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전입은 범죄 똑같이 처벌하라
  • 하태훈 | 고려대 법과대학 교수 ()
  • 승인 2009.09.2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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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만인에 평등, 유권무죄로 사면해주면 안 된다

만인(萬人)은 법 앞에 평등하다. 법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추상(秋霜) 같아야 한다. 그래야 정의롭다. 사법부의 상징은 천칭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이다. 누구에게나 천칭처럼 법이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정의롭다는 의미이다. 균형을 잡고 있는 천칭처럼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이 법 격언이 흔들리고 있다. 만인이란 온 백성을 말할진대, 웬일인지 권력층과 부유층 만명(萬名)에게만 평등하다. 서민이나 힘 없는 자는 법 앞에 평등한 만인에 속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똑같은 위장전입도 전자에 속하는 사람은 사과 한마디로 끝나지만 후자에 속하는 사람은 기소되어 처벌된다. 그야말로 재수 없는 사람이 1년에 7백~8백명에 달한다고 한다. 유전무죄(有錢無罪)에 더하여 유권무죄(有權無罪)이다. 그들에게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조언밖에 해줄 수 없으니 답답하다.

법치와 기초 법질서 확립을 강조한 이명박 정부 들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는 주민등록법 위반 행위가 ‘미안합니다’라는 한마디로 면죄부를 받는 일이 잦아졌다. 위장전입을 하지 않은 공직 후보자가 없을 정도였다. 부동산 투기 목적의 위장전입은 낙마의 요인이었다. 같은 위장전입도 자식 교육을 들먹이면 동정하고 부동산 투기라면 돌을 던지는 격이다. 공정하고 공평해야 할 법이 맘대로 적용된 결과이다. 전 국민이 위반 사실을 알게 되었고 만인에게 고개를 숙였으므로 처벌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면 할 말 없다. 그러나 진정한 뉘우침이 담긴 자백도 아니다. 남이 지적하기 전에 스스로 밝혀 위반 사실을 고백했다면 다를 수 있겠다. 허나 감추고 싶었지만 적발되자 마지못해 고개 숙인 것인데도 별 문제 없이 지나간다. 이런 후보자를 임명한 대통령이 그렇게도 강조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대통령 스스로 무너뜨리는 자가당착이며 이율배반이다.

청와대와 대통령도 책임 있어

▲ 주호영 특임장관 후보자가 9월15일 오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가진 인사 청문회에서 위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대통령이 위장전입이라는 불법을 했어도 국민투표로 사면되었으니 공직자 덕목이 하향 평준화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좌파 10년 지우기’ ‘잃어버린 10년’이라더니 이념도 아닌 범법 사실조차도 지워버리고 과거조차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한나라당은 참여정부 때 위장전입을 이유로 많은 공직 후보자들을 낙마시켰지만 이제 와서는 위장전입은 대수롭지 않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당시의 관행이라며 두둔하고 능력과 자질만 있다면 그 정도 범법 행위쯤이야 눈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민등록법 위반이 얼마나 중대한 범죄인지 아느냐며 호통 치던 준엄함은 사라지고 뻔뻔하고 낯 뜨거운 이중 잣대뿐이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스스로 법의 권위를 무시한다면 국민으로부터 입법 권력도 무시당한다.  

이번 인사 청문회를 통해 후보자 개인뿐만 아니라 온 국가 기관이 만신창이가 되었다. 사법부도 그렇고 검찰과 법무부도 그랬다. 흠 있는 자들이 법을 집행하는 기관의 수장이 되고, 정의의 상징이어야 할 대법관도 실정법 위반의 멍에를 안고 임명되었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지난 10년간 위장전입의 불법성과 비도덕성을 꾸짖으며 수많은 공직 후보를 낙마시킨 한나라당의 태도가 돌변했음을 만천하에 알렸기 때문에 국회도 불신덩어리가 되었다. 공직 후보자에 대한 기초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아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청와대와 대통령도 책임이 있다. 결점 있는 대법관을 제청한 대법원장도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능력과 자질 검증에 집중해야 할 국회 인사 청문회가 위장전입 문제로 제 기능도 하지 못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공정 보도가 생명인 언론 기관도 공직 후보자들의 실정법 위반에 무관심으로 대응했다.
어떤 기관 하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흠 있는 후보자들 모두 고위 공직의 영예를 안게 되었다. ‘성공한 쿠데타’ 논리처럼 ‘성공한 자의 위장전입’ 논리가 세워진 것이다.

▲ 국회 법사위원회는 9월17일 오전 국회에서 이귀남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열어 자질을 검증했다.

위장전입은 부동산 투기 목적이건 자식 사랑이 지나쳐 범죄 행위를 감행했건 간에 모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이다. 위장전입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으면 그로 인해 분양받지 못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좋은 학교 보내려고 위장전입하면 다른 학생의 교육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다. 

미국도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한 위장전입은 중하게 처벌하는 주가 있다고 한다. 영국에서도 위장전입을 적발하기 위한 CCTV 설치가 논란거리인 것을 보면 위장전입은 세계적 현상이고 불법 행위임에 분명하다. 생각 같아서는 정부 법률안 제출자인 법무부장관에게 위장전입이 더 이상 처벌 필요성이 없어졌다는 이유를 들어 폐지 개정안을 제출하거나, 대법원도 과거의 처벌이 잘못되었다고 선언하고 금지 대상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위장전입의 불법성도 존재하고 처벌 필요성도 살아 있으니 그럴 수는 없다. 처벌의 수위를 완화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다. 

앞으로가 걱정이다. 위장전입을 기소하고 처벌해야 할 검찰과 사법부가 상처를 안고 있으니 어느 누가 수사와 재판에 쉽게 승복하려 하겠는가. 

법이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적용될 때 국민은 법이 살아 있음을 인식하게 되고, 법 위반으로 나아가지 않게 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는 송곳처럼 추상같지만 누구에게는 굽어 휘어져 비켜간다면, 수범자인 국민은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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