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국적이 아니라 조국의 정신과 혼 지키려는 노력이다”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09.10.20 20:4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 일본 20위 기업집단 마루한 이끄는 한창우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회장

▲ 10월12일 서울 소공동 롯데 호텔에서 만난 일본 파친코 업계 대부 한창우 회장. ⓒ시사저널 임준선

지난 9월29일 서울 신촌 연세세브란스병원 2층 중식당에서는 팔순을 앞둔 노신사가 점심 식사로 자장면을 먹고 있었다. 그는 지인을 문병한 뒤 늘어진 배를 하얀색 와이셔츠로 감싸고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왔다. 노신사는 루이뷔통 가방을 어색하게 손에 쥐고 택시를 잡았다. 동행은 양창영 호서대 해외개발학과 교수밖에 없었다. 그가 점심 식사비로 지불한 금액은 6천원이었다. 길에서 그와 마주친 누구도 평범해 보이는 노신사가 한 해 매출 30조원이 넘는 기업의 소유주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없었다. 

이 노신사는 일본 재계 20위 기업집단인 마루한을 창업한 한창우 회장이었다. 16세에 밀항선을 타고 일본에 들어가 일본 파친코 1위 업체 마루한을 키워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온갖 고생을 겪고 정상에 오른 이들이 그렇듯, 한회장도 검소하기 그지없다. 30년 지기 친구인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해 11월15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으로 초청하자 지인 한 명과 함께 택시를 타고 공관에 들어선 적도 있다. 그렇다고 한회장이 자린고비는 아니다. 한회장은 지난 10월12일 50억원을 쾌척해 고향인 삼천포 출신 학생들을 위해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장학 사업이 활발해지면 추가로 출연하겠다고 약속했다. <시사저널>은 지난 10월13일 경남대학교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기 위해 귀국한 한회장을 서울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국내 정치·경제·언론계 유력 인사와 가진 잇따른 모임 때문에 바삐 움직이는 한회장을 동행하며 취재했다.

한국계 일본인으로서 일본 정치에 참여해 재일교포들의 권익 신장에 기여할 뜻은 없는가?

나이 탓에 정치에 참여하기에는 늦었다. 일본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한국인이 40명가량 있다. 이 가운데 80%가 일본 국적을 취득해 국회의원 입후보 자격이 있다. 앞으로 이들을 지원할 뜻을 갖고 있다. 일본 중앙 정치 무대에 진출하는 한국계 일본인이 늘면 그만큼 재일교포들의 권익을 신장시키고 차별을 철폐하는 데 기여하지 않겠는가. 지금 민단에서는 재일교포에게 지방참정권을 달라고, 일본 정부에게 요청하고 있다. 지방의회에 진출해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미국에 살면 미국 국적을 취득해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미국 정계에 진출하는 것은 환영하면서 일본 국적을 취득해 한국계 일본인이 되어 일본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백안시한다. 특히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일본 정부에 지방참정권을 요구하는 재일교포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국 국적을 고집하는 재일교포의 2~3세 자녀들치고 한국어를 제대로 구사하는 것을 본 적이 드물다. 중요한 것은 국적이 아니라 조국의 정신과 혼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국적이라는 허울보다 조국의 언어와 역사를 간직해야 진정 한국인이 아니겠는가.

지난 회계 연도 마루한의 매출이 30조원을 넘었다. 앞으로 매출 목표를 50조원으로 늘려 잡았다. 이 목표는 언제 달성되겠는가? 

얼마 전 한국에서 포스코를 방문한 적이 있다. 포스코 매출이 36조원이고, 종업원은 1만6천명이라고 한다. 지금 마루한 종업원은 1만3천명가량이다. 매출은 30조원이 넘었다. 마루한 기업 규모는 포스코와 비슷한 것으로 파악된다. 마루한은 지금 파친코뿐만 아니라 볼링장과 건설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건설 회사는 설립된 지 70년이나 된 건실한 업체이다. 캄보디아에서는 마루한재팬뱅크라는 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마루한이 매출 40조원까지 느는 것은 어렵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50조원까지 가는 데는 시간이 걸릴 듯하다. 그래도 3~4년 안에는 이루어지리라 예상된다.

일본 문화가 세계로 확산해 성공한 업종은 세 가지이다. 가라오케, 커푸(컵) 라멘, 파친코가 그것이다. 가라오케는 한국에서 노래방 사업이 되었고, 한국 신라면도 일본 라멘에서 비롯되었다. 이제 파친코가 그 뒤를 이을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과 동남아시아의 인구 30억명에게 파친코는 개인 오락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파친코 사업을 유치하고자 연락이 온다. 심지어 러시아에서도 연락이 온다. 파친코가 세계인의 개인 오락으로 확산될 날이 멀지 않았다.

파친코 사업은 엔터테인먼트 업종으로 분류되기보다는 사행 사업이 아닌가? 

한국에서는 파친코에 대한 오해가 있다. 파친코는 도박이 아니라 개인 오락이다. 한국에서 파친코가 게임방 형태로 도입되면서 도박으로 변질되었다. 지금 한국에서는 게임방을 문화체육관광부가 관리한다. 일본에서는 경찰청이 관할한다. 조금이라도 편법 내지 불법 영업 행위가 있으면 바로 영업정지 조처를 피할 수 없다. 파친코는 행정 지도가 잘 되면 건전한 개인 오락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내일(10월14일) 일본에 들어가면 중국 고위관계자와 만난다. 중국에서는 파친코 사업을 허가할 테니 중국에 들어와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사행 사업과 관련해 어느 나라보다 엄격한 중국마저 파친코 사업을 건전한 오락으로 판단하고 있다.   

▲ 한회장이 자신의 자서전 출간 기념회에서 부인과 나란히 서 있다. ⓒ우먼센스

일본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자민당의 장기 집권 체제가 무너지고 민주당이 집권했다. 파친코 사업에 대해 하토야마 정부는 어떤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나?

50년 이상 1당 통치가 지속된 것은 북한 말고는 일본이 유일했다. 일본 국민을 위해서 정권 교체는 바람직했다. 정당이 국민에게 제시하는 정강과 정책으로 경쟁하는 것이 정치나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좋다. 민주당 하토야마 정권이 파친코 사업에 어떠한 태도를 취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마루한이 지금까지 일본 정치권에 구축한 인맥은 자민당에 몰려 있다. 민주당 쪽 인맥은 전무하다. 따라서 지금 일본 정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민주당은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 사업을 허가할 뜻을 밝히고 있다. 일본 내에 카지노 사업이 허가되면 일본 통산성이 규제 기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카지노 사업에 진출할 뜻을 갖고 있다. 마루한은 지금 마카오 카지노에 투자해 카지노 사업 노하우를 습득하고 있다.

카지노 사업이 허가되면 파친코 사업에 차질을 빚지 않겠는가?

카지노와 파친코는 다르다. 카지노는 도박이고, 파친코는 오락이다. 목표 시장이 다르다. 카지노가 허가된다고 해서 파친코 사업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지분 100%를 소유한 기업이 2백50개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유 기업을 상장시킬 계획은 없는가?

주식시장에 소유 기업을 상장하는 목적은 투자 자금을 모으기 위한 것이다. 마루한은 지금 버는 돈으로 투자 자금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지금 일본에서는 상장 법인마저 자기 주식을 사들여 상장을 폐지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상장 업체는 투자자 뜻을 고려해야 하는 탓에 의사 결정 속도가 늦고 최고경영자의 결단력도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마루한은 상장이 필요하지 않다. 

세 아들이 마루한 경영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후계자는 둘째 한유인가, 셋째 한준인가?

첫째아들 한철은 미국에서 사고로 명을 달리했다. 둘째아들 한유는 사장, 셋째 한준은 기획담당 부사장, 넷째 한건은 재정담당 부장을 맡아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회사를 잘 이끌어갈지 지켜보고 있다.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회장을 맡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를 조직했다. 김덕룡 전 의원이 그 뒤를 이어 추진하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초대위원장으로 취임했다. 한 전 총리와는 30년 지기이다. 한 전 총리와 친분으로 인해 세계한인상공업총연합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2대 회장에 오른 것이다.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는 세계 전역에서 활동하는 한인 상공인 사이에 친목을 도모하고 정보를 교환하며 무역을 돕는 조직이다. 

▲ 경상대학교는 10월9일 교내 남명학관에서 경남 사천시에서 태어난 한회장에게 명예 이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우먼센스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지금도 한국 정치·경제·사회 단체로부터 갖가지 사회사업을 함께하자고 연락이 자주 온다. 깊이 고민하고 있다. 선뜻 결정하기 쉽지 않다. 조국을 위해 많은 일을 하겠다는 원칙만 정했다. 지금 확정된 것은 장학 사업이다. 고향 삼천포에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사업의 성과에 따라 출연 규모를 늘리고자 한다. 

개인 재산이 얼마나 되는가?

나도 얼마인지 모르겠다(수행한 양창영 호서대 교수는 소유 기업을 상장하면 대략 30조원 가까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청년 실업으로 자기 꿈을 펼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이 땅의 청년들에게 ‘눈은 세계로, 가슴은 조국으로’라는 말을 하고 싶다. 전세계에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 헝그리 정신을 갖고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다.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면 기회는 찾아오지 않는다. 전세계를 무대로 과감하게 도전하면 세계는 한국 청년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제2의 한창우를 꿈꾸라는 것인가?

도전과 투지라는 덕목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위기감을 갖고 도전 정신이 충만하다면 이 땅의 젊은이 누구나 전세계 곳곳에서 제2의 한창우가 될 수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