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내달리던 금융계 풍운아 자기 덫에 걸려 넘어지다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09.09.29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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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 파생상품 손실로 징계받고 끝내 퇴임…MB 신임 여전해 재기 가능성은 남아

▲ 국제금융 전문가로 명성을 날리며 승승장구하다 낙마한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 ⓒ연합뉴스 ⓒ시사저널 박은숙

쾌속 질주하던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이 넘어졌다. ‘최고경영자(CEO)는 검투사와 같다’라는 경영 철학에 걸맞게 격정적으로 살아온 삶의 궤적만큼 KB금융지주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는 모습도 요란했다. 황회장은 지난 2004~07년 우리금융지주회장(우리은행장 겸임) 재직 시절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에 투자해 우리은행에 12억5천만 달러 손실을 입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9월4일 황회장에 대해 직무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우리은행 최대 주주인 예금보험공사는 뒤늦게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황회장은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가 지난 9월3일 오후 2시부터 자정까지 연 징계 심의 회의에 참석해 중징계의 부당성을 따졌다. ‘주의적 경고’라는 가벼운 징계를 받은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이 국민연금 이사장에서 물러난 상황에서도 황회장은 물러나지 않고 버텼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황회장을 굴복시킨 것은 비난 여론이었다. 금융권 최고경영자가 금융 감독 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음에도 자리를 지키려 한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지난 9월23일 사임했다.

황회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제금융 전문가이다. 영어와 일본어에 능숙하다. 황회장은 삼성물산 국제금융 담당자로 일하다가 1981년 영국 런던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외국 금융 기관에서 경력을 쌓다가 1989년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국제금융팀 부장으로 복귀했다. 그후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투자신탁운용 같은 주요 계열사로 자리를 옮길 때마다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국제금융 분야 지식과 경험이 그를 끊임없이 밀어올렸다. 삼성증권 사장 시절 황회장은 삼성그룹 핵심 계열사 사장단 모임이었던 ‘7인 위원회’에 포함될 정도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신임을 받았다.

그는 지난 2004년 우리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하면서 우리은행을 혁신했다. 우리은행 자산을 1백19조원에서 1백86조원으로 늘렸다. 그로써 우리은행이 신한은행을 제치고 은행권 2위에 올라섰다. 연평균 성장률이 20%에 가까울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세이다. 주택담보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린 것이 주효했다. 금융시장 환경이 좋아 대출 확대는 수익 증가로 이어졌다. 금융권 골칫거리였던 우리은행은 ‘메가뱅크(초대형 은행)’ 주도 세력으로 부상했다.

황회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덩치 못지않게 수익성을 비약적으로 개선시키고자 자신이 잘 아는 국제 파생상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미국 모기지 채권에 기초한 부채담보부채권과 신용부도스와프 상품에 15억5천만 달러를 투자했다. 금융 파생상품 투자는 기대 수익이 큰 만큼 리스크(위험)도 크다. 지난해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불거진 세계 금융 위기가 터지지 않았다면, 우리은행은 천문학적인 투자 수익을 거두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금융지주 회장 재직 시절 5천억원가량 손실 냈다”

▲ 박병원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왼쪽)과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오른쪽)은 황영기 회장에 이어 우리금융그룹 경영을 맡아 우리은행의 금융 파생상품 손실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다. ⓒ시사저널 자료 사진 ⓒ시사저널 임영무

눈부신 실적 지표 덕에 황회장은 무난히 우리금융지주 회장 연임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하지만 황회장은 연임에 실패했다. 우리은행 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와 마찰을 빚은 탓이다. 황회장 후임으로 우리금융지주 회장직에 오른 이는 박병원 당시 재정경제부 1차관이었다. 우리은행장으로는 서울보증보험 사장을 지낸 박해춘씨가 선임되었다. 우리금융그룹은 박병원 회장과 박해춘 은행장 ‘투톱’ 체제로 바뀌었다.

재경부 관료의 절대 지지를 받고 우리금융지주에 입성한 박회장을 맞이한 것은 어찌해볼 수 없는 파생상품 손실액이었다. 박회장은 황회장이 발생시킨 파생상품 투자 손실을 처리하느라 동분서주했다. 지난해 3월 우리금융지주 회장실에서 만난 박회장은 “황 전 회장이 저질러놓은 금융 파생상품 손실을 처리하기 위해 관계 기관을 만나고 다니는 것이 일이다”라고 말했다. 박회장은 당시 손실 금액을 5천억원가량으로 추정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손실 규모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박회장은 “세계 금융 위기 여파로 국내 은행들이 파생상품 투자 손실을 입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다른 시중 은행들이 1천억원 안팎인데 우리은행만 5천억원이 넘는다. 황회장이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다”라고 말했다.
 
황회장이 투자 실패를 가져온 것은 파생상품에 대한 이해 부족 탓이라는 지적이 있다. 김연희 베인앤컴퍼니 한국대표는 “국내 은행이 파생상품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미국 투자은행들을 흉내 내다가 천문학적인 투자 손실을 입었다”라고 말했다. 황회장이 국제 금융시장 전문가라고 하지만 파생상품은 끊임없이 변한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희한한 파생상품이 나타나고 사라진다. CDS와 CBO는 미국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이 최근 개발한 파생상품이어서 황회장이 투자에 따른 리스크를 충분히 인지했는지 의심스럽다.

우리금융지주 회장에서 물러났지만 황회장은 왕성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황회장은 이명박 대통령 후보 선거 캠프에 참여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해 8월 KB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했다. ‘야심가’ 황회장은 KB금융지주 회장에 오른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취임한 지 석 달도 지나지 않은 지난해 9월9일 KB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처럼 자산 규모 2백조원 은행들을 대등하게 합병해 자산 규모 5백조원 규모의 글로벌 은행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이른바 ‘글로벌 메가뱅크 론’을 내세우면서 국내 금융권 재편을 주도하고 나선 것이다.

황회장이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것은 ‘성공의 저주’ 탓이다. 성공한 이가 갑작스럽게 좌절을 겪는 것은 자기가 잘하는 분야에서 저지른 실수 탓인 사례가 많다. 국제금융 전문가로서 미국 파생상품에 자신 있게 투자했던 것이 황회장의 발목을 잡았다. 황회장은 치명상을 입었지만 ‘국제금융 전문가’로서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은 아니다. MB의 신임이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고 일부나마 동정 여론까지 일고 있어 복귀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지금까지 삶의 행적을 보면 황회장은 위기 상황에서 번번이 묘수를 발휘해 재기에 성공했다. 국내 금융권 경영진들은 국제금융 지식이나 경험이 부족하다. 안전 지향이 대세인 국내 금융 산업 환경을 감안하면, 좌충우돌하지만 끊임없이 새 것을 시도하는 황회장의 기질은 여전히 희소성이 있는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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