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아치가 만든 이슬람 건축의 진수
  • 이종호 |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전문위원 ()
  • 승인 2009.09.29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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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 천국과 ‘철옹성’ 요새 역할을 한 환상의 성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 스페인의 그라나다는 로마 시대에 이리베리스라 불리며 번성하던 도시이다. 1245년 무하마드 이븐 나스르(Muhammad ibn Nasr)의 나스르 왕조부터 번창하기 시작했다. 나스르는 한때 베르베르인들이 축성한 알카사바(Alcazaba)라는 폐허가 된 군사 요새를 코란에서 묘사된 지상 천국과 어느 적군도 점령할 수 없는 요새로 바꾸어놓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적군들의 이동 상황을 재빠르게 파악할 수 있도록 아치로 된 20개 이상의 첨탑을 구상했다. 아치로 된 사각형의 방이 케이크처럼 층층이 쌓인 구조로 아치를 통해 빛이 통과하여 요새 역할도 하는 동시에 환상적인 공간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 요새를 건설하는 데 필요한 재료를 어떻게 공급하느냐이다. 단단한 석재가 가장 적합하지만 그라나다로 석재를 옮기기 위해서는 엄청난 경비와 노동력이 필요했다. 건축가들은 알람브라라는 가파른 언덕 단면에 있는 역암에 주목했다. 역암에 물을 부으면 진뜩진뜩해지는데 이를 뭉치면 원하는 형태의 건축재, 즉 붉은색 시멘트를 만들 수 있다. 석재로 건설하지 않아도 이에 비견하는 튼튼한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알람브라라는 이름은 바로 이들 시멘트가 붉은색이므로 ‘붉은색 도시(마디나트 알람브라)’라는 아랍어에서 유래되었다.

알람브라 궁전은 단순한 요새가 아니다. 왕족, 귀족, 시종은 물론 경비병도 살아야 하므로 거의 5천여 명의 주거 공간이 확보되어야 했다. 당연히 5천여 명이 사용할 수 있는 식수가 관건이다. 건축가들은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하천의 물줄기를 바꾸어 운하와 거대한 저수지, 분수, 정원에 물을 댈 수 있는 관개수를 개발했다.

알람브라의 평면 설계는 왕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한 용도로 처음부터 면밀하게 설계되었다. ‘18제곱 라쉬샤쉬드 코도’로 평면을 구성했는데 우선 방을 가로와 대각선으로 나누고 벽을 잇는 90˚의 아치 네 개를 그린다. 각 아치의 끝을 직선으로 연결해 8각형을 만들고 원래의 4각형과 대각선 방향의 거대한 사각형을 만들었다. 그것이 입구 중앙 창문의 위치가 되었으며, 각 벽의 중앙을 기준으로 2등변 삼각형을 그려서 완벽히 비례하는 창문의 넓이를 완성했다. 중앙에는 왕이 앉아 호화로운 공간을 주도한다. 이런 구조는 알람브라 궁전을 방문한 각국의 사절들을 주눅 들게 만들고 어떠한 공격에도 점령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에서 물 끌어와 분수·정원에 써

▲ 사자의 중정에는 8마리의 사자가 받치고 있는 분수대가 있다.

알람브라 궁전을 까사 레알(Casa Real)이라고 하는데, 기본 평면은 남부 유럽과 동양적인 취향에 따라 두 개의 커다란 내정을 두고 주변에 많은 방을 배치했다. 입구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메사르 궁전을 통해 오른쪽으로 사자의 중정이 있으며 왼쪽으로 아라아네스 중정이 나온다. 아라아네스 중정은 그라나다의 전형적인 정원으로 물·공기·조각들이 중정을 둘러싼 건물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아라아네스 중정에 면한 옛 성채인 꼬마레스 탑 내부에 살라 데 로스 엠바야도레스(대사의 홀)가 있다. 대사의 홀은 1334년부터 1354년까지 건설되었는데, 건물 내부를 장식하는 장식 띠들 사이에 있는 하얀 대리석에 알라의 이름과 ‘신 외에 정복자는 없다’라는 문구가 반복해 새겨져 있다. 특히 삼나무로 된 천장은 모가라베스라 불리는 종유석 장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이슬람의 우주 철학에 나오는 7개의 천국을 묘사했다고 한다. 이들 방을 설계할 때 건축가들은 기하학을 이용해 갖가지 효과를 나타내도록 계획했다. 건물의 외관을 토대의 폭에 맞춰 다음 층의 경계까지 사각형으로 만들고 그 사각형의 대각선을 수직으로 돌려서 다음 층의 경계로 만들어 층 사이의 비율을 정확하게 했다. 이는 각 층의 높이를 그리스 규칙에 의해 설정되게 한 것으로 그리스 규칙은 건축물을 가장 아름답게 보이도록 만든다고 알려진다.

알람브라 궁전을 본 사람들은 대체 아랍 건축가·기술자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이와 같이 환상적인 건축물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궁금해 한다.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알람브라 궁전의 건축가들은 단기간에 시공될 수 있도록 가벼운 재료로 주요 부분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특히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찬탄을 자아내는 벽, 천장, 바닥의 장식은 주로 삼나무, 타일과 석고를 사용했다. 돌로 된 조각은 매우 드물게 사용되었고 대리석도 일부 바닥과 기둥, 대접 받침에만 사용했다. 천상의 세계에 온 느낌을 갖는다는 살라 데 로스 엠바야도레스의 천장도 기본은 목재이며 이들과 조화되도록 실내와 외관의 넓은 공간을 채운 것도 여러 가지 색체의 타일이다.

알람브라 궁전 전체가 기하학적 구성으로 빛의 반사에 의한 강렬한 색조감을 느끼게 하고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지만 시공 자체는 그다지 어려운 것은 아니다. 물론 알람브라 궁전과 같은 거대한 건물을 건축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건축 기술자들이 만든 완벽한 설계도와 시공 능력이 필요하므로 아무 곳에서나 건설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참고문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생각의 나무, 2006
『스페인 포르투갈』, 중앙일보사, 1989
『우리 세계의 70가지 경이로운 건축물』, 닐 파킨, 오늘의책, 2004
「알람브라 옛땅에 무슬림이 돌아온다」, 현경, 한겨레, 2007.3.8
「이베리아반도 최고의 이슬람 문화 중심지」, 매일경제, 2007.6.3
「뜨거운 예술의 땅 안달루시아」, 조윤형, 윙스 오브 유럽, 2008-2009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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