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검찰 총수 ‘깜짝 변신’에 뒤통수 맞은 검찰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10.1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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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채진 전 총장, 퇴임 석 달 만에 ‘SLS조선 사건’ 수임…검찰 내부에서 “부적절한 처신” 지적도

▲ 지난 6월5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퇴임식을 마치고 배웅을 나온 직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검찰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수장’으로 모셨던 임채진 전 검찰총장 때문이다.

지난 7월7일 서울 역삼동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임 전 총장과 국내의 한 대형 로펌은 검찰이 현재 의욕적으로 수사하고 있는 ‘SLS조선의 비자금 조성 및 횡령 의혹 사건’의 공동 변론을 맡기로 했다. 그러면서 검찰 수뇌부가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검찰 내부에서는 “전직 검찰 총수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했다”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창원지검 특수부는 지난 9월15일 경남 통영시에 있는 중견 기업인 SLS조선 본사 등을 전격 압수수색했다. SLS조선과 10여 개 계열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모두 9천8백억원대였으며 조선업계에서는 7위 규모이다.

검찰은 비자금 조성 및 횡령 의혹과 함께 이 회사가 관급 공사를 받으면서 정·관계 인사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는지도 정밀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사건은 청와대가 검찰에 하명한 사건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향후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더욱 주목된다.

검찰은 현재 SLS조선뿐 아니라 대한통운, 두산인프라코어, SK건설, 태광그룹 등 대기업 비리 수사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이 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 수사에 나선 것 아니냐”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 2007년 대선과 지난해 총선 등으로 지난 3년여 동안 지역 토착 비리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데다 박연차 게이트에 이어 검찰 수뇌부 공백 사태 등으로 ‘본연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업들에 대한 ‘기획 수사’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8·15 경축사에서 토착 비리 척결 의지를 천명했다. 여기에 김준규 총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새롭게 전열을 갖춘 검찰이 그동안 축적했던 비리 첩보나 수사 자료를 토대로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어서 그 수사 강도는 상당히 셀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임 전 총장이 SLS조선의 변호인으로 나서자 검찰 내부에서는 부정적인 견해들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거의 관례처럼 역대 검찰 총장은 변호사 개업을 한 후 가급적 사회적으로 이목을 끄는 대형 사건은 수임하지 않았다. 자칫 전관예우 논란에 휘말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형사 사건을 피하는 경향이 강했다.

검찰총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총장 출신이어서 이것저것 아무 사건이나 수임할 수도 없다. 후배 검사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운신할 수 있는 폭이 상당히 좁아진다”라고 토로한 바 있다.   

임 전 총장 “변호사로 일하는 게 문제인가”

▲ 2006년 9월14일 경남 통영 SLS조선에서 열린 5만DWT급 석유화학제품운반선 진수식에서 직원들이 조선 수군 복장을 한 채 큰북을 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럼에도 임 전 총장이 ‘과감하게’ 대형 사건을 수임하면서 검찰 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이다. 대검의 한 간부는 “(임 전 총장이) 검찰을 떠났기 때문에 변호사 개업을 하는 것은 정상적인 활동이며 전혀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퇴임한지 불과 석 달 정도 지나서 언론의 관심이 큰 대형 사건의 변론을 맡는 것이 적절한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 입장에서는 상대편 변호인이 전직 검찰총장이라면 여간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임 전 총장은 지난 10월9일 <시사저널>과의 전화 통화에서 “변호사가 자기 일을 하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그리고 (SLS조선에) 나와 ‘막역한 친구’가 있어서 자문을 해주고 있다”라면서 “검찰에서는 전관예우가 거의 없다. 내가 검찰에 있을 때 선배들(변호사)로부터 ‘섭섭하다’라는 말을 들었다. 따라서 후배들도 원칙대로 수사하면 된다. 나는 나대로 변호사의 기능과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그것이 아름다운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SLS조선이 ‘대형 변호사’와 ‘대형 로펌’을 선임했기 때문일까. 검찰이 압수수색을 한 지 한 달 가까이 되었지만 이렇다 할 만한 수사 성과물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SLS조선의 한 간부는 “검찰 수사를 관망하는 입장이다”라면서도 “검찰이 대한통운을 압수수색할 때는 바로 그 다음 날부터 구속자가 나왔는데 우리는 지금까지 한 명도 기소된 사람이 없지 않느냐. 그래서 검찰 수뇌부가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검찰 수사에 대해 자신이 있는 어투로 말했다.

임 전 총장은 대검 중수부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한창 진행되던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자살(5월23일)하자 지난 6월5일 사직서를 내고 검찰청사를 떠났다.

임 전 총장은 박연차 수사 때부터 현재까지 삼성서울병원에서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 병원 관계자에 따르면, 지방간 수치가 조금 높게 나올 뿐 특별히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박연차 사건 수사와 노 전 대통령의 자살 서거 등으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듯하다는 것이 병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편, 임 전 총장은 전화 통화에서 ‘박연차 게이트 수사’와 관련해서는 “검찰 수사가 잘못되었다는 일부 평가에 대해 절대 동의 못하며 그 수사에는 순수성과 진정성, 당위성이 있었다. 절대 표적수사가 아니었으며,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소신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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