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 좌우하는 ‘총수들의 힘’ ‘이건희·삼성 천하’는 계속된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10.2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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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의 1위 이어가…2000년부터는 재계 세대교체 본격화, 정몽구·구본무·최태원 강세


한국은 정치 권력과 기업 권력의 양극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지난 20년간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에서 드러난 결과가 이를 잘 보여준다. 특히 경제계에서 기업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지난 20년간의 조사 결과를 보면 기업 총수의 영향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공고해진다는 것이 설문에 응한 전문가들의 현실 인식이다.

경제인을 대상으로 한 영향력 조사는 지난 1992년 처음 실시되었다. 당시 조사에서는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1위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1위부터 10위까지의 인물 가운데 유창순 전경련 회장을 제외하면 모두 기업의 총수가 자리 잡았다. 20년 동안 기업인이 아니고 10위 내에 이름을 올린 사람은 강만수 전 재정기획부장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김진표 경제부총리,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 등 12명에 불과했다.

1990년대 조사에서는 1970~80년대 경제 성장을 대변하던 상징적인 인물들이 상위권을 이루고 있다. 첫 조사에서 상위권을 형성한 김우중·이건희·정주영 회장은 1993년과 1995년 조사에서도 상위권을 유지했다. 1987년 삼성의 경영권을 넘겨받은 이건희 회장은 1993년 조사부터 1위에 올랐다. 삼성이 한국의 대표 기업으로 올라선 시기라고 평가받는 시점과 때를 같이했다. 2세 경영인으로서의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1994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라는 ‘신 경영’을 내세우며 세간의 관심을 끌어모은 이건희 회장은 1999년 단 한 번만 2위로 밀렸을 뿐 2009년까지 줄곧 재계 영향력 1위를 차지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재계 영향력 평가에서는 1992년 2위, 1993년 4위, 1995년 2위를 차지했다. 소 떼를 몰고 휴전선을 넘어 방북한 직후인 1999년 영향력 조사에서 정주영 회장은 이건희 회장을 2위로 밀어내고 1위에 올랐다. 현대의 대북 사업이 가시화된 시점이기도 하다. 이처럼 20세기의 끝을 화려하게 장식한 재계의 거목은 2001년 3월 세상과 이별했다.

벤처 기업인으로는 안철수·여성으로는 장영신이 10위권에 유일

1999년은 경제계에 중요한 시점이었다. 경제계 내부에서 힘이 이동하고 재편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세계 경제’를 주창하던 ‘김우중 대우’의 몰락 그리고 펼쳐지는 ‘이건희 삼성’의 독주로 정리할 수 있다. 김우중 회장의 영향력이 줄어든 시점은 1999년부터였다. 이 해 그는 지목률이 겨우 28.9%에 불과해 1위 정주영 회장(86.2%), 2위 이건희 회장(74.1%)과의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 이후 순위 밖으로 사라졌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 2세 경영자들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순위에 등장한다. 현대그룹이 대표적이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과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이 순위 리스트에 등장했다. 

정몽구 회장은 2000년대 들어 영향력을 크게 확장한 인물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이 우수한 실적을 올리면서 그의 위상도 덩달아 올랐다. 1999년 8위로 처음 이름을 올린 정몽구 회장은 2001년 3위에 올라선 뒤 이후 줄곧 2~3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의 개인 최대 주주인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은 1995년 처음 8위에 이름을 올린 뒤 2000년 이후 해마다 10위 안에 자리 잡고 있다. 1999년 8위로 처음 등장한 고 정몽헌 회장도 2003년 작고하기 전까지 매년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

SK와 LG의 부상은 덩달아 최태원 회장과 구본무 회장의 영향력 증가로 이어졌다. 2001년까지 10위권 밖에서 맴돌던 최태원 회장은 2002년 7위에 오르면서 영향력이 커졌음을 입증했다. 구본무 회장이 처음 순위에 오른 것은 1995년으로 당시 7위였다. LG 회장에 취임한 바로 그해였다. 

경제인 영향력 조사에서 벤처인과 여성은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나마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사장이 지난 2001년 처음으로 7위에 진입한 뒤 벤처인 중 유일하게 10위권 내에 머무르고 있다.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1999년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 9위를 기록한 것이 유일했다.

한편, 기업의 영향력에서도 삼성의 입지는 철옹성이었다. <시사저널>이 1996년 ‘기업의 영향력’을 묻는 항목을 처음 도입한 이후 삼성(혹은 삼성전자)은 한 번도 1위를 빼앗긴 적이 없다. 외환위기 이전까지 국내 3강 구도는 ‘삼성-현대-대우’였지만 21세기로 넘어온 이후 ‘삼성전자-현대자동차-LG전자’의 신 3강 구도로 재편된 것이 눈에 띈다. 포스코와 SK텔레콤 역시 상위권을 유지하며 영향력 있는 그룹으로 자리매김 중이다. 영향력 있는 기업인의 원천은 다름 아닌 영향력 있는 기업에서 나온다는 점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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