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자에게 축복 있나니”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9.09.29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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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만난 사람 | 시인 최영미

ⓒ이정우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고 세상에 대고 외쳤던 때가 1994년이었다. 15년이 지나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서른 살이 쓴 것 같은 여행 기록을 엮어냈다.

새 산문집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문학동네 펴냄)는 ‘시인 최영미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 전작들과 달리 ‘인간 최영미가 제대로 살기 위해’ 헤매 다닌 진솔한 발자취를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지난 여행을 회고하며 ‘길에서 만나 길에서 헤어진’, ‘인생에서 단지 몇 시간을 공유’했을 뿐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 아픈 과거를 보여주고, “다 지난 일이다. 나는 너를 이해한다”라는 위로를 듣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일상에 휘둘리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 그저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라 ‘살아가는’ 인간이 되려 낯선 풍경 속을 정처 없이 헤맸다.

파리에서 베네치아로, 암스테르담에서 쾰른으로, 리옹에서 교토로, 버클리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시카고에서 다시 대한민국으로 돌아오는 그녀의 풍성하고 다채로운 여행 기록이 부럽기도 하다. 여행이 그동안 살아온 날들을 이해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희망하게도 해준다는 것에 공감하는데, 그보다 그녀가 이 책을 낸 다음의 선언 같은 말에서 ‘서른의 최영미’를 다시 만나는 듯했다.

“여행은 짧은 시간에 우리를 성숙시키고, 또한 파괴시키기도 한다. 지루하더라도 내가 하루하루 일상을 견디듯이, 힘들더라도 나는 모험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지금, 살아 있다는 것처럼 치사하고 고귀하며 흥미로운 우연을 나는 모르므로.”

▲ ⓒ시사저널 박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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