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정부 협공에 케이블TV는 “괴로워”
  • 권경성 | 미디어오늘 기자 ()
  • 승인 2009.09.2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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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재송신은 저작권법 위반”…“우리 덕에 광고 늘었다”

▲ 디지털 TV 서비스를 체험하는 국회의원들. ⓒ연합뉴스

유료 방송업계의 ‘강자’ 종합유선방송(케이블 방송)이 최근 사면초가에 빠졌다. 지상파 방송에 고소를 당하는가 하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사를 받는 등 경쟁 업계와 정부의 동시 압박에 고초를 겪고 있다.
KBS와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는 지난 9월10일 케이블 방송사(SO) HCN서초방송을 ‘지상파 채널 불법 재송신 행위’에 의한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형사 고소했다. 역시 SO인 CJ헬로비전을 상대로는 디지털 케이블 방송 신규 가입자에 대한 지상파 방송 동시 재송신 행위를 금지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의 민사 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냈다.

지상파 3사는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현행 방송법과 저작권법에 따라 지상파 방송사가 저작권과 저작인접권자로서 공중 송신권과 동시 중계 방송권 등을 가진다. SO는 아무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출범 이후 지금까지 지상파 채널 재송신의 혜택을 누려왔다. 소송은 위성방송·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IPTV) 등 다양한 대안 매체의 등장에 따른 공정 경쟁 환경 조성 차원에서도 불가피한 조처이다”라고 주장했다.

소송 대상을 디지털 방송 신규 가입자에 대한 재송신으로 한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아날로그이든 디지털이든 현재의 불법 재송신이 저작권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다만, 시청자들의 혼란을 막고 디지털 시대에 맞는 사업자 간 상생의 여지를 남기기 위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케이블 방송업계도 반격하고 나섰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9월14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부 시책과 지상파 방송사 쪽 요구에 따라 무료 보편적 서비스인 지상파 방송을 수신할 수 있도록 도운 것이다. 지상파 고화질(HD) 방송을 내세워 마케팅을 하거나 시청자에게 추가 부담을 요구한 바 없다”라고 반박했다.

옛 정보통신부(현 방송통신위원회)가 2002년 말 SO들에게 지상파 디지털 방송을 조속히 재송신할 것을 요청했고, 지상파 방송사들도 지상파 디지털 신호를 변조 없이 그대로 가입자에게 송출해줄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협회는 또 “난시청 해소를 케이블 방송이 대신 수행하는 동안 지상파 방송사들은 콘텐츠 제작에 집중할 수 있었다. 높아진 시청 커버리지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광고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던 일등공신이었다. 재전송의 최대 수혜자는 지상파 방송사들이다”라고 강조했다.

지상파 방송 쪽이 두 SO를 상대로 민·형사 소송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은 애초 CJ헬로비전만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형사 고소할 것으로 알려졌던 것과 다소 차이가 있는 결과이다. 이와 관련해 지상파 방송 쪽 관계자는 “CJ헬로비전이 소송을 예상하고 법무법인을 선정하는 등 적극적 방어 의사를 표시했던 것이 부담이 된 데다 사업자 한 곳만 찍어 소송을 벌이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CJ헬로비전과 HCN서초방송 둘 다 홈쇼핑 채널을 관계사로 두고 있는 SO라는 점도 감안했다. 이들은 홈쇼핑 채널을 지상파 채널들 사이 번호대에 배치해 관계사는 큰 수익을 올리도록 하는 한편, 자사도 막대한 수수료 수입을 챙긴 대표적 SO이다”라고 부연했다.

양쪽의 갈등이 법정 공방으로 번질 조짐은 지난해부터 보였다. 한국방송협회는 지난해 7월 케이블방송협회에 지상파 디지털 방송을 실시간으로 재송신하는 것을 중단해달라고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이때부터 양쪽은 1년 가까이 저작권료 지급과 관련해 협상을 벌였다. 하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결국 지난 6월 협상이 최종 결렬되어 법정 다툼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소송을 제기한 것은, 광고 수입은 줄어드는 반면 디지털 전환 등으로 돈이 필요한 곳은 많아진 상황에서 새 수익원을 확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내린 고육지책 차원의 결정으로 보인다. 지상파 방송 재송신 계약에 관한 원칙이 법령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절대적 규모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케이블 방송을 상대로 싸움을 걸었다가 분쟁이 격화되어 시청자에게 피해가 갈 경우 싸움을 건 쪽이 되레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케이블 방송 쪽의 저작권 침해인지 지상파 방송 쪽의 저작권 남용인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여전히 엇갈리는 데다 저작권과 관련한 판례도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지상파 방송 쪽이 법원에 과감히 영업정지 가처분신청을 하지 못하고 케이블 방송의 신규 디지털 상품에서 지상파 채널을 빼도록 해달라는 다소 ‘복잡한’ 요청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저작권 침해냐, 남용이냐 헷갈려

지상파·케이블 방송이 법정에서 맞붙게 된 것은 이미 지난해 도화선에 불이 붙은 시한폭탄이 결국 터진 형국이다. 하지만 공정위의 집중 조사에 대해서는 의외라는 평가가 나온다. 범정부 차원의 적극 지원을 받고 있는 IPTV가 여전히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데다 방통위가 종합편성 채널 선정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전격적이고 고강도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9월8~9일 티브로드와 CJ헬로비전, 씨앤앰, HCN, CMB 등 주요 복수 케이블 방송사(MSO)에 대한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해 일제 조사를 벌인 데 이어 최근에는 일부 MSO를 대상으로 추가 조사를 실시했다. 이에 대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전병헌 의원은 9월18일 문방위 전체회의에서 공정위 조사 목록을 제시하며 “이 자료들이 IPTV 등 다른 유료방송 사업자에게 넘어갈 경우 SO의 영업 활동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만큼 순수성이 의심된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를 놓고 방송계 일각에서는 종편채널 도입을 앞두고 SO의 채널 편성권을 사전에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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