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깊어갈수록 ‘대중의 별’은 더욱 빛났다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10.20 20:0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중문화인 영향력 점차 커져…배용준·이효리·비 등 ‘10대 아이콘’이 큰손으로 등장, 스포츠계는 박찬호·이승엽·박지성 등 해외파들이 순위 이끌어


문화예술계·연예계·스포츠계 영향력에 대한 첫 조사는 1993년에 이루어졌다. 종합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 누구인지를 묻는 조사였다. 이 시기에는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과 신영균 예총 회장, 김기창 화백 등 원로들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영화감독 임권택, 탤런트 최불암·이순재 등 영화계와 연예계의 원로들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해외파 예술인들의 명성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 음악감독을 맡고 있던 정명훈씨,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작가 등은 1993년 첫 조사부터 5위와 7위를 차지했다. 특히 정명훈씨는 1994년 8월 바스티유 오페라 경영진의 일방적인 해고로 법정 싸움까지 벌이면서 한국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1993년 5위에서 이듬해에는 2위로 올라서더니 1995년에는 1위를 차지했다. 성악가 조수미씨 역시 1995년 처음 순위에 이름을 올리며 해외파 대열에 합류했다. 

시계 방향으로 가수 비와 김연아 선수, 정명훈 음악감독. 김연아는 특히 올해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드문드문 의미 있는 반란도 일어났다. 특히 1994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5위를 차지한 것은 의미심장했다. 고급 문화가 이끌던 영향력 순위에 10대들의 지지를 받는 대중음악가, 그것도 댄스그룹이 포함된 첫 케이스였다. 당시 서태지조차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어리둥절하다”라고 소감을 밝혔을 정도이다. 이후 ‘문화 대통령’으로 거듭난 서태지는 계속되는 영향력 조사에서 상위권에 위치했다.

문화예술인과 연예인 그리고 스포츠인까지 포함된 1999년에는 처음으로 스포츠 부문에서 1위를 배출했다. 박찬호·박세리·김미현 등 미국에서 활동하는 야구와 골프 선수들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1999년 조사에서 나란히 1~3위를 차지했다. 국내 프로야구 한 시즌 홈런 기록을 경신한 이승엽이 그 뒤를 이었으니 가히 스포츠인들의 최전성기라 할 만했다. 이와 함께 10대 소녀들의 우상이었던 아이돌 그룹 H.O.T가 5위를 차지하는 등 기존의 경향과는 분명 다른 흐름이 나타났다.

<시사저널>이 문화예술계·연예계·스포츠계를 각각 분리해서 영향력을 조사하기 시작한 때는 지난 2002년부터였다. 문화예술인 영향력 조사에서는 여전히 클래식의 향연이 펼쳐졌다. 2005년과 2009년에는 정명훈씨가, 2002년, 2004년, 2006년에는 조수미씨가 각각 1위를 차지하며 줄어들지 않는 영향력을 과시했다. 조수미씨는 월드컵 명예대사, 부산 아시안게임 홍보대사 등 왕성한 대외 활동을 하며 자신의 영향력을 넓혔다. 지휘자 금난새씨 역시 2002년 처음으로 9위에 등장했다.

연예 스타들 사이에서도 빛난 정명훈·조수미

시대에 따라 영향력이 부침을 보인 문화예술인도 있었다. 2003년 1위는 <박하사탕>을 연출한 영화감독 출신인 이창동 당시 문화부장관이었다. 하지만 이 전 장관은 2003년 이전에는 한 번도 순위권에 이름을 올린 적이 없었다. 2003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2004년에는 8위를 기록하더니 2005년부터는 순위에 등장하지 못했다. 문성근·명계남 씨 역시 2003년에만 각각 5위와 9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 전 장관과 문성근·명계남 씨는 ‘노사모’의 주요 구성원으로 활동하면서 지난 2002년 대선 과정에서 크게 활약했었다, 전문가들이 문화적인 잣대보다는 정치적인 잣대를 고려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같은 의미에서 2008년 5위, 2009년 2위를 차지한 유인촌 문화부장관의 향후 영향력 변동이 궁금해진다.

가장 꾸준하게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배출한 곳은 문학계이다. 소설가 이문열씨는 1993년 조사가 시작된 이래 1999년 단 한 번 빠졌을 뿐 항상 10위권 내의 영향력을 보여주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2008년에는 1위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작가 이문열에 더해 ‘보수 논객 이문열’에 주목한 듯했다. 시인 고은, 고 박경리 작가, 황석영 작가 등도 영향력이 있다고 평가받는 문인들이었다. 기발한 글쓰기와 독특한 상상력을 자랑하며 젊은이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작가 이외수씨는 2008년 처음으로 순위에 올랐다.

연예인의 영향력 순위에서 1위는 ‘큰 형님’들의 몫이거나 그해 가장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연예인의 차지였다. 뚜렷한 대어가 없을 때 전문가들은 방송사와 ‘딜’이 가능할 정도로 거물급인 연예인들의 영향력을 후하게 평가했다. 2001년 최불암, 2004년과 2006년 안성기, 2005년 조용필 등이 1위를 차지한 이유이다.

반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아이콘이 등장했을 때 1위는 달라졌다. 2003년 연예면의 대문을 가장 많이 장식한 스타는 가수 이효리였다. 앨범 판매량이 미미하다는 비판에도 ‘효리 신드롬’은 그녀에게 2003년 한 해에만 30억원가량의 광고 출연료를 안겨주었다.

2007년부터는 최고의 ‘한류 스타’ 탤런트 배용준과 가수 비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2006년 10위로 처음 등장한 개그맨 유재석은 해마다 순위가 오르더니 2009년 비에 이어 2위에 올랐다. 강호동 역시 2009년 3위를 기록하며 ‘유·강’ 시대가 한창 절정기에 올랐음을 증명했다. 서태지, 보아, 이영애, 장동건 등도 10위권 내에 거의 매년 이름을 올리며 꾸준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올해 조사에서는 나이가 한창 어린 걸그룹 ‘소녀시대’가 6위에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전문가들에게도 소녀시대의 바람이 거세게 느껴졌나 보다.

기본적으로 스포츠 스타의 영향력은 그해 성적과 비례한다. 박찬호가 스포츠인 영향력 조사가 구분되기 전인 1999년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13승11패, 방어율 5.23이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 때문이었다. 대표적인 추락의 예가 김병현 선수이다. 김선수는 과거 영향력 조사에서 2002년 5위, 2003년 4위를 기록한 바 있지만 2004년 소속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부진에 빠지자 그해 조사에서 순위권 밖으로 가차없이 밀려났다.

1위 선수만 보면 대한민국은 야구와 축구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전체 10위 안에 포함된 경우만 보아도 그렇다. 2002~09년 10위권 내에 뽑힌 경우를 보면 야구와 관련된 인사가 22번, 축구와 관련된 인사는 32번이다. 80번 중 54번, 67.5%이다. 이 시기 1위는 역시 해외파 선수들의 차지였다. 박찬호 선수는 2002년과 2004년, 이승엽 선수는 2003년과 2006년 그리고 2007년에 각각 1위를 차지했다. 해외파 야구 선수의 틈바구니에서 해외파 축구 선수가 1위를 빼앗기도 했다. 박지성 선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한 2005년 1위를 차지했고, 최고의 시즌을 보낸 지난 2008년에도 1위에 올랐다.

 야구와 축구의 틈바구니에서 1위를 빼앗은 선수는 올해 조사에서 영향력 1위에 꼽힌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이다. 반면, 야구와 축구 이외에 가장 큰 영향력을 보이는 스포츠인은 골프 선수들이 주로 차지했다. 박세리 선수를 시작으로 최경주, 미셸 위, 신지애 등 미국에서 활동 중인 선수들이 골프계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차범근, 선동열 등 유명 선수 출신 감독들의 영향력이 나날이 커져가는 것도 특이점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