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전입과 민주주의의 성숙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09.2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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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문회 정국입니다. 대법관 후보자, 장관 후보자들이 줄줄이 청문회에 나왔습니다. 이번 청문회의 최대 화두는 ‘위장전입’이었습니다. 검찰총장, 대법관에 이어 법무장관 후보자도 위장전입을 했다고 시인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우리 사회의 기본 규칙인 법질서를 담당하는 책임자들이 법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한 신문에서 위장전입을 한 시민이 법정에서 이들을 향해 “당신들은?”이라고 묻는 뉘앙스의 만평을 실은 것을 보았습니다. 실제 민심 밑바닥에도 이런 정서가 흐릅니다.

사실 제가 아는 한 위장전입을 하는 경우가 드물지는 않습니다. 최근 만난 한 지인은 “여러 차례 위장전입을 했는데 이번에 보니 앞으로 공직에 가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은 범법 행위를 했다는 생각보다는 편의성에 따라 서류상으로 주소지만 옮기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국무위원들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도입된 지 4년이 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던 2005년 6월에 관련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4년이면 어느 정도 기준이 확립되었을 법도 한데 아직은 미흡해 보입니다. 같은 사안에 대해 언제는 용인해주고 또 다른 때는 낙마하는 사유가 됩니다. 이러니 ‘고무줄 청문회’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국회에서 ‘적격’ ‘부적격’ 보고서를 채택하더라도 법적인 구속력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차분하게 과거의 업무 수행 능력이나 정책 능력을 챙겨보기보다는 정쟁에 흐르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저는 청문회를 보며 우리 민주주의가 성숙하는 데 청문회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만 해도 위장전입이 논란거리에 크게 오르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고 가려는 젊은이들은 최소한 ‘위장전입을 해서는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위장전입만이 아니고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해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당사자들의 진퇴 여부를 떠나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 주는 문화적인 변화는 큽니다. 바닥에서부터 이런 변화가 일어나면 우리 사회는 좀 더 투명해집니다.

이번 청문회에서도 후보자들이 “부인이 한 일이어서 나는 몰랐다”라는 식으로 변명하기보다는 솔직하게 털어놓고 진솔하게 사과하면서 정면으로 돌파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당사자는 낙마했을지 몰라도 위장전입 문제와 관련한 기준을 만드는 데 좋은 기회가 되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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