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자 리더십’ 밀어주는 1인자가 돼라
  • 이철희 |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컨설팅본부장 ()
  • 승인 2009.10.13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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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가 1인자를 리드하는 것도 가능해…상생의 시너지 효과 나와야 ‘윈-윈’

성공은 누구나 꿈꾸는 것이지만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이 역설 탓에 너나 할 것 없이 성공을 갈망한다.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2인자의 존재이다. 혼자 성공한 이는 없다. 다른 사람 도움 없이 혼자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는 천재이다. 시대를 개척하고 이끈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곁에 스티브 발머가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성공의 요체 중에 하나가 바로 ‘2인자 리더십’이다. 리더십(leadership)이라는 말은 리더(leader)로부터 비롯되었다. 리더는 리드(lead)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보면 2인자 리더십은 형용 모순이다. 2인자도 1인자에게는 한 사람의 참모일 뿐이다. 리더가 아니다. 그런데 무슨 리더십을 거론할 수 있는가? 일견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리더십은 리더의 역할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본뜻은 리드하는 역할이다. 따라서 리더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이끌어나갈 수 있다. 심지어 2인자가 1인자를 리드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성계와 정도전의 관계에서 리드한 것은 참모 정도전이었지 이성계가 아니었다. 무장(武將) 이성계를 제왕으로 만든 쪽은 정도전의 2인자 리더십 덕분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대통령으로 거론되는 인물이 프랭클린 루스벨트이다. 그에게는 참모가 하나 있었다. 루이 하우이다. 그들은 승승장구하던 젊은 시절부터 함께했다. 하우는 일찌감치 루스벨트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에 운명을 걸었다. 그러던 차에 루스벨트가 소아마비로 쓰러졌다. 모든 것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누가 보아도 루스벨트의 정치 인생은 끝난 것이었다. 아니, 그를 정치와 연결시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하우는 루스벨트 곁을 떠나지 않았다. 꿈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무려 7년 동안이나 병상을 지켰다. 그리고 마침내 루스벨트를 뉴욕 주지사에 당선시켰다. 4년 뒤 하우는 루스벨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병마에 쓰러진 루스벨트에게 하우가 없었다면, 우리가 역사 속에서 기억하는 루스벨트는 없었을 것이다.

한(漢)나라의 창업자 유방은 애초 날건달이었다. 똘마니들과 어울려 다니며 계집질이나 하는 날탕이었다. 그가 내세울 것은 자신의 잘생긴 얼굴뿐이었다.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에게서 유래된 것이다. 그런 그를 대륙의 황제로 만들어준 것은 장량이었다. 어설프게 욕심내고, 한심하게 허술한 유방을 노심초사 가르치고 다독거려 승자가 되게 했다. 장량으로 하여금 자신에게서 황제의 깜냥을 느끼게 한 유방의 능력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장량이 없었다면 그가 황위에 오르는 기적은 없었을 것이다.

경쟁 심리 끼어들면 모두에게 손해

▲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은 2인자로서 삼성의 위기를 성공적 으로 수습했다. ⓒ삼성

대한민국에서 삼성은 슈퍼 재벌이다. 거의 절대적인 위상을 누리고 있다. 오죽하면 삼성이 하면 다르다는 것이 하나의 상식, 나아가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고 있으랴. 그러나 삼성의 성공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 위기를 이겨낸 결과물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모든 기업이 존망의 기로에 내몰렸다. 자동차 사업에 진출해 가뜩이나 어렵던 차에 닥친 외환위기였다. 삼성은 절박했다. 모두들 이건희 회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 숨 죽여 지켜보았다. 이회장은 이학수에게 위기 수습을 맡겼다. 이회장의 말 그대로 이학수가 ‘폭넓은 시야와 균형 감각을 갖고 있으면서 사심이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학수는 삼성 살리기에 매달렸다. ‘버려야 할 사업’과 ‘당장은 이익이 나도 미래 이익이 안 날 사업’, ‘당장 이익이 안 나도 미래 유망 사업’을 하나하나 가려냈다. 이어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행했다. 65개에 달하던 계열사를 45개로 줄였다. 총 2백36개 사업을 정리했다. 분사와 매각을 통해 5만2천여 명, 35%에 달하는 인력을 생력화(省力化·노동력을 줄이는 일)했다. 이학수는 애물덩어리가 된 자동차 사업을 청산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그간 추진되던 대우와의 빅딜을 포기하고 법정관리를 선택했다. 내외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회장을 설득해 결단을 얻어냈다.

그 이후 삼성의 질주는 가히 거칠 것이 없었다. 1938년 창업한 후 1998년까지 60년 동안 삼성이 낸 이익보다 이학수가 구조조정본부장이 된 1999년부터 5년간 낸 수익이 여셧 배 정도 많았다. 위기의 시기에 빛나는 2인자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다. 김춘수의 시어(詩語)처럼, 이학수는 이회장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에게로 가서 꽃이 되었다. 이학수를 발탁하고 지원한 이회장의 리더십이 마땅히 먼저이겠지만, 이학수가 보여준 2인자 리더십도 충분히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리더와 참모는 대등한 파트너십을 공유해야 한다. 보스-부하로서 상명하복하는 ‘졸개’ 마인드를 가져서는 곤란하다. 1인자는 믿고 맡겨야 한다. 2인자는 책임지고 해내야 한다. 2인자의 롤 모델은 따로 없다. 있다면 무엇보다 1인자를 보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원칙뿐이다. 음양의 조화를 이루듯 서로 단점을 덮어주고, 장점을 빛나게 해주는 상보(相補)의 한 세트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2인자는 1인자가 못 된 사람이 아니다. 1·2인자 사이에 경쟁 심리가 끼어들면 둘 모두에게 손해이다. 특히 2인자는 2인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1인자가 못 보는 것을 보고, 빠뜨리는 것을 챙겨야 한다. 1인자가 강성이면 2인자는 연성이어야 한다. 1인자가 치밀하면, 2인자는 넉넉해야 한다. 1인자가 몽상가라면, 2인자는 실행가라야 한다. 이처럼 1인자와 2인자의 역할은 볼트·너트처럼 아귀가 맞아야 한다. 그래야 상생의 시너지 효과가 난다.

성공하기를 원하는 1인자라면 주저 없이 2인자 리더십을 조장해야 한다. 2인자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최대한 그 활동 공간을 열어주어야 한다. <삼국지>의 제갈공명이 실패한 것도 만기친람(萬機親覽) 때문이라고 한다. 나누고, 독려하는 것이 리더의 책무이다. 한편, 2인자는 1인자의 역할을 보완하는 데에 진력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2인자는 능력이 뒤쳐져 2인자 신세에 머물러 있다는 자비심(自卑心)을 버려야 한다. 1인자와는 다만 역할이 다르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것이 2인자의 존재 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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