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철은 ‘총명탕’의 계절?
  • 이왕열 | 싸이컴·과학저술가 ()
  • 승인 2009.10.2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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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들, ‘머리 좋아지는 약’에 현혹당하는 경우 많아…두뇌 자극 효과 있어도 부작용 우려

대입 수능시험일이 코앞에 다가왔다. 고3 수험생이 아니더라도 시험 때문에 걱정하는 이들은 많다. 시험에 대한 부담감과 긴장감은 때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AFP통신은 최근 <의료윤리학저널> 최신호에 실린 시드니 대학의 빈스 카킥 교수의 논문을 인용하며, 미국 대학생의 약 25% 정도가 이른바 ‘머리 좋아지는 약’을 시험 기간 등에 복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 약은 주로 ADHD(주의력결핍 과잉 행동장애)나 치매 등의 환자에게 투여되어 뇌세포 활성을 조정하는 약으로, 과다 복용했을 때 중추신경계에 이상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카킥 교수는 이러한 부작용에도 그 사용량이 점점 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앞으로 이런 식의 약품 남용은 계속될 것이며, 미래에는 시험에 앞서서 교실에서 도핑 테스트를 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얼핏 시험을 위해 ‘약’까지 먹어야 하는 현실이 개탄스러우면서도, ‘정말 효과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기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다.

국내에서는 수능시험이 목전에 다가오자 ‘총명탕’이라는 약제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찬바람이 불면 감기가 돌 듯이, 입시철과 더불어 ‘머리 좋아지는 약’을 대표하는 총명탕의 계절이 돌아온 것이다. 총명탕은 본래 중국 명나라 때의 유명한 의사인 공정현이 창안한 처방으로 이른바 청뇌탕(淸腦湯)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백복신(白茯神, 소나무 뿌리에서 나타나는 혹과 같은 조직), 석창포(石菖蒲,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 풀), 원지(遠志, 자색꽃이 피는 원지과의 여러해살이 풀)라는 3가지 약재로 구성된 아주 간결한 한약이다. 동일한 분량으로 섞어 다리거나 가루를 내어 먹으면 된다고 한다. 여기에 사용된 약재들은 일반적으로 정신 안정, 기억력 증진, 긴장 완화 등의 효능을 지녔다고 알려진 약재들이다. 이로 인해 총명탕을 만들어 파는 이들은 총명탕은 정신을 맑고 평안하게 해줌으로써 집중력을 증강시키고, 서너 달 동안 지속적으로 복용할 경우에는 기억력까지 좋아지게 만든다고 말한다. 많은 시험이 암기된 지식을 풀어놓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고려할 때, 기억력의 증진은 곧 ‘머리가 좋아지는’ 것과 동의어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 “기억력 증강과는 무관하다”

시험 결과에 의해 많은 것이 줄 세워지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시험’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시험 때마다 ‘머리가 좋아지는 약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해보았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기적의 약물’에 대한 선망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조선 시대에도 과거를 앞둔 선비들이 총명탕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수백 년 후를 살아가는 지구 반대편의 한국과 미국의 학생들도 기억력 증진과 관련된 약을 먹는다.

하지만 이토록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이 여전히 ‘머리 좋아지는 약’을 찾는다는 것은 바꿔 말하자면, 아직 확실한 효과를 지니는 ‘머리 좋아지는 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될 것이다. 두뇌를 잠시 자극하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확실하고 지속적인 기억력 증강에는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럼에도 총명탕의 인기는 입시철이 되면 어김없이 다시 불어닥친다. 이것은 사회의 요구 혹은 대중의 욕망이 과학 혹은 의학의 이름과 형식을 빌려 상품화되고, 다시 이를 사회가 소비하는 왜곡된 현대 사회의 소비 행태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지금 수험생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왜곡된 이미지가 반영된 총명탕이나 머리 좋아지는 약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과 존재 가치를 일깨우는 따뜻한 말과 격려의 손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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