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우산’ 잃고 성난 동유럽
  • 조홍래 | 편집위원 ()
  • 승인 2009.09.2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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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MD 계획 철회하자 “유럽 안보 포기했다” 반발…오바마, 효율적인 대안 마련 천명

▲ 지난 4월5일 체코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바츨라프 클라우스 체코 대통령 (왼쪽)의 안내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미사일방어(MD) 계획은 문자 그대로 방어용이지 공격용은 아니다. 이 계획은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이 목표물에 도달하기 전에 이를 요격하기 위한 것이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특히 이란의 미사일로부터 유럽을 방어하기 위해 폴란드와 체코에 MD 기지를 건설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오바마 행정부는 9월18일 돌연 이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MD 계획은 원래의 취지대로라면 유럽 안보를 위해 꼭 필요한 일로서 말썽이 될 것이 없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러시아는 이를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러시아 포위 음모의 하나로 간주하고 강력하게 철회를 요구했다. 만약 강행하면 이에 대응하는 MD 기지를 건설하겠다고 맞섰다. 이로 인해 미국과 러시아 간에는 긴장이 고조되었다. 화해 외교를 강조한 오바마가 이를 취소하자 러시아는 즉각 환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럽이 발칵 뒤집혔다. 특히 자국 안보를 미국의 MD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폴란드와 체코를 포함한 동구의 신 나토 회원국들이 발끈했다. 미국이 러시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유럽 안보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나토가 제대로 했다면 MD 계획을 둘러싼 말썽이 이처럼 복잡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시가 MD 기지를 폴란드와 체코에 세우자고 제의했을 때 두 나라가 즉각 동의한 것도 이란 미사일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나토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다. 나토 조약 제5조는 동구 국가들에게 위기가 생기면 군단 규모의 병력을 즉각 파견하기로 되어 있다. 하지만 비상시에 파견할 군단은 편성되지도 않았다. 심지어 동구 국가들에 대한 방어 계획도 마련되지 않았다. 나토는 2008년 러시아와 그루지아의 전쟁을 강 건너 불 보듯 했다. 그루지아가 러시아의 침공 기미를 알아차리고 나토의 지원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 전쟁이 터지자 나토 사무총장이 한 일은 휴가를 하루 중단하고 돌아와 짧은 성명만 하나 발표한 것이 전부였다. 결국, 동구 국가들은 나토를 불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폴란드와 체코, 두 나라는 자국 내에 미군 시설을 설치함으로써 안보를 보장받으려 했다. 이런 역사를 감안하면 MD 철회에 대해 특히 두 나라가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은 MD 파장을 해결하기 위해 뒷마당의 미사일 기지가 아닌 나토의 정당한 정책을 통해 중부 및 동부 유럽국들에 대한 안보 공약을 보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토 정책을 손질하는 것이 필요하다. 1990년대 코소보 전쟁 때와 같은 적극적인 역할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 일을 한다고 해서 러시아와 충돌할 일은 없다. 정치적 의지와 약간의 자원만 투자하면 된다. 그렇게만 되면 오바마의 MD 철회 결정은 오히려 미국과 나토 그리고 나토와 동구의 신뢰를 회복하는 전화위복이 될 듯하다. 이런 면에서 오바마가 MD 철회 대신 더 효율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MD 계획, 추진해도 말썽이고 철회해도 말썽인 이유

▲ 지난 4월4일 터키의 수도 이스탄불에서 나토에 반대하는 한 여성 시위자가 깃발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추진해도 말썽이고 철회해도 말썽인 MD 계획을 보다 못한 미국 헤리티지 재단은 최근 포럼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공화당의 짐 드민트 상원의원은 “세상에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일이 어디 있느냐?”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MD를 둘러싼 논란은 복잡하고 모순적이다. 말썽의 핵심에는 이란이 있다. 현재 강경파가 지배하는 이란은 중동에서 가장 많은 탄도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핵무기를 개발 중이다. 에너지를 얻기 위한 평화적인 목적에서 핵을 개발한다고 우기지만 서방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언젠가는 이스라엘과 유럽을 공격하기 위한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오바마가 이란과의 직접 대화를 제의하자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대화는 좋지만 핵을 포기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고 천명했다.

미국 의회는 이란의 석유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초당적 제재안을 준비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이 안이 실행되면 이란에는 ‘치명적 제재’(crippling sanctions)가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미국 조야의 분위기는 강경했다. 그러나 오바마는 이런 제재가 효과가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모습이다.

유럽과 그곳에 주둔한 미군을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미국은 현재 알래스카 주와 캘리포니아 주 두 곳에 지상 기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 기지들은 그러나 너무 먼 거리에 있어 제3의 기지가 필요하다. 그 제3의 기지로 선정된 곳이 폴란드와 체코이다. 이 두 나라에 MD 시설을 구축하면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장거리 미사일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부시의 계산이었다. 군사 전문가들은 이란이 대략 2015년부터 핵탄두를 실은 미사일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한다.  MD 계획은 바로 이란 미사일을 겨냥한 것이므로 러시아에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러시아는 펄쩍 뛰면서 이 주장을 일축한다.

크렘린의 반발은 안보상 이유보다는 지역적 패권 야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나 체코 같은 옛 소련 동맹들이 미국의 보호막에 들어가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여기에 이념으로 무장한 일부 세력이 MD 반대에 가세했다. 즉, 지구상에서 대부분의 문제를 일으키는 주역은 미국과 이스라엘이고 따라서 이 세력을 견제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 대열에는 이란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이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 위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등이 끼어 있다. MD 논란에는 기업인들도 한몫을 한다. 주로 유럽에 있는 이 기업인들은 돈만 내면 이란에 어떤 무기도 판매한다.

미국인들은 MD 계획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오바마의 철회 발표가 나오자 공화당 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를 비난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도 찬성이 우세했다. 그러나 미국이 군비를 강화하면 적들도 같은 조치를 취한다는 점은 간과되고 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절실한 정책은 아무리 첨단 무기를 개발해도 미국이 그것을 저지할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는 한 돈과 시간의 낭비라는 점을 적들에게 분명히 알려주는 것이다. 다만, 미국의 적대 세력을 설득하는 묘안이 당장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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