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은 안 보고 효성만 봐주나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10.20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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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그룹 수사 ‘편파’ 의심받는 검찰, 2년여 동안 부장검사 4명 바뀌며 지지부진

▲ 민주당의 박영선 의원(가운데)이 서울중앙지검 입구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효성그룹에 대한 검찰의 ‘봐주기 수사’ 의혹을 풀려고 왔다. 하지만 핵심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지난 10월15일 오후 6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입구에서 만난 박영선 민주당 의원의 말이다. 최근 법사위 국감을 통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효성 봐주기’에 대한 검찰의 추가 설명을 듣고 나오는 자리에서였다.

박의원은 이날 두 시간여 동안 브리핑을 받았다. 하지만 검찰이 핵심 의혹을 여전히 비껴갔다는 지적이다. 박의원은 “이미 기소된 효성중공업과 효성건설 위주로 설명을 들었다. 지난 2008년 전후로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가 두 차례에 걸쳐 검찰에 넘긴 첩보에 있는 내용이었다”라고 지적했다.

일부 성과도 있었다. 검찰은 이날, 조석래 효성 회장을 지난 4월 한 차례 소환 조사한 사실을 뒤늦게 공개했다. 현재까지 조사 내용은 무엇인지, 조회장 조사가 피고인 성격인지 여부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검찰이 조회장을 소환 조사했다는 점에서 “꼬리 자르기가 아니냐”라는 비난은 일부 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검찰이 국가청렴위로부터 회계 자료 일체를 넘겨받고도 효성그룹을 압수수색하지 않은 이유도 해명되었다. 이날 동행한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효성그룹 임직원 32명을 포함해 1백26명을 소환 조사했고, 4번에 걸쳐 45명의 계좌를 추적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압수수색의 경우 효성이 미리 자료를 제출했기 때문에 하지 않았다고 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효성 일가를 둘러싼 의혹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효성그룹의 홍콩 법인은 지난 1995년 한국종합금융에서 7백만 달러를 빌려 ㈜효성의 대주주인 캐피털월드리미티드(이하 CWL)라는 페이퍼 컴퍼니에 빌려주게 된다. CWL은 이 돈으로 일본의 아사이케미컬이 보유한 자회사 동양폴리에스터의 주식 95만여 주를 3백52억원에 구입했다. 박영선 의원이 최근 공개한 대검 범죄첩보 보고서는 이것을 자기 주식 취득 금지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뚜렷한 이유 없이 조사하지 않아 의문이 일고 있다. 박영선 의원도 “검찰도 현재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2차 보고에서 이 부분을 다시 다룰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대검은 “해외 법인 통해 돈 빼돌렸을 가능성”

▲ 효성그룹측은 총수 소환 자체가 부실 수사와는 거리가 있다고 해명했다. ⓒ시사저널 자료 사진

특히 검찰은 조석래 회장을 제외한 세 아들에 대해서는 소환 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조석래 회장은 지난 2001년 비상장 계열사인 효성데이터시스템(현 노틸러스효성)의 주식 42%를 세 아들에게 넘겼다. 액면가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어서 편법 증여 의혹이 일었다. 세 아들이 주식 매입을 위해 사용한 1천억원의 출처 또한 여전히 의심스럽다. 박영선 의원은 “공소시효가 지난 건과 비자금을 연결하면 얼마든지 수사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 해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검찰 안팎에는 2년여의 수사 기간 동안 부장검사가 4명이나 바뀐 점이 효성 수사가 부진했던 이유로 지목되고 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효성그룹 관련 수사팀 내역’ 자료를 보면 수사 개시일은 2007년 5월로 되어 있다. 이후 2008년 3월까지 최재경 특수1부장이 사건을 맡았다. 주임검사 포함 수사 검사는 2명에 불과했다. 이후 문무일 특수1부장, 김오수 특수1부장, 김기동 특수1부장 등을 거치면서도 주임검사를 포함해 수사 검사는 2~3명에 그쳤다.

박지원 의원은 “지난 2009년 2월 대전지검 특수부에서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을 조사할 당시 수사 검사 5명과 40명의 수사관이 동원되었다. (효성 의혹에 대해) 검찰에서는 충분히 조사를 했다고 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2007년 12월과 2008년 2월 두 차례에 걸쳐 자료를 넘긴 국가청렴위 전직 위원들도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전문위원은 모두 아홉 명. 검사장급인 ㅇ씨를 비롯해 시민단체 간부 ㅅ씨, 변호사 ㅅ씨 및 ㅈ씨, 대학 교수 ㅅ씨 등이었다. 현직 장관과 국회의원 두 명도 포함되어 있다. 한 전문위원은 “제보 내용과 회계자료 검증을 통해 수사 필요성을 느꼈다. 오래된 일이라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부 자료까지 이미 확보한 상태였다. 이 자료를 모두 검찰에 제출했음에도 일부 직원만 기소한 것은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때문에 민주당은 현재 법사위 차원에서 상설 조사 기구를 설치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국감 시즌이 지나더라도 이 문제를 조사해 의혹을 밝히겠다는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당 인사는 “선거로 인해 당 차원의 지원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상임위 차원에서 이 문제를 파고드는 조직을 구성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효성 봐주기 수사’를 처음 이슈화한 박영선 의원도 비슷한 의견이다. 박의원은 “이 사건은 현재 서울중앙지검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2005년 부산에서 처음 조사가 진행되었다. 부산과 대전, 서울이 모두 연결되어 있는 만큼 시간을 두고 조사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대검 첩보 보고서에는 효성그룹이 해외 현지 법인을 통해 비자금을 빼돌렸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방식은 크게 세 가지이다. 효성홍콩, 효성싱가포르, 효성독일 등 해외 법인을 통해 중개 무역을 하면서 수천만 달러를 과잉 지급한 것이 한 예이다. 국내에서 해외 거래처에 직접 수출할 수 있음에도 해외 법인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의문이 일고 있다. 해외 법인들의 부실채권 액수를 부풀려서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의혹도 제기되었다. 이밖에도 효성아메리카가 거래처인 차이나 라이트(China Lingt)로부터 받아야 할 매출 채권과 대여금 등을 과다 계상했을 가능성도 있다. 재미 블로거인 안치용씨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 ‘시크릿 오브 코리아’에 효성 조석래 회장의 아들인 조현준 사장이 지난 2002년과 2006년 두 차례에 걸쳐 4백50만 달러 규모의 호화 저택을 매입한 사실을 공개한 터라 자금의 출처에 의문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해외 저택 매입건의 경우 혐의가 있으면 수사하겠다”라는 원칙적인 답변만을 내놓고 있다. 효성그룹측도 “총수가 소환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부실 수사와는 거리가 먼 것 아니냐”라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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