건히 지키며 버틴 데는 이유가 있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디시의 매력을 “문화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B급 문화가 공유화되었다. 주류 매체가 다루지 않는 문화적 현상이나 대중적 심리가 디시를 통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기존 매체는 눈치를 많이 보겠지만 디시는 해당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디시인사이드의 시스템은 디시 문화를 뒷받침한다. 운영자는 단지 자리만 깔아준다. 갤러리를 만들어달라면 만들어줄 뿐이다. 갤러리의 생성 기준은 얼마나 활성화될 것인가 여부이다. 게시물과 댓글을 토해내겠다는 확신이 든다면 갤러리를 만들어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대신 나머지 모든 몫은 디시인들이 맡는다. 그동안 디시의 규칙이나 분위기는 이들이 만들어왔고 때마다 변했다. 디시는 초창기에 ‘~하오’체를 유행시켰지만 지금은 반말 일색이다. 욕설도 과거보다 늘었다. 디시에서 예의를 따지고 존대한다면 ‘뉴비(처음 온 사람)’ 소리를 듣기에 딱 좋다. 남녀노소 모두는 ‘(형)’으로 통한다. 그 때문에 디시 밖에 있는 사람들은 디시를 우습게 본다. 우습다 못해 부정적으로 본다. 반말, 욕설, 댓글이 난무하고 마치 정글처럼 서로를 까고 까대는 곳이라 ‘쓰레기통 같다’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반말, 욕설, 댓글은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까기’ 위한 수단이고 문화이다. 디시에서는 ‘까임’이 대세이다. 한마디로 “누구누구는 까야 제맛”으로 정리된다. 깔 대상은 많다. 가장 활발하게 까임이 일어나는 곳은 매일 경기가 벌어지는 국내 야구갤러리이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주역이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 멤버라고 봐주지 않는다. 심하게 표현하면 다 필요 없다. 디시 야구갤러리의 명제는 단 하나이다. “이놈들은 까야 잘한다.” 심지어 이승엽은 일본 진출 첫해 시범경기에서 20타수 1안타로 타율 5푼을 기록하자 지금까지도 ‘오푼이’로 까이는 중이다.

소설가 이외수, 인신공격성 댓글 난무하자 디시 갤러리 문 닫아

디시인끼리도 서로 깐다. 디시는 각종 댓글이 난무하는 정글이다. 때로는 자기들끼리 댓글로 비방하고 폄하한다. 그것은 디시라는 영역의 고유 특징이다. 김헌식씨는 “디시인들이 움직이는 핵심 기제는 놀이성이다. 악플이나 비방도 놀이성에서 시작한다. 그게 빠진다면 디시를 추동하는 힘이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쪽 영역에서만 허용되는 암묵적인 코드일 뿐인데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안 되지 않겠나”라고 말한다. 깔 대상을 외부에서 찾다 보면 가끔 대어를 건지기도 한다. 디시에서 사이버수사대를 능가하는 각종 팩트(사실)가 발견되는 것은 ‘까임’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디시의 대표적인 패러디물 역시 까임에 기반을 둔 창작물이다.

반말, 욕설, 댓글, 까임이 난무하는 디시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종종 사회에 반향을 일으킨다. 디시는 자유분방하다. 이런 쓰레기통에다 마구 글을 싸지르는 것은 이들에게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충격을 주기도 하고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외수 갤러리는 지난 6월29일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 소설가 이외수씨는 자신의 갤러리에 개념 차고 센스 있는 댓글을 달아 디시에서 주목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거듭 자신과 가족을 상대로 인신공격성 댓글이 난무하자 지쳤다. 이외수씨는 “나중에 괜찮아지면 다시 오픈하고 지금은 닫아두자”라고 말했다. 디시가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탈도 많고 말도 많은 이곳에는 ‘이외수갤’ 사건처럼 뉴스거리가 수시로 생긴다. 디시에서는 익명으로 글쓰기가 가능하다. 익명은 시시콜콜한 부작용을 낳는다. 최근에는 한 걸그룹 멤버의 합성 누드 사진이 떠돌았고 그것이 뉴스를 탔다. 사건은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에서 일어났다. 이 사진을 보기 위해 디시를 방문한 외부인들은 1천100개에 달하는 갤러리 중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이들이 주로 찾은 곳은 어디였을까? 디시 관계자는 “누드 갤러리 트래픽 수만 크게 늘었다”라고 귀띔했다.

뉴스 기자들에게는 ‘곡식 창고’…상주 기자 있는 갤러리도 있어 

▲ 인터넷상에서 여론 장악한 ‘디시인사이드’, 열 돌 맞은 최근에도 박재범 사태 등 진원지 되며 건재 과시 ⓒ시사저널 이종현

이처럼 디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인터넷에서 종종 공공의 관심사가 된다. 고려대 김성태 교수의 논문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의제 설정 모델의 적용’에 따르면 온라인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경로를 따라 의제로 설정된다. 우선 익명의 네티즌에 의한 제보가 블로그, 개인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온라인 토론방 등 주요 파급 채널을 통해 중요한 의제로 확산되어가는 인터넷 의제 파급 단계가 있다. 온라인상에서 확산되는 의제를 인터넷 뉴스나 포털사이트가 보도하면서 많은 온라인 공중까지 파급되는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온라인 주요 파급 채널에 의해 확산된 의제를 기존 오프라인 매체들이 보도하면서 전체 공중 의제로 확산된다. 이를 인터넷을 통한 역의제 설정 단계라고 정의한다. 

디시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여론화되는 과정도 이런 단계를 따른다. 뉴스거리에 굶주려 있는 기자들에게 디시는 곡식 창고이다. 디시의 갤러리에 ‘상주 기자’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연예 관련 매체들이 증가하면서 상주 기자가 늘었다. 한 온라인 연예 전문 매체 기자는 “하루에 8~10시간 디시의 코갤(코미디 갤러리)이나 연예인 갤러리, 드라마 갤러리 등을 살핀다”라고 설명했다. 디시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은 온라인 매체들이 기사화하면서 포털 등을 통해 노출되고 대중에게 주목된다.

이 중 몇몇은 오프라인 매체에 실리면서 온·오프라인을 포함하는 전체 공중에게 의제로 설정된다. 디시인들이 여기에서 느끼는 짜릿함은 크다. 김유식 대표는 “자신의 이야기가 기사화되면 그것을 파급시키는 데도 더욱 열정적으로 바뀐다. 아침에 일어났던 일을 점심시간이 지나기 전에 모든 매체에서 다루어주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과거 디시에서 만들어지는 의제 중에는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것이 적지 않았다. 이곳에서도 집단 지성이 ‘반짝’ 하고 발현된다. 지난 2005년 황우석 사건의 진실을 밝힌 명예는 대부분 <PD수첩>이 가져갔지만 논문 조작에 처음 의구심을 보이며 열띤 토론을 벌였던 곳은 디시 과학 갤러리였다. 시계 갤러리는 지난 2006년 8월 시계 브랜드 ‘지오모나코’와 한 달 반 동안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국내 주요 일간지에 스위스산 1백80년 전통의 명품 브랜드라고 광고를 냈던 지오모나코의 거짓을 몇몇 시계 갤러리 이용자들이 밝혀냈다. 이들은 미국·스위스 같은 해외 자료까지 끌어다와 반박했고, 결국 수입업자는 형사 처벌되었다.

최근에는 사회적 이슈의 자리를 연예계 가십이 대신하고 있다. 과거보다 연예인이나 방송 관련 갤러리에 상주하는 디시인들이 늘어났다. 박유진 디시인사이드 팀장은 “갤러리의 흐름이 시기마다 달라지는 것 같다. 이전에는 정치·사회 갤러리나 합성패러디 갤러리 위주로 돌아갔다. 스타크래프트가 유행할 때는 스타크래프트 갤러리로 갔다. 요즘은 연예·드라마로 바뀐 것 같다”라고 말했다. 디시인사이드의 김유식 대표도 “정치·사회 분야보다 연예 쪽 이슈들이 많다 보니 이용자들의 관심이 자연스레 이동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연예 전문 매체를 살펴보면 디시발 가십을 수시로 볼 수 있다.

열 돌을 맞는 디시인사이드. 그동안 디시인을 모았고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 ‘짤방’이라는 이미지를 올리고, 댓글로 평가하는 방식의 소통은 익명성과 결합해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세종대 정보통신공학과 사업단 강장묵 교수는 “과거 PC통신 시대에는 텍스트가 주를 이루었다면 디시인사이드는 이미지를 공유하는 참여의 플랫폼을 만들었다”라고 평가했다. 반면, 고민거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헌식씨는 “디시는 사회 상황이 이렇다는 것을 보여주는 원천 소스를 제공한다. 다만, 과격한 원천 소스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디시의 방향은 운영자가 아니라 디시인의 키보드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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