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10년 아성’ 깨뜨리고 손석희, 새로운 철옹성 높이 쌓다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9.10.2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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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고문, 첫 조사 이후 잇따라 수위에 올라…2005년 이후에는 ‘손석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을 묻는 지난 20년간 조사에서는 신·구 간의 배턴 터치가 확실하게 이루어졌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까지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의 ‘아성’은 좀처럼 무너지지 않을 듯이 보였다. 조선일보 주필로 있을 당시인 1993년 조사 때부터 2004년 부사장 대우가 되었을 때까지 줄곧 1위 자리를 독주했다. 딱 한 차례 1995년 조사에서 방우영 조선일보 회장에 이어 2위를 차지한 적이 있지만 1.5% 포인트의 근소한 차이였다.

김고문은 1987년부터 ‘김대중 칼럼’을 연재해 온, 조선일보를 대표하는 보수 논객이다. 그는 1996년 당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영향력 1위 언론인으로 선정되는 것과 관련해 “사심 없이 기자만 하겠다는 생각이 글에 나타나고 그것이 독자에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고문을 비롯해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는 역시 조선일보 인사들이 단골손님으로 등장해왔다. 1994년 조사에서 김대중 주필이 1위, 조선일보 사장이 2위, 류근일 논설위원실장이 7위, 조선일보 편집국장이 11위를 차지했다. 당시 응답자들은 방상훈 사장과 인보길 편집국장의 이름을 직접 대지는 않았지만 그 자리만으로도 파워를 인정한 것이다. 이후에도 조선일보의 ‘위력’은 여전했다. 2001년에는 김주필이 역시 1위를 차지한 가운데, 류근일 논설주간이 2위, 조갑제 <월간조선> 사장이 5위에 올랐다. ‘빅 5’에서 세 명이 조선일보 인사들이었던 셈이다. 이같은 현상은 2005년 당시 손석희 MBC 아나운서국 국장이 등장하면서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손국장은 MBC FM 라디오 <시선집중>과 TV <100분 토론>을 통해 ‘공격적인 인터뷰’와 ‘냉철한 토론 진행’이라는 특유의 방송 진행 방식으로 인기와 신뢰를 동시에 이끌어냈다. 정혜신 정신과 의사의 표현에 따르면 ‘목표물을 향해 공중에서 일직선으로 내리꽂히는 매’와 같은 일침이 장기이다. 손국장은 이를 바탕으로 ‘만년 영향력 1위’ 김대중 고문을 4위로 내려앉히고,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정연주 KBS 사장마저 따돌리며 선두를 차지했다.

신문·방송사 사장과 방송 앵커들이 다수 차지

‘손풍’(孫風)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5년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김대중 고문의 아성을 무너뜨린 ‘매’가 새로운 아성을 쌓은 형국이다.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도 오래전부터 받아왔다. 현재 성신여대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올해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나 자신을 부정할 만한 그런 이유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의 내 역할을 바꿀 생각이 없다”라며 정계 진출 가능성을 일축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김학준 동아일보 회장 등 주요 신문사 대표와 함께 KBS·MBC 사장도 영향력 있는 언론인 명단에서 빠지지 않는다. 박권상 전 KBS 사장의 경우 <시사저널> 고문으로 있던 때부터 이미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1993년 조사에서 2위를 차지한 그는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줄곧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렸다. KBS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1999년과 2002년 조사에서 다시 2위로 복귀했고, 2001년에는 4위를 차지했다.

김중배 전 MBC 사장도 마찬가지다. 한겨레 사장이던 1993년 6위를 차지한 그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는 참여연대 공동대표로서, 2001년부터 2003년까지는 MBC 사장으로서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한겨레 논설주간을 맡고 있던 2001년 공동 8위를 차지했다. KBS 사장 취임 후인 2003년과 2004년에는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2005년과 2006년에는 3위에 올랐다. 사장에서 물러난 2008년 조사에서도 3위를 차지했다.

방송 앵커 출신들의 활약도 눈에 띈다. 엄기영 MBC 사장은 앵커 시절부터 영향력이 상당했다. 1993년 조사에서 5위를 차지한 그는 꾸준히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1996년에는 김대중 주필에 이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도 인기 앵커로서 위력을 발휘해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인정받았다. 사장 취임 이후인 2008년과 올해 조사에서는 다시 2위에 올랐다. 유명 앵커로서 영향력을 키웠다가 정계에 진출한 인사도 적지 않다. 1993년 조사에서 4위, 1994년에는 8위를 차지한 이윤성 KBS 앵커는 1996년 총선을 통해 국회로 진입해 현재 4선 의원의 국회 부의장이다. 1995년 조사에서 10위에 오른 이후 1997년 2위까지 차지한 류근찬 KBS 앵커도 재선 의원으로서 자유선진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다.

인터넷 신문에서는 2004년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가 유일하게 10위권에 진입했다. 당시 9위를 차지한 그는 이듬해에는 한 계단 더 올라서 8위에 올랐다. 2007년에는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위원과 공동 8위를 차지했는데, 올해 조사에서는 송필호 중앙일보 사장과 함께 공동 10위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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